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박 50일 좌충우돌 유럽 생환기5 – 독일의 날개 루프트한자(Lufthansa)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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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만기 24.***.74.254 4694

    일단 자리로 돌아온 내게 옆자리 친구가 묻는다.

    ‘형!!! 화장실 다녀 오셨어요?’
    ‘어… 아니… 저 뒤에…’
    ‘거긴 왜요?’
    ‘물 한 잔 얻어 마시려구…’
    ‘나참… 이거 누르면 물 갖다주는데…’

    물컵(아님 다른 그림이였나?) 그림이 그려진 버튼을 가리키며 친절을 베푸는 녀석의 말을 무시하며 나의 그녀가 했던 말을 들려준다.

    ‘에~이~ 형이 잘 못 알아들었겠지!!! 그런게 어딨어요… 아무나 막 들어가게 할리가 없죠!!!’

    (어쭈~ 요놈봐라… 그깟 물결표시(^^) 좀 할 줄 안다고… 이~노~옴~ 내 가서 확인하고 오리라!)

    ‘아니야… 진짜라니까… 다시 확인해보고 올께… 참… 가는김에 뭐 맥주라도 하나 갖다줄까?’
    ‘아~참!! 형이 잘못 알아 들은 거라니까요…’
    ‘기둘려… 내가 가서 맥주 갖고 오마!!!’

    말리는 그녀석을 무시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갤리(galley:승무원들이 기내식 등을 준비하는 공간. 드디어 비행기내에 있는 부엌의 이름을 알아냈답니다. 다솜님, 구글 Thank you…)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씩씩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 녀석이 조장해 놓은 불안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커튼만 닫혀진 갤리앞에서 심호흡을 한번하고는 커튼을 열어젖히며 갤리로 들어갔다.

    반대편 문으로 나갔는 지 아까 있던 백인 아줌마는 없었고 그녀만 Tray를 정리하고 있었다.
    약간 놀란 눈으로 날 보는 그녀에게…

    ‘I… 어… this(tray를 가리키며)… help you’ -> 내 뜻: 이거 정리하는 거 도와줄께…
    ‘~~~ ~~~ done’
    ‘Done?’ (벌써 끝났다구…? 내가 보기엔 몇 개 더 남았구만~~?)
    ‘~~~ almost done’
    ‘아~아~ ALMOST done…’ (거 봐!!! 아직 몇 개 남았다니까^^)

    그녀 손에 있던 tray를 받아 들며,
    ‘so… 음… I… 어… help you… OK?’

    그녀 또 웃음을 날려주며…

    그녀는: ‘You don’t have to’ -> 내 귀엔: ‘You ~~~ have to’ -> 내 머릿속: have to=must=해야만 한다 -> 속마음: 승객인 내가 꼭 해야만 하는 것인가? 아님 농담인가? 어쨌든, 도와준다고 안 했으면 큰일날 뻔 했군!!! -> 행동: 그녀가 주는데로 바로바로 tray를 카트에 척척 밀어넣으며 -> 표정: 최대한 밝게 웃으며…

    정리해야 할 tray가 몇 개 남지 않았었기에 불과 1-2분 사이에 정리를 끝내고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밑에 있던 Tray를 꺼내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며…

    ‘어… 그러니까… you said… 어… I… come here… 에… 또… everything ok…. OK?’
    ‘Yes… you can come and get anytime… do you need something?’

    헉… 알아들어 버렸다… 방금 그녀가 한 기~~~인~~~ 말이 물결표시로 들리지 않고…
    너무 기쁜 나머지 내가 여기 왜 왔는 지도 잊고는 다짜고짜 Thank you를 날리며 돌아서는 나에게…

    ‘You don’t need anything?’

    아!아!아! 그렇지 맥주 가지러 왔었지!!!

