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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있는곳은 조금 거짓말 보태서 팀 동료를 살인하는 정도의 어차구니 없는 일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65나 67까지 쭉 일하다가 은퇴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단점은 일이 너무 단순하고 쉬워요. 그리고 회사 규모도 작고 인더스트리 기준과도 조금 동떨어지고 뒤처진 분위기고 당연히 사원들의 실력이나 학습능력 배우고자 하는 의지, 뭔가를 좀 더 잘해보고 싶다는 욕망, 이런건 거의 뭐 바닥이죠. 샐러리는 그냥 업계 평균 수준 정도 되구요.
지금 50이니까 앞으로 15년 정도를 이러고 살아야 하는데, 주변에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 보면 격무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가도 앞으로 내 남은 15년의 직장 생활을 이렇게 무의미하게 보내도 되나 하는 자괴감도 들고, 내가 이러려고 힘들게 유학와서 대학원까지 다니며 고생을 했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미국에서 대학원은 해당분야 탑 5에 항상 들어가는 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원 동료들 중 아마 제가 가장 못나가는 동문이 아닐까 싶네요. ㅎㅎ
그래서 그냥 호기심이 생겨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흥미로운 잡 포스팅을 발견했습니다. 회사도 이쪽 분야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고, 무엇보다도 하는 일이 제 대학원 세부전공과 비슷하더라구요. 전공은 그쪽으로 했는데 졸업하고 실제로 그쪽분야에 관한 일을 해본건 몇 년 안됩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을 했는데 하이어링 매니져가 제 서류상의 스펙을 업청 좋아 하더라구요. 이쪽 분야에 실무 경험이 있는 경력자들이 많지 않은데 학교도 명성이 있는 곳이고 지금 직장으로 오기 전에 있었던 2군데의 회사도 이쪽에선 이름만 들으면 아~~~하는 곳이라서 그랬나 봅니다. 아무튼 뭐 인터뷰 시작한때 부터 마치 채용 하기로 결정을 한 듯한 그런 분위기였어요. 하이어린 매니져 인터뷰 통과하고 2차 3차 인터뷰도 비슷한 분위기로 진행이 되어 통과를 했고 오퍼를 받았습니다.
현지 연봉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게 될텐데요. 한 10년만 젊었어도 1초의 망설임 없이 오퍼레터에 사인을 했을텐데, 왜이리 망설여 질까요? 40대 중반쯤 부터 서서히 느끼던건데, 머리가 빨라빨리 안돌아 갑니다. 들은것도 자꾸 잊어버리고, 새로운걸 배우는게 예전만큼 즐겁지도 않고 귀찮을때도 있고. 무엇보다도 여긴 업무량이 많이 늘어날 것 같아서 그게 제일 걸립니다. 나이 50먹고 일주일에 50-60사간씩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일하다가 병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서 말이죠.
하….지금의 나태하고 편안한 스트레스 없는 생활에 어느덧 길들여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나이에는 이게 맞는 선택일까요? 50 먹고도 왕성한 활동 하는 사람들 많은데 그런 사람들 보면 제자신이 부끄러워 지다가도 밤 7시 8시에 집에도 못가고 사무실에서 저녁 시켜 먹으면서 일 할 생각하니 왜 누굴위해서 그런 고생을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그냥 조용히 죽은척 하고 현재 직장 다닐껄 괜히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