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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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있으마 73.***.151.16 221

    가난의 불편을 모르고 살던
    가난 가난 가난한 가난의시절에

    가장 절박했던 건

    세 끼의 식사

    였다.

    우리의 소원이라고 불리우라던

    통일,

    그 통일보다도 훨씬 앞선 소원이야말로

    세 끼의 식사

    였다.

    지금도 그 후유증은 남아

    풀뿌리 민주주의

    란 말을 들을 때마다

    언덕배기에 내렸던 풀뿌릴 캐어
    곰곰이 되씹으며
    단즙을 채굴했었던 기억이 떠올라

    풀뿌리 민주주의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민주주읠 안 좋아 하는 게 아니라
    풀뿌리란 단어가 들어가 안 좋아하는 거다.
    .
    .
    .
    .
    .
    가난은
    우리와 함께 가야만 하는,

    삶의 자연스런 동반자쯤으로 여겼었기에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

    는 생각은
    가난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아주아주 불순한 생각였기에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고

    게 행복한 거다로 여겼던 그 때가

    절대로 지금보다
    불행했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끼니걱정

    을 해야만 했었던 건
    안 불행이라곤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빌고 빌었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일용할 양식,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참고로,
    여기서 우리 아버지람
    요단강을 건너신 우리 아버짐.

    형제들 중

    유독 잘생기고
    학교에선 전교1등만 하고
    부모님말씀에 순종만 하는 효자였던,

    형만한 아우가 있단 걸 보여 준 날
    무척이나 어여삐 여기셨던 우리 아버진
    역쉬 사나이답게 의리를 배반하지 않으셨고

    내 기돌 들어

    일용할 양식,
    일용할 양식,
    일용할 양식

    을 내려주셨는데,

    그 양식이 바로

    결혼

    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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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땐 다들 그런 말에 익숙했었다.

    먹고나면 배고프고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

    마눌도

    초가삼간에서 잔뼈가 굵어선지
    통일보다 한 발 앞선 소원이

    세 끼의 식산지라

    종종 그랬었다.

    “그냥 잘거야?”

    해 우리 부분

    소원의 목푠
    게 공통점이라서

    세 끼의 식사

    를 하고도

    꼭꼭

    밤참,
    밤참,
    밤참

    을 먹거위해
    곧잘 의기투합했었다.
    .
    .
    .
    .
    .
    발 없던 적 모르는 깨구락지처럼

    끼니 걱정 없이
    배때지가 불러오자

    일식일찬

    에 대한 불평불만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것도 우리 부분 닮아

    난,
    일식일찬이 물려 안 먹다가
    불륜, 간통, 내연, 원조교제, 뚝넘어니의 메뉴들로
    입맛을 살려갔는데

    마눌은,
    거울 앞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헬스클럽이니
    등산이니
    동창이니
    베드민턴이니의 모임에 빠짐없이 나가면서

    집밥

    을 외면했었는데

    뭘로 끼닐 채웠는진
    아직도 모르겠다.
    .
    .
    .
    .
    .
    나일 잡숫고 나니
    자동으로

    소식

    가가 되어버린다.

    통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이 생각해 지질 않는다.

    나일 먹으면 그래진다더니
    나도 이젠 잡술만큼 잡숴선지

    추억

    만을 먹고 살게 되는데

    마눌도 따라 주 메뉴가

    추억

    이 되어선지

    잘나가던 호시절의 나를 생각하며

    무슨 술 써서라도
    날 기필고

    신혼초 때의

    먹성 풍성하고 왕성한 나

    로 돌려놓고야 말겠다며

    마늘이니 부추니 호두니 뱀장어꼬리니

    물개의 그 다리니로

    밥상머릴 둘러치며

    가운데엔
    추억찜을 푸짐하게 올려 놓지만

    게 다 허산 게,

    그러고 있는 마눌의
    풀죽어 납작해진 궁뎅이를 보고 있노라면

    추억은 고사하고
    입맛까지 홀딱 달아나
    몇 술 뜰 것도 안 뜨게 되니

    마눌이나 나나의 밥상머린
    언제나 고요와 적막,
    푸석푸석함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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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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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무슨
    나라를 구해보겠다고 국회로 가
    삭발하고 단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요즘은

    일식은 고사하고
    주식은 언감생심
    월식이라도 제대로 좀 먹어봤음 싶은데
    년식도 어려울 것 같아

    이러단
    마눌이나 나나
    굶어죽지 싶다.
    .
    .
    .
    .
    .
    아니되겠다.

    일라그라 두 개 삼
    함만스그라 한 개가 프리란 쎄일 광고다.

    너와 너.

    나와 다르지 않을 너희들이
    새벽부터 줄서선 아도치기전에
    나도 일찍 서둘러야겠다.

    더군다나

    “조기에 품절될 수 있습니다.”

    졸라 불안하다.
    .
    .
    .
    .
    .
    아!!!

    어쩌다 이리되었는지……

    아!!!

    끼니걱정해야하는 노훈 역쉬
    초라하고 비참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