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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가가 미국보다 싸다. 아니, 미국 물가가 미친 거다
한국에 2주 있으면서 거의 매일 택시를 최소 두 번씩 탔다. 나중에 카드 명세서를 확인해보니 총액이 400달러 정도였다.
처음에는 뭔가 누락된 줄 알았다. 미국에서 택시를 그렇게 탔으면 카드 회사에서 “고객님, 혹시 차량을 구매하셨습니까?” 하고 연락이 왔을 것이다. 체감상 뉴욕 택시비의 10분의 1쯤 된다. 물론 하필 내가 한국에 있을 때 환율이 최고점을 찍어서 더 싸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환율이 애국심까지 보조해준 셈이다.
교통비는 더 황당하다.
워싱턴 DC에서 뉴욕까지 기차나 비행기로 가려면 보통 200달러 정도 든다. 그런데 기차 시설은 1990년대 한국 무궁화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수준이고, 속도는 “왜 굳이 선로를 깔았을까” 싶을 만큼 느리다.
반면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특실에 앉아 편하게 내려가도 50달러가 채 안 든다. 게다가 더 깨끗하고, 더 조용하고, 훨씬 빠르다. 미국 기차가 자본주의의 본고장답게 가격만 프리미엄이고 나머지는 전부 이코노미라면, 한국 기차는 가격만 이코노미고 나머지가 프리미엄이다.
외식비는 계산할 때마다 헛웃음이 나왔다.
미국에서는 네 식구가 밖에 나가서 “그래도 오늘은 제대로 먹었다” 싶으면 300~400달러가 우습게 나온다. 음식값에 세금 붙고, 팁 붙고, 서비스 수수료 붙고, 주방 직원 복지기금 비슷한 것까지 붙는다. 밥을 먹은 건지 식당 직원 퇴직연금에 기여한 건지 알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직원이 직접 구워주는 최고급 한우나 장어를 배가 찢어지도록 먹어도 200달러면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팁이 없다.
음식을 주문했는데 음식값만 내면 된다.
이 당연한 사실이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거의 문명사적 충격으로 다가왔다.2. 내가 어디에 속해 있다는 느낌
미국에서 몇십 년을 살았다. 영어도 하고, 멀쩡한 회사에서 직장생활도 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낸다. 그런데도 완전히 섞였다는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그냥 영어를 제법 잘하는 이방인.
딱 그 정도다.
그런데 한국에 발을 딛는 순간 이상할 만큼 마음이 풀어진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같은 농담을 이해하는 사람들,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알아듣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긴장할 이유가 없다.
미국에서는 늘 내 말투가 이상하지 않은지, 상대방이 내 의도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내가 모르는 문화적 규칙을 또 하나 밟은 건 아닌지 머릿속 어딘가가 계속 작동한다. 평생 꺼지지 않는 백그라운드 앱 같은 것이다. 배터리를 꽤 잡아먹는데 삭제도 안 된다.
한국에서는 그 앱이 잠시 꺼진다.
그냥 말하고, 그냥 먹고, 그냥 돌아다니면 된다.
미국에서는 드라이브스루에서 햄버거 하나 주문하는 데도 긴장할 때가 있다. 스피커에서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리고, 직원은 빛의 속도로 질문하고, 나는 잘못 들었으면서도 일단 “예스”라고 대답한다. 그러고 나면 주문하지도 않은 소스 세 개와 음료 두 개를 받아 들고 집에 온다.
한국에서는 최소한 햄버거 하나 사면서 언어 능력과 순발력과 인간 존엄성을 동시에 시험받지는 않는다.
그게 이렇게 편한 일인지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3. 가장 놀라웠던 것, 의료 시스템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의사를 볼 일이 생겼다.
미국식 사고방식에 익숙한 나는 당연히 전화를 걸어 예약부터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접수 직원이 지금 오면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오늘 예약이 가능하다는 말인가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지금 오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요즘 미국처럼 전문의를 예약했는데 실제로는 간호사나 보조 인력을 먼저 만나고, 전문의 얼굴은 전설 속 동물처럼 좀처럼 볼 수 없는 구조도 아니었다. 진짜 전문의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5분 정도 기다리니 바로 진료를 받았다. 진료가 끝난 뒤에는 처방전을 들고 또 다른 장소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이 약까지 그 자리에서 받았다.
내가 한국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이라고 하자 창구 직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시면 비용이 좀 비싸세요.”
순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몇십만 원쯤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5만 원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비싸다는 단어의 정의가 나와 이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군.’
미국에서는 나름 괜찮다는 Anthem PPO 보험을 가지고 있다. 보험료만 1년에 거의 7,000~8,000달러를 낸다. 그렇게 돈을 내고도 전문의 한 번 보려면 몇 주, 길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어렵게 예약을 잡고 전문의 얼굴을 잠깐 보는 데만 본인부담금 40달러가 든다.
그리고 그 40달러는 시작일 뿐이다.
검사비는 별도, 시설 사용료도 별도, 영상 판독료도 별도다. 나중에 우편으로 날아오는 청구서를 보면 내가 병원에 갔던 건지 소규모 인수합병을 진행했던 건지 헷갈린다.
한국에서는 보험도 없는 외국인이 당일 전문의를 보고 약까지 받아서 5만 원을 냈다.
미국에서는 보험이 있는 사람이 병원비가 무서워 의사를 피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미국 의료 시스템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제도인지, 환자의 통장 잔고를 진단하기 위한 제도인지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4. 한국에는 생동감이 있다
이 차이는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느껴진다.
미국 공항에서 TSA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다 보면 직원들 대부분이 “오늘도 인간을 상대해야 하다니”라는 표정을 하고 있다. 승객을 손님으로 보는 게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자꾸 말을 거는 짐짝 정도로 취급한다.
신발 벗어라, 노트북 꺼내라, 가방 다시 넣어라, 거기 서라, 움직이지 마라.
설명은 없고 짜증만 있다.
무슨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기관이라기보다 전 국민을 상대로 단체 기합을 주는 조직 같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젊은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안내는 정확하고, 표정도 비교적 밝다. 입국심사부터 수하물 처리까지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다.
한국 공항 직원들이 미국 직원들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받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쪽은 자기가 맡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다른 한쪽은 승객에게 자신의 직업적 불행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물론 한국에도 무뚝뚝한 직원은 있고, 미국에도 친절한 직원은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공기의 차이는 분명하다.
한국은 사람들이 뭔가를 빨리 처리하고, 움직이고, 만들어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느낌이 있다. 미국은 가끔 시스템 전체가 “급할 게 뭐 있습니까, 어차피 퇴근 시간은 옵니다”라는 철학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 있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사회 전체가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공항에서 다시 깨달았다.
아, 여기는 움직이기는 하는데, 별로 움직이고 싶어 하지는 않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