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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오는 떡밥중에 하나가 개발자 연봉에 관한 얘기인데 여기서도 종종 보다보니 생각이 좀 들어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세상 수많은 직업중에 왜 하필 개발자 얘기만 뜨거운 감자고 필요 이상의 돈이 오가는거처럼 보일까요? 현업 종사자 입장에서 생각해봤는데 몇가지 요인들이 영향을 주는 거 같습니다. 저라고 뭐 세상만물을 다 알아서 이런걸 쓰는건 아니고 그냥 개인 의견으로 봐주세요.
1. 무형의 아웃풋
제조업이나 여타 산업이랑 비교했을때 개발자가 뭔가를 작업해서 내놓는 결과물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데요, 그때문에 외부에서 봤을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복잡성이나 결과물의 물질적 가치가 잘 안느껴집니다. 물 한그릇 담기위한 바가지를 만드는거야 뚝딱 만들수 있지만 똑같이 물을 담는 기능을 하는 댐을 짓기 위해서는 온갖 전문가가 다 필요하듯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개발 비용이나 복잡성이 크게 올라가는데요. IT 종사자들이 아닌 이상에야 보통 그 결과물의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웹이나 앱만을 통해 테크를 접하게 되니까 “아니 나도 HTML 좀 배워봤는데 대체 웹사이트 하나 굴리는데 왜 수천명이나 달라붙어야 하는지 알수가 없다” 같은 반응 충분히 나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가지랑 댐은 누가봐도 크기 차이가 확 나는데 IT기업의 아웃풋을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그 복잡성이 잘 눈에 안 띄기 마련이니까요.사실 이런 시각 차이는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합니다. Frontend만 아는 사람은 backend 엔지니어들이 하는 일이 체감도 안되고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하고, backend 엔지니어들은 머신러닝 엔지니어들 보고는 이사람들 코드는 안짜면서 실험에 필요하다고 뭘 자꾸 요청한다고 하고, 서로가 보기에도 아웃풋이 명확히 손에 안 잡히니까 하게되는 흔한 오해입니다.
2. “개발자” 타이틀의 광범위함
고연봉의 대명사같은 의사나 변호사는 자격시험 등으로 통과해야 하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은 반면에 개발자 타이틀은 본인이 그냥 갖다붙이는건가 싶을 정도로 쉽게 찾아볼수 있고, 실제로도 부트캠프같은 짧은 트레이닝 이후에 현업에 들어갈 수 있게끔 파이프라인이 잘 되어있는 편이라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직업처럼 보이는게 사실입니다.3. 상식을 벗어나는 생산성 개인편차
위의 포인트랑 연결된 얘기이기도 한데, 낮은 진입장벽을 쉽게 넘어 들어온 개발자에 비해서 실력 좋은 사람은 생산성이 10배 이상은 우습게 차이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외부에서 봤을때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속성일거 같은데요, 아웃풋이 무형인게 한몫하는 IT 산업의 특징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조업이라면 똑같이 트레이닝 받고 공장에 투입된 사람들 중에 잘하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에 비해 10배 더 빨리 일한다는건 상식적으로 어렵겠죠. 반면에 IT 쪽에서는 똑같이 코딩업무를 맡더라도 개발시간이나 디버깅, 사후관리 등에 들어가는 시간을 종합했을때 10배 이상 차이나는 생산성은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타자를 10배 빨리 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_-;4. 수익구조
IT는 물건을 사고파는게 아니라서 그 노동력의 가치를 수요 공급으로 설명할수 없다는 요지의 글을 아래에서 봤는데요, 그걸 보니까 많은 테크회사의 수익구조가 명확하지 않아보일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플은 폰을 팔고, MS는 윈도우즈나 오피스를 팔기라도 하는데, 구글이나 메타같은 회사가 어떻게 학부 졸업생한테 돈을 연봉 200k나 넘게 줄수 있는지 의아할 수는 있습니다. 구글/메타는 대부분 광고수입으로 먹고삽니다. 원래 TV나 신문등으로 들어가던 광고비가 웹/모바일 시장이 커지면서 많이 넘어왔고요, 특히 중소기업이 인터넷 광고를 통해서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효과적으로 고객유치가 가능해지면서 없던 파이가 생겼습니다. “나는 광고 클릭 한번도 안하는데” 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통계적으로 봤을때 광고주들 입장에서 돈이 되니까 IT기업에 돈을 계속 주면서 광고를 주고 있는겁니다. 이런 기업에서는 특정 product를 새로 냈을때 예상 유저수나, 그거에 비례해서 들어올 미래의 추가수익 등을 전부 예측하면서 거기에 맞춘 몸값을 주면서 엔지니어들을 데려갑니다. 당장 거시경제 상황이 안좋다고 해서 이미 모바일/웹으로 옮겨간 광고수입이 다시 TV/신문으로 가진 않을거라서 요즘의 레이오프가 산업 전체에 걸쳐 영구적인 연봉 하락을 불러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테크가 침투하지 못한 산업이 워낙 많아서 장기적으로는 연봉도 우상향하지 않을까 하는게 개인적 생각입니다.써놓고 보니까 IT산업이 크게 발달한지 벌써 20-30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상한 점들이 많은 산업이고, 그래서 연봉에 관해서 많은 잡음이 나오는게 당연하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 중 가장 흔한 잡음 두가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이렇게 할 수 있겠네요
* 의사는 병을 고쳐주는데 개발자들은 컴퓨터에서 자판이나 두드리면서 무슨 일을 한다는거야 -> 무형의 아웃풋, 수익구조
* 개나소나 다 개발자 한다는데 내 주변 자칭 개발자들 100k도 못벌던데 -> 개발자 타이틀의 광범위함, 생산성 개인편차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개발자 직군을 원하시는 분들한테 딱 한가지 알려드리고 싶은 점은… 위에 쓴 개발자 타이틀의 광범위함 + 생산성 개인편차의 함정에 빠지지 마시라는 겁니다. 돈 잘 벌고 승진도 착착 해가면서 롱런하는 사람들 보면 공통적으로 실력이 좋더라고요. 뻔한 얘기지만 자기가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제일인거 같습니다. 다들 건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