51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살아온 삶 – 2편

  • #3162454
    51 45.***.136.55 4656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서초동에서 다녔고요. 원래는 86학번인데 공부를 진짜 못해서 일년 재수하고 87학번이 된거죠. 고등학교땐 저희반 70명중에 언제나 35등에서 38등 사이를 3년 내내 왔다갔다 했었습니다. 공부를 참 지지리도 못했죠. 그당시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반에 영어 수학 우열반이란게 있어서 영어 수학 과목만 우열반을 따로 만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공부도 지지리도 못하면서 간신히 영어 수학 우반에만 있었죠. 재수할때는 집안이 어려워서 종합반에 가지도 못하고 노량진 단과학원만 전전하며 간신히 재수생할을 햇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소위 삼국지 대학중 한곳의 지방 분교 물리학과를 들어갔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87년도 당시에 삼국지 대학생도 우스꽝스러웠는데 그것도 지방 분교 그것도 모두가 가지 않던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를 간겁니다.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당시에 공부도 지지리도 못하면서서 자연과학에 흥미가 있었고 그래서 나름 물리학과를 소신(?) 지원해서 지원했고 입학이 된거죠.

    아시다시피 87년은 소위 우리나라의 6월 항쟁이 있던 해입니다. 대학교 1학년을 6월 항쟁의 한복판에서 맞게된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의 산증인(?) 이된거죠. 저는 공부도 못하는 지방 분교 물리학과 얼치기 대학생 주제에 캠퍼스 지하 운동권 써클에 가입하게되었고 거기서 소위 의식화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지하 써클 그룹에서 널리 읽혀지던 각종 사회과학 서적을 상당히 많이 섭렵하고 실제로 약간 반정부적인 그리고 저항적인 의식이 생겨나기도 했었습니다. 그해 6월 소위 6월 항쟁때는 종로에서 매일 데모가 벌어졌습니다. 바로 그 6월의 어느 여름날 저는 당시의 종로 신탁은행 (지금은 없어졌을겁니다) 앞에서 데모를 하다가 소위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조에게 체포당하고 닭장차에 실려 동대문 경찰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학생증을 빼앗기고 나중에 훈방조치 됬죠. 하지만 제 이름이 제가 다니던 학교에 통보가 되고 학과장에게 불려가 퇴학을 당하던가 휴학하고 군대를 가던가 둘중 하나를 택하라는 압력비슷한 소릴 듣게 됩니다. 그래서 전 군대를 가기로 결정하고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학교를 떠납니다. 그리고 군복무를 마치고 학교에 복학을 했는데 당시 저에게 군대가라 압력을 넣으시던 학과장님이 여전히 현역에 계셨고 전공필수 몇과목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학생운동을 유난희도 싫어하시던 분이라 그분 과목다가 C, D를 연달아 받게되고 결국 제 졸업학점은 1.98/4.5라는 처참한 밑바닥 gpa로 끝을 맺게 됩니다. 저의 삼국지 지방분교 대학 생활은 그렇게 막을 내리게되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제가 가진 학벌은 편의점 알바정도에서나 써먹을수 있을 정도의 경력이었고 도저희 정상적인 취업이 불가능한 상태였던거죠. 전 그래서 대학원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기로 같은과 물리학과 대학원을 지원했죠. 그런데 기적적으로 합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학기를 다니다 결국 못버티고 자퇴를 합니다. 학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대학원 과정은 학부 지식이 거의 깡통이라서 버티기 힘들더군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알아서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그후엔 다시 흑석동 중앙대 기계과에 편입을 했습니다. 그당시엔 편입이 그리 어렵지 않아서 쉽게 옮길수 있었죠. 그런게 거기도 제 적성과 맞지 않아서 6개월 만에 등록을 포기했습니다. 그후 몇달을 술로 방황을합니다. 그리고 그런 제 모습이 부모님께 너무 면목이 없고 제 스스로도 한심해 보여서 용돈이라도 벌어볼 생각으로 동네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아로마”라는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 태어나서 월급이든 일당이든 남의 돈을 받고 일을 해보는게 그때가 처음이었죠. 커피집 근무 첫날, 주인이 커피 뽑는법에서부터 주방기구 사용법 기타 서빙하는법 가격등을 가르쳐주는데 오후에 어떤 젊은 미국인 여자 손님이 한명 커피 숖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담한 키에 영화에 나오는 그런 깃을 올려 세운 레인코트 같은걸 입고 있는 젋은 백인 여자였죠. 그녀는 제가 서있던 곳으로 와서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평소에도 그 커피숖에 자주 들렀던것 처럼 익숙하게 자신이 원하는 커피를 금방 주문하더군요. 지금은 한국에 외국인들이 길거리마다 넘쳐나지만 그당시만 해도 한국의 길거리에서 외국이늘 보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고 그렇게 젊은 백인 여자가 혼자 들어와서 커피를 한잔 시켜서 마시는 모습은 더욱 흔히 볼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전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이 생겨서 떠듬거리는 영어로 어느나라 사람이냐 이름이 뭐냐 직업이 뭐냐 어디 사느냐 등등 물었습니다. 그녀는 그 버스정류장 근처 원어민 영어학원 선생이었고 위스콘신주 Marquett University 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갓 졸업해서 돈을 벌기위해 한국에 영어를 가르치러온 원어민 영어 선생이었습니다.

