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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관계 없이 나라 경제 앞날 입장에서…
아일랜드, 중국, 인도 ,싱가폴,홍콩이 오늘날 세계 대열의 경제세력이 될 수 있는 것은 거의 첨단 유명 외자기업들 유치/합작인 것 같은데..
아무튼 한국에 손학규씨같은 지도자가 많이 나오길..
실리콘밸리에서도 제일 요새 신나는 사람들은 인도,중국 출신인 것 같다. 본국에 혹시 돌아가도 세계 유명 기업들 줄지어 사람뽑고 있으니…
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509/2005093000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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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는 선진화의 덕목도 갖추고 있다. 도지사 재임기간 중 지구를 5바퀴나 돌며 세계최고의 CEO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앞으로 10년간 먹여 살릴 첨단기업들을 유치했다.CEO들을 감동시킨 추진력
2005년 7월 7일, 파주 LCD 장비 반입식을 갖던 날 김중조 협력회사 협의회 대표는 수백 명의 참석자 앞에서 “산업단지 조성과정에서 과감한 결단을 보여주었던 손학규 지사님, 나는 당신을 진정 용기있는 한국의 지도자로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 구본준 LG 부회장은 “50만평의 산업단지 조성을 1년 3개월만에 해낸 것은 유례없는 추진력”이라고 평가했다.
대만으로 갈 뻔한 100억불짜리 LG 필립스 LCD 공장을 적극적인 유치협상으로 대한민국으로 오게 하고, 한 겨울의 언 땅 위에 대형텐트를 치고 온풍기를 돌려가며 문화재 발굴을 앞당겼으며, 묘지 이장 및 공사 관련 각종 인허가 등 행정서비스를 신속 과감하게 처리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2004년 4월 세계 자동차 부품 1위 회사인 델파이의 바텐버그 회장은 경기도와 투자협약을 체결하면서 “손학규 지사는 추진력있는 지도자이다. 미국에도 손 지사같은 정치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찬사를 보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하루에 3시간도 눈붙이지 못하는 첨단기업 유치 해외출장에서 귀국할 때마다 손학규 지사는 그 성과를 공무원들에게 돌린다. 그 겸허함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분명한 비전과 목표의식으로 행정의 팀플레이를 완벽하게 지휘한다. 청년들과 서민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다. 일을 앞에두고 미적거림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경기도 공무원들이 붙여준 별명이 ‘부드러운 카리스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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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는 법대의 조영래(작고, 인권변호사), 상대의 김근태(현 보건복지부 장관)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삼총사로 불렸다. 그는 군부독재와 모질게 싸웠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던 79년 10월 26일에도 손학규는 부마항쟁 관련으로 부산 김해 보안대의 고문실에서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시대정신과 치열하게 씨름하다
며칠 후 석방된 손학규는 다시 결단을 한다. 80년 ‘민주화의 봄’이 왔지만, 그는 “이젠 비었던 머리를 채우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영국으로 떠났다. 만학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옥스포드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영국 유학 시절 얻은 것은 학위만이 아니었다. 세계를 보는 눈, 한국 경제의 가능성에 대한 재인식, 그리고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를 뛰어넘는 21세기의 새로운 길에 대한 문제 의식이다. 이는 서강대 교수 시절뿐만 아니라 이후까지 손학규가 붙잡고 치열하게 고민한 시대의 화두이다.
올해초 손학규지사는 3만불시대의 성숙한 민주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대한민국의 CPU」를 바꾸어야한다고 주창하기도 했다. 권위주의적 개발시대의 사고방식이나 낡은 70~80년대의 급진 운동권식 사고방식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수 없는 것이다.
손학규의 일관성은 미래지향적 개혁성과 실천적 열정에 있다. 그는 어떤 도그마와도 치열하게 맞설 뿐만 아니라 국외자의 논평 영역이 아니라 열정적인 행동의 영역에 자신을 던진다.
제왕적 총재체제하에서 그 폐지를 외치다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손학규는 개혁을 위해 교수 자리를 박차고 정치권에 입문하는 결단을 한다. 한번도 여당이 당선된 적이 없는 광명 지역의 보궐선거였다. 낙선을 염려한 학교 측과 동료들의 휴직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감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출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손학규는 정치를 하면서도 개혁적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16대 국회에 진출한 이후 제왕적 총재제도 폐지, 당권-대권 분리, 상향식 공천제 도입 등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가장 앞장서서 역설하다가 당내에서 외로운 처지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은 2002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에서 채택되기에 이르렀고, 그의 선견지명과 뚝심이 한동안 정치권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손학규는 한나라당 의원이면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당내의 고답적 대북관에 매몰되지 않고 평화와 전향적 남북협력에 대한 그의 소신을 분명히 했다. 93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광주 5.18 묘지를 참배하면서 국민통합의 정치를 위한 다짐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했다. 덕분에 지금은 5.18 묘지에서 가장 환대받는 정치인 중에 한 명이 됐다.
손학규의 정치 역정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 야당 후보로서는 떨어질 것이 뻔한 선거였다. 그러나 손학규는 여당의 끈질긴 영입 제의를 뿌리치며 1998년 6월 야당의 도지사 후보로 출마하여 낙선하기도 했다.
개혁성 도덕성 국가경영능력의 3박자
2002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재도전하여 당선된 손학규 지사는 신속 유연 자율의 기치아래 행정서비스를 혁신했으며 세계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일자리, 평화, 그리고 나눔의 가치를 실현해가고 있다.
135억불이 넘는 첨단기업유치와 일자리 창출, 해외연수를 가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영어의 자신감을 심어주는 영어마을, 가난의 대물림을 막으려는 위스타트 복지 프로그램 등, 경기도정은 이제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경제살리는 손학규’의 이미지는 확고부동하다. 그것도 과거 건설회사 방식이 아니라 첨단 디지털 시대의 CEO로서 말이다.
올해 7월 18일자 주간조선에 이하원 기자는 손학규의 리더십에 대해 ‘대통령되면 잘 할 사람’이라는 평가를 소개했다. 내가 보기에도 손학규지사는 짐콜린스의「Good to Great」에서 말하는 ‘쇼에 나가는 말’ 보다는 ‘묵묵하게 쟁기 끄는 말’에 해당하는 제5세대 리더의 전형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손학규 지사는 미래지향적 개혁성과 도덕성을 일관되게 실천하고 있다. 타협점이 없을 것 같았던 한의약분쟁을 해결했던 보건복지부장관의 경험과 성공적인 경기도정의 수행과정에서 그의 국가경영능력도 입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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