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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전의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장소(고향)’에 살았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고향을 벗어나는 유일한 계기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때 말고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세계화는 체계적으로 장소를 파괴하면서 장소 없는 인간을 만든다. 늘어난 비정규직과 일용직은 장소를 갖지 못하게 만들고, 도시재개발과 상승하는 임대료는 우리 주위의 ‘단골 가게’를 하나하나씩 말살한다.
대신 세계화는 ‘공갈 젖꼭지’와 같은 유사 장소를 제공한다. 파리에서 맥도널드 햄버거점을 발견하고, 베이징에서 스타벅스를 만났을 때 온 몸을 감싸주던 안온한 느낌을 떠올려보라. <소설가 장정일>
——————————————————————————————————-위의 장정일 씨 글 속에 언급되는 공갈 젖꼭지라는 단어는 곧장 나로 하여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거의 매주 가게 되는 H마트 주변 한인 상권 지역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한국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미 중부 시골 동네에서 15년 이상을 살다가, H마트가 두개나 있는 대도시에 나와서 3년 째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한국 그로서리 쇼핑을 하러 매주말마다 들르게 되는 H마트 주변상권은 분명히 한국방문을 착각케 하는 나의 공갈 젖꼭지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주마다 한국에 방문하는 기분이 들 정도 이다.
아무리 미국생활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도, 한인마트는 물론 한인식당 하나 없던 미중부 시골마을에서 한국에 대한 향수병을 달래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한국에 대한 향수병을 앓지 않는다. 매주 경험하는 공갈 젖꼭지가 바로 내 향수병 치료제가 되어주고 있어서 이다.
우유나 젖을 떼지 못한 아이들 키울때 반드시 있어야 하는게 바로 이 공갈 젖꼭지이지만, 이민생활 하는 다큰 성인들에게도 공갈 젖꼭지 같은 것들이 필요할것 같은 생각이 들고 있다. 그것은 삶의 지혜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이와 유사한 단어로는 플러시보(placebo)가 되는것 같다.
이민자로서 언어가 불편하고, 삶이 낯설어 질때마다, 우리는 공갈 젖꼭지나 플러시보(placebo)를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