    ‘I need beer… two'(혹시 too랑 헷갈릴까봐… 손가락 펴 보이며…)

    그녀… (거 봐!!! 너 여기 뭐 가지러 왔었잖아) 이런 표정으로 맥주 두 캔을 냉장고에서 꺼내 내밀며 한마디…

    ‘Thank you for your help’
    ‘You’re welcome’ -> 이건 학교에서 배운거다… ㅋㅋ

    의기양양 두 손에 맥주를 들고 자리로 돌아온 내게 경외의 눈 빛을 날리며 맥주를 받아 든 옆자리 그 친구…

    ‘우~와!!! 진짜네요… 형…’
    ‘그라쥐… 내가 그랬자너… 푸하하하…’

    그런데 창문쪽에 앉아있던 그 친구는 더이상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 친구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내 앞에 불쑥 내밀어지던 손… 그 손 위에 조그만 땅콩봉지… 그랬다. 안주를 챙겨온 나의 예쁜 그녀였던 것이다…

    ‘~~~~~~~~’

    옆자리 그 녀석이 그녀에게 물결표시로 수작을 부린다.
    그러나 나의 그녀… 그녀석에게 대꾸도 안하고는 나에게 날리는 멋진 광고 카피 한마디…
    .
    .
    .
    ‘비얼(beer)는 땅콩과 함께…’ -> 캬~~~ 좋을시고~~~
    .
    .
    .
    그녀가 지나가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동안 관심이 없는척 하던 하지만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고 여겨지던 주위에 패키지 여행객들이 하나 둘씩 내게 몰려든다. 그리고는 뭔가 갈구하는 표정으로…

    ‘저… 저도 죄송하지만… 맥주 하나만…’
    ‘저도…’
    ‘저두요…’
    ‘까짓거… 뭐 그러죠 뭐… 친구… 여기 주문 좀 받게…’

    이리하여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동안 내내 주위에 같은 여행사에서 출발했던 패키지여행객들에게 인기 만발이었다는…
    덕분에 난 내 자리에 앉아 있었던 시간보다 뒤로 왔다 갔다한 시간이 더 많아졌고, 급기야는 비어있던 갤리 옆 좌석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이 들어 오는데로 수시로 갤리를 들락거렸다.

    사람들에게 그녀 대신 맥주를 서빙하며 수시로 같이 마셨던 탓에 긴장이 풀렸음인지 수시로 졸기를 거듭했는데 잠이 잠깐 들었다가 깨면 꼭 식사시간이 막 끝난 후였고 그렇게 닭 졸듯 조는 내가 (닭이 꾸벅꾸벅 조는 모습 보신 분 계신가요? 정말 불쌍해 보인답니다…ㅋㅋ) 안쓰러웠는지 나의 그녀는 식사 서빙시 한번도 나를 깨우지 않고 기다렸다가 내가 깨고나면 갤리 정리를 끝낸 후 꼭 기내식 Tray를 따로 들고 나와서 배고픈 만기에게 감동을 안겼던 것이다.

    그리고 내 식사가 끝나면 그녀는 내가 먹은 Tray를 갤리에 치워놓고는 갤리옆에서 X폼을 잡고 담배를 피워 문(당시에는 기내 맨 뒤 쪽에서 흡연이 가능했었답니다.) 나와 이런 저런 수다를 나누곤 했고, 난 그녀가 독일에서 태어난 재독교포 2세라는 것과 맥주와 땅콩을 좋아하는 아버지, 돼지 불고기를 잘 만드시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이제 경유지인 프랑크푸르트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비행이 끝나가는 반가움의 시간이였겠지만 나는 내 여행의 첫번째 고마운 사람인 그녀와 곧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너무 커져만 갔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아~까전에 앞쪽으로 간 그녀는 계속 보이지 않았다.

    (바보!!! 아까 얘기할때 전화번호라도 미리 받아 놓을 걸… 왜 안보이지? 빨리 좀 오면 좋겠구만…)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방송이 들릴때쯤 나타나길 고대하던 그녀는 오지않고 옆자리 친구가 갤리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내가 다가왔다.