    • marrineboy 220.***.140.180

      진솔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41세 프로그래머 209.***.123.77

      글 재밌게 잘 쓰셨네요.
      보기 쉽게 문단정리랑 오타 교정하면 다른 분들도 더 쉽게 읽을거예요.
      잘 읽었습니다. 3편 기대합니다.

    • 와우 47.***.210.194

      저랑 많이 비슷하시네요..학번 재수…그리고 흑석동 기계과까지….넘 흥미진진한데요….
      약간의 타인이 교감할 수 있는 감성만 넣으시면 네이버에 등단하실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화팅…….

    • Ioi 66.***.85.194

      글이 재미있어요 ㅎㅎ

    • ee 67.***.165.18

      추억들이 생각나네요

    • 대박 73.***.147.46

      다음 편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극도로 자극하면서 끝내셨군요 ㅎㅎ

    • D 104.***.104.238

      혹시 그 백인 여자분과 결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편 부탁 드려요

    • 지나가다 172.***.229.219

      대통령기와 청룡기 그리고 아파치 이 단어들이 마음에 와 닿으신다면 이메일 주소 좀 남겨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 39.***.18.179

      소설 내실려고 반응보나요?

    • 1234 205.***.202.22

      3편 기대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 ㅁㅁ 198.***.251.23

      제목은 아주 싱거운데 내용은 나름 재밌네요. 영화 1987 미국에서도 개봉한다던데…

    • NJ 152.***.12.38

      재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 문단 나누기만 해 주시면 더 쉽게 읽을 것 같습니다.

    • 쉬어가세 67.***.112.138

      진솔하게 쓰셔서 그런지 재미있게 잘 읽었고 다음 글도 기대해 봅니다.
      아무리 익명이지만 누가 1.98/4.5라는 학점을 솔직하게 공개할까요.
      인생이 첨부터 그냥 화려하기만 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글 쓰시는 취지도 참 좋네요.

    • 과객 24.***.127.66

      님 때는 그나마 그런 것도 가능했지만, 요즘엔 유학생들도 돈 없으면 못나오는 형편.
      즉, 돈 없는 유학생들은 다 돌아갔음. 아님 불체.
      요즘 환율이 좀 내려가서 1~2년후엔 좀 들썩일 수도 있겠지만…
      주위에 잘산다고 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 100% 부모도움.
      그래놓고선 지 스스로 했다고 포장질…
      상대안한다, 거짓말쟁이들하고…

    • bk 209.***.148.66

      그 원어민 강사여성이랑 뜨거운밤이라는둥 야설로만 전개 안되면 좋을듯……..

