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삶 – 미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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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6월의 흐릿한 어느 아침, 나는 김포공항 활주로 끝에 서 있는 커다란 비행기에 올랐다. 그것은 내 생애 첫 비행기였다. 손에 쥔 것이라고는 미국행 편도 티켓 한 장과, 대학 졸업 후 은행에서 1년 반 동안 조금씩 모아둔 적금뿐이었다. 비행기가 천천히—그러나 새로운 삶의 무게를 실은 채—하늘로 몸을 들어 올리자, 터미널에서 손을 흔들던 부모님과 형제들의 모습이 창밖에서 점점 멀어졌다.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대륙에 대한 길고 조용한 생각들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펼쳐졌다.

    내가 향한 곳은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 아칸소주 페이엇빌이었다. 주립대학에서 MBA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광활하고 반짝이는 태평양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갔고, 나는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준비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이 떠나온 길이었으니, 불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집안 형편상 큰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기에, 나는 등록금이 가장 낮은 학교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마음속 부담은 무겁게 내려앉았고, 내 영어 실력으로 과연 대학원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침내 비행기는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서툰 영어로 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짐을 찾아 들고, 털사행 연결편을 타기 위해 낯선 터미널을 숨 가쁘게 뛰어다녔다. 환승 시간은 너무 촉박해 공항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다.

    털사에 도착한 뒤 다시 페이엇빌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 표를 들여다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표에는 낮 시간대 연결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창밖의 하늘은 이미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승무원에게 표를 보여주자, 서울의 여행사가 실수를 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페이엇빌행 야간 비행기는 없으니, 다음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는 이 없는 낯선 나라에서 홀로 밤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한 승무원은 걱정하지 말라며 항공사 비용으로 호텔을 잡아주겠다고 했고, 그 말에 잠시 안도했다. 그러나 잠시 뒤 다른 승무원이 와서 그것은 항공사 책임이 아니라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스스로 호텔을 찾아야 한다는 말에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자기 집에서 하룻밤 묵어도 좋다며, 다음 날 아침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믿기 어려울 만큼 따뜻한 호의였다. 그의 집에 도착하자 그는 작은 방 하나를 내주었다. 혼자 앉아 있으니 배고픔은 견딜 만했지만,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창문을 열고 담배 한 대를 피운 뒤, 긴장과 피로가 뒤섞인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약속대로 나를 공항까지 태워다주었다. 나는 아주 작은 비행기에 올라 페이엇빌로 향했고, 순식간에 작은 지역 공항에 내려섰다.

    짐가방을 들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비로소 공항 바깥의 미국 땅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풍경은 황량했다. 공항 주변에는 끝없이 펼쳐진 농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야 내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어떻게 삶을 펼쳐나갈 수 있을지,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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