    ‘형!!! 곧 착륙한다는데 이제 형 자리로 가시죠?’
    ‘어… 그러지 뭐…’

    제자리로 돌아가면서도 혹시 그녀가 보이지 않나 계속 두리번거렸고 그렇게 비행기가 착륙할때까지 결국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꼭 그녀를 다시 한 번 봐야겠다는 내 절박한 심정과는 상관없이 모두들 짐을 내리고 챙겨서 한명씩 입구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자리가 뒤쪽이라 늦게 나갈 수 있고 그렇게 천천히 나가다보면 혹시 그녀가 오지 않을까하는 나의 기대는 바로 앞좌석 사람들이 입구쪽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하며 절망으로 바뀌어갔다.

    (아~~~ 바보!!! 이렇게 못 보나보다… 진작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걸… 바보… 바보…)

    앞으로 걸어나가며 끊임없이 자책하고 또 자책하며 입구를 향하던 내 눈에 출입문 옆에 서서 승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던 그녀가 저 멀리 들어왔다. 몇 없는 뒷사람들에 밀려 밀려 점점 그녀와 가까와지고 있었고 내 머릿속은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고 어떻게 잽싸게 그녀의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을까?를 궁리하느라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좀 비켜서서 뒷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난 벌써 그녀 앞에 와 버렸고 막상 그 앞에 가니 옆으로 비켜 설만한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이게 아닌데… 뒷 사람들을 먼저보내야 하는데…
    .
    .
    .
    순간… 그녀 내가 손을 내민다.
    그리고 무언가를 내 손에 쥐어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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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all me, when you come here’
    .
    .
    .
    사람들에 밀려 그녀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비행기를 내려섰다.
    뒤에 따라오던 옆자리 친구…

    ‘형… 뭐예요… 그 아가씨가 준거?’
    ‘어 이거…’

    대답을 하면서도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귀를 울린다… ~~~코~~~올~~~미~~~

    ‘아~~ 형 빨리 펴봐요~~~’

    그 녀석의 재촉에 떨리는 손으로 예쁘게 반쪽으로 접은 쪽지를 펼쳐본다.
    어지럽게 적힌 숫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숫자들 위에…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의 한글로 얼기설기 쓰여진 그녀의 이름…
    단아하고 순수해보이고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쁜 그녀와 너무 어울리는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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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영!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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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와하하하하… 그녀석이 옆에서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먼저, 실명이 ‘영순’이신 분들께 사과 말씀 드립니다. 실은 제 친척 중에도 동명이인이 계십니다만… 어쨌든, 그녀의 이미지와는 정말 Match하기 힘든 이름이었기에…)

    그렇게 다른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복도를 빠져나가며 나와 그 녀석은 다른 사람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간 정신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프랑크푸르트에 첫 발을 내디뎠다.

    물론, 그녀의 쪽지는 내 손에 꼭 쥐고서…


    다음이야기는 49박 50일 좌충우돌 유럽 생환기6 – 런던..그리고 TKD로 이어집니다.

    • NJ 204.***.196.151

      월요일 아침을 만기님의 생환기로 열었네요. 다음 편 빨리 올려주세요.. 모두 즐거운 한주 되시구요

    • Myung 98.***.36.183

      Really fun and exciting story!!!
      Thank you much for your share!!!

    • ㅎㅎ 12.***.236.34

      진짜 비행기에서 담배피던 시절 얘기네요…

    • eb3 nsc 76.***.232.250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정도로 재미 있어요..ㅋㅋ
      기대 만땅…

    • 감질나 24.***.32.134

      여행기 뒤로 미루시구요, 영순씨랑 어떻게 됐는지 먼저 얘기해주세요~~

    • PEs 75.***.134.75

      저는 감잡았습니다. 영순님과 백년가약에 한표! :)

    • 6년만기 24.***.74.254

      생환기 연재하다가 프랑크푸르트 들리게 되면 우리 그녀와의 이야기 다시 전해드릴께요… ㅋㅋㅋ… 이런 나쁜 만기…

    • 산들 74.***.171.216

      ㅋㅋㅋ 영순님 정말 궁금하군요~~~ 만기님의 여행기 한편한편이 아주 주옥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