    • re 157.***.21.49

      나이도 저랑 거의 같고, 비슷한 부분도 많아서 옛날 생각 나게 하는 글이라 재미있네요.

      저는 고딩때 님보다 공부 더 못했었는데.. 지방고등학교 고3 반석차 10등 정도였구요 (뒤에서). 1등을 한 어느 날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우시더군요. 그래도 이미 놓친 공부 따라가기 싶지 않더군요. 그래도 막연히 대학은 가야겠단 생각에 삼수했어요. 삼수한 해 전문대도 떨어졌구요. 결국 군대 끌려갔죠. 군대가서 대학다니다 온 동료들을 보며 느낀게 대학은 필수란 생각.. 그래서 제대 한 후 집안에 사정사정해서 일년 더 재수하고.. 지방대 문과 들어가서 졸업했구요. 지방대 문과다 보니 직장 구하기 힘들어 어떻게 들어간 중소기업에서 우연찮게 프로그래머로 일하게 되었고.. 일 하다보니 컴사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나이 30 넘어 무작정 유학결심. 사실은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보다, 게이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 자포자기만 거듭하고 매일 자살을 생각하던 시기였구요. 회사일조차도 아무리 노력해봐야 결과가 없어서 거의 현실도피성이라고 해야겠죠.

      미쿡에 온지 얼마 안되어 난생 첨으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고, 동거란 걸 해보게 됐구요. 미쿡인 남자친구도 가난한 사람이라 도움 줄 형편이 안되어 어학연수, 커뮤니티 칼리쥐, 그리고 대학원을 내 스스로 벌면서 거쳐야 했어요. 대학원 졸업한 해 섭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만나 일자리 하나 없었는데 어떻게 운이 따랐는지 취업비자를 받았구요. 그렇게 다사다난함 그리고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는 중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영주권, 시민권을 받고..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 아직은 열심히 다니면서 살고 있습니다만.. 우리 나이는 언제 짤릴지 모르니깐. 글쎄요..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할 시기가 된것도 같아요.

      I believe the past is always festooned with celebratory memories, and the rest becomes a seed of tears, jests or even delightful mockeries. It is funny how our lives simulate the patterns and assimilate each other’s through the entire cycle (or eco-system in Computer Science although I hate this term). Maybe the saddest part is that we are at a crossroads even at the age of 50. I know it’s baffling but it is life, don’t you know? So I know I am going to be fine. Here’s a poem I used to recite to myself whenever my dream was at odds with the reality. It helped me through it even at my darkest time. And it still does.

      Afoot and light-hearted I take to the open road,
      Healthy, free, the world before me,
      The long brown path before me leading wherever I choose.

      Henceforth I ask not good-fortune, I myself am good-fortune,
      Henceforth I whimper no more, postpone no more, need nothing,
      Done with indoor complaints, libraries, querulous criticisms,
      Strong and content I travel the open road.

      The earth, that is sufficient,
      I do not want the constellations any nearer,
      I know they are very well where they are,
      I know they suffice for those who belong to them.

      (Still here I carry my old delicious burdens,
      I carry them, men and women, I carry them with me wherever I go,
      I swear it is impossible for me to get rid of them,
      I am fill’d with them, and I will fill them in return.)

      Song of the Open Road, Part 1 by Walt Whitman

    • 지나가다 172.***.229.219

      윗분글 읽다가 엄청 헷갈렸음. 남자인지 여자인지.

      • ㅈㄷㄱㅈㄱ 12.***.249.40

        게이라는 단어로 볼때 50대 게이 컴싸이시고 미국에서 좋은 남편만나 거주중인거로 보입니다만?

    • 지나가다 174.***.8.140

      결론은 게이로 남자랑 결혼도 했고 같이 살고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