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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를 가지고 미국직장을 다니다 보면, 내가 왜 박사학위를 땄는지 회의를 가져볼 때가 제법 있다. 학사학위 달랑 하나가지고 최고위 임원 자리를 꿰차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사회를 구성해온 역사, 사회, 그리고 철학적 배경을 상기해보면 박사학위의 유용성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나를 직장에서부터 보호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그만 둘 수가 없다.
미국사회는 누가 뭐래도 유럽문명의 사생아이며, 미국의 주류백인들은 유럽철학의 가치관을 무의식적으로 내재화한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매일 부딧치고 겪어내는 직장생활의 모든 일상사는 이와같은 유럽문명 철학이 수백년간 주조해놓은 결과물이다.
마치, 한국사회 출근길에 매일매일 부딪치는 지하철 노약자 좌석이 조선시대 500여년간에 축적되어온 유교철학의 결과물이듯이 말이다.
갑자기 위와같은 생각이 들게 된것은, 아래와 같은 구절을 어는 글에서 읽으면서였다.
“근대성의 신화는 타자의 미성숙, 야만성이 희생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근대적 주체의 폭력을 미성숙한 타자를 계몽하고 문명화하기 위한 행위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유럽문명의 철학적 근간으로서, 칸트-헤겔-하버마스의 계보를 잇는 합리적 보편성이라는 근대 유럽문명 철학을 한 구절로 압출해놓은 것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위의 구절속 “타자의 미성숙, 야만성”은 미국직장 생활에서 외국인, 비백인, 영어액센트로 나는 받아 들이고 있다.
하지만, 박사학위는 미성숙이라는 단어를 완전한 성숙이라는 단어로 치환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직장 생활에서 우리와 같은 비백인 외국인 출신 노동자의 낯선 영어 액센트는 “미성숙” 그 자체이지만, 박사학위는 “성숙” 그 자체를 상징하는 certificate이기 때문에, 미국직장내 주류 백인들은 혼란속에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함께 일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그냥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그냥 내버려 둔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성숙한 타자인지 아닌지 판다하기가 영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들의 혼란속에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영어 액센트가 엉성하고 백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보여주면 살아남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유럽문명 철학을 내재화한 백인들의) 폭력에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폭력이란 직장에서의 해고나 레이오프이다.
아래, 어떤분이 취미로 박사학위를 따려 하신다기에 어이없어 하다가 뜬금없이 읽게된 어느글에서 들게된 생각을 나누어 본다.
취미로 박사학위 취득한다는 그분의 말씀은 나에게 다음과같이 들렸기에 그렇다.
유럽근대문명인들에게 미성숙한 타자로서의 대표적인 야만인들사례는 단연, 아메리카 인디언들이었다. 지금은 거의멸종상태이다. 이러한 멸종위기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비책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박사학위를 취미로 따보려는 아메리카 인디언들 (이들의 DNA는 우리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99.99%)의 생존확률이 떠올라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어서 이다.
취미로 꽃을 키우거나, 취미로 기타를 배우려는 행위로 과연 근대문명의 미성숙한 야만인을 벗어 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