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삶 — 교수의 조카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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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pher 99.***.124.11 252

    교수의 조카딸

    공과대학에는 한국인 교수 한 분이 계셨다. 학교 전체를 통틀어 한국인 학생은 열다섯 명 정도밖에 없었는데,
    우리는 가끔 교수님 댁에 모여 함께 식사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한국인 학생들 가운데 교수님의 조카딸도 있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갓 유학 온 신입생이었으며,
    교수님 댁에 머물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2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그녀가 나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날 밤 10시가 넘은 시각,
    그녀는 내 기숙사로 찾아와 나를 자기 차에 태우고 공원으로 데려갔다. 가는 동안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침묵은 계속 이어졌다.

    공원에 도착한 뒤 그녀는 어둡고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서야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은 한국 이화여대 근처에서 큰 약국을 운영하는데, 오빠네 집은 뭐 해?”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리 집은 아직도 계란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왠지 그 사실을 밝히기가 꺼려져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 역시 운전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한참 동안 흐른 뒤,
    나는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키스가 끝나자마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곧 화난 표정까지 지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차에 시동을 걸고
    내 기숙사로 차를 몰았다. 나를 내려준 뒤에는 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차를 돌려 떠나버렸다.

    그렇게 그녀와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데이트는 끝이 났다.

    그것은 1983년 3월의 짧은 에피소드였다. 나는 MBA 1학년 학생이었고, 그녀는 학부 신입생이었다.
    잠시나마 나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었지만, 그녀는 훨씬 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그 차이는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씁쓸한 마음을 남겼다.

    • 창작도 47.***.117.110

      어지간하게 비슷하게 해야지. 80년대는 미국 함부로 나오지 못하고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그것도 MBA를 평민이 나온다고??등록금이 얼마인데..ㅋㅋㅋ

    • 지나가던할카스 149.***.62.29

      위에말이맞다 옛날엔 비행기타려면 반공교육받아야되고 해외여행허가받기힘들어서 신혼여행도 다 제주도가서했다

    • 지나가던할카스 149.***.62.29

      근데 그여성분이 남자보는눈이 있네. 성추행한걸 사랑으로 기억하고 “그여자애가 날 좋아했지” 하는 마음이 남아서 40년후에 커뮤에 쓸정도면 진심 애플워치말고 전자발찌를 차야됨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