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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넘어버린 나이에 이런 하소연 하는게 창피스럽고
또 사연많은 저보다 더 힘들 분들께 실례지만
혼자서 우울해 한지가 어느정도 되어서 꾸밈없이 이 글을 써봅니다.
지금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만.
우선 한국에서의 제 삻은 이랬습니다.
아빠는 알콜중독 이었고, 엄마는 제가 말을 옹알이 할때즈음 나이에 이혼했습니다. 그 이후에 다시는 연락이 없었구요.
… 어린시절에술먹고 수 차례 아빠가 새벽 시간에 눈 앞에서 자살 시도를 하려고 한게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경찰도 불렀었구요.
새벽시간에 응급실도 가고. 여러번 그런 식이 있었습니다. 옥상에서 뛰어내린다는걸 다리를 붙잡고 울기도 했었고
중학교 때도 트라우마 이지만 술먹고 성적이 안나왔다고 아빠가 교복을 대놓고 찢어버리는 바람에 그 다음날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왜 교복 안입고 왔냐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말 참담한 모습이 많이 있었습니다. ….
술을 수십년째 먹었었고 집안에 봐주는 어른이 아빠 빼고는 아무도 없다보니
지금 생각해보니 사실상 정신병 환자가 유일한 어른인데,
집안에서 아무런 기준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학교에서 밤 10씨 까지 야자를 하고 학교에 늦게 남아있는게 늘 저는 좋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고 나서 현장에서 일을 했고, 군대도 다녀오고 나서,
나름대로 시도를 여러가지 방향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은 안갔습니다.
집안 문제가 지속이 되었고, 여전히 성인이 되어도 집안은 똑같았습니다.
정신병증으로 해석을 하자면 이런 저런 쓰레기들을 집안에 모아두는 일이 많아서 수차례 정리를 하고 치우고
숨긴 술을 발견해서 실랑이를 하면
수면제를 다량 삼키고 자살 시도를 한다고 침 흘리고 있고 그런 장면들 이었습니다. 그러면 또 야밤에 구급차 부르고.
6살 위인 형제도 있는데,
정상적으로 사는 모습이라고 볼 수 없구요. 챙기려고 몇번 노력을 했습니다만 …
어린시절 제가 많이 맞기도 하고 괴롭힘도 당했지만 서도 성인되서 여러번 오히려 도와주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나도, 이제는 마흔 가까이 나이가 있게 되어도 전혀 바뀌질 않더라구요.
속으로 이런 저런 사건들을 정말 곱씹으면서 항상 너무 많이 슬펐습니다.
이대로면 정말로 일가족 동반 자살 뉴스 기사가 날것같아서
20대 중반부터는 전부 절연했습니다.
절연하기 전까지 나름대로의 노력은 했던것 같습니다.
제가 태어난 우리 한국은 참 좋은 조건의 나라인데, …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사회에서 부딪히며 일을 하면서
속내로는 너무 많이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어린시절 내내 기본이나 기준이라는게 무엇인지 가늠을 못하고 살아왔었는데
예컨데 숙식노가다 현장일을 하더라도 아무리 사람들이 그 현장의 사람들을 밑바닥이라 욕한들, 우리 집안의 행태에 비하면 한참 더 나았습니다.
최소한 제 기억에 한국을 떠올려보면 … 가족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직시하면 불편하니까 다같이 문제가 없는척 무시하는 사람들” 이라는 이미지가 솔직히 말해서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서 솔직한 이야기를 하면 한국을 떠올릴때 감사한것도 많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너무 끔찍합니다.
어린시절이 알콜중독자랑 아빠 때문에 너무 힘든 와중에,
그 무기력하고 어린 와중에 주위에도 눈치를 채는 어른도, 도와주는 어른도, 아무도 없었던게 제 기억입니다.
아마 눈치는 챘었겠으나 자기들도 감당 안되니 다 못본척 한것이겠죠. 가족도 다 겉으로는 잠깐잠깐씩은 필사적으로 멀쩡한척을 했으니까요.
아니면 그때 당시가 전부 다 사람들이 엉망진창인 시절 이었거나..
그래서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왔습니다. 몇년동안.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정말 잠식되어서 정신이 나가버릴것만 같은 때가 남들에게는 말은 못하지만 때때로 있습니다.
내색 한적은 없지만 솔직히 밤 시간때마다 많이 울기도 합니다.
목숨 끊는것도 수도 없이 생각해 봤지만 그런 선택지들은 하나같이 제 부모가 했던것처럼 도피를 하고 도망가겠다는 선택지 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비겁한 생각은 안하려고 합니다.
절연한지 몇년이 지났는데도 트라우마처럼 그런것들이 아직까지도 떠오르는게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사실입니다.
고통스러울때마다 그냥 해야할 일만 해서 몸을 바쁘게 움직여버려서 억지로 잊어버리곤 합니다. 다행히 유흥이나 주사에 취미를 들진 않았습니다.
전기 기술쪽에서 현장직에 있었고, 골조전기, 내선전기 다 했었습니다.
제조업쪽 자동화설비 쪽에서도 일을 했었구요. 지금 미국쪽에서 일하는 형님 분도 알고있습니다.
그 형님분도 그리고 다른 분도 미국에 오라는 듯이 당당하게 말하지만… 업계 특성상 정식 취업 비자가 아니라 B비자 위주인걸 아마 아시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어딜 일하러 가나 평판은 좋았구요. 일로 맺어진 인연들은 다 하나같이 고마우신 형님, 선배님들에 대한 기억 뿐이 없네요.
지금은 시설관리 쪽에서,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지도 이제 거의 3년이 가까워 지고 있네요.
모의 어플에서 제가 치룬 IELTS 스피킹 테스트 기준으로 Band 6.5 정도 나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금 한국에서 준비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교육이나 배우기에는 여건이 한국이 더할나위 없이 좋기, 때문에 영어는 당연한것이고
있는 시간동안에 국제 자격증 위주로 EPLAN 이라던지, 지멘스 PLC 교육 이라던지 폴리텍에서 강좌하는 강좌라도 등록을 해볼까 어렴풋이의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시간을 끌게 된다면, 현재 나이 때문에 결격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해봅니다.
저는 해외에서 어찌되었건간에 정착하고 살고 싶어서 지원을 하는 입장인건데
아시다시피 많이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고 최소한 기술직이라는 중심잡기는 유지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보전, 공무 쪽 직무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계 회사여도 되고, 아니어도 상관은 없을듯 합니다.
영어로 안내된 여러군데 잡 사이트를 몇군데 찾기를 했으나,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지원을 해서, 영주권까지 스폰해주는 업체를 만난다는것이,
지금 제 스펙 기준으로 ; 고졸 , 아이엘츠 어학 능력, 현장직 경험 몇년
이것으로, 온라인상 접수를 하고, 화상 면접을 보고, 비자 진행하고 티켓 등 발권되어 바로 떠난다는게 제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과연 그런 방식으로 정말 현실성이 있을까요? 조금 걱정이 됩니다.
아니라면 현지에서 community college 2년짜리를 등록해야 할듯한데. 지금 상황은 고스펙 인도계 이민자들도 이미 꽉 차있듯이 많고,
입장에서 현지 대학에 시간을 그렇게 많이 할애해야 할때는 아닌것 같습니다.
일자리에서 병행을 한다면 모를까 일을 시키려고 비자 스폰을 해서 인원을 데려오는게 회사 입장일텐데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현지에서 된다면, 어느정도의 오지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처우도 크게 신경 안쓰구요. 어린시절 고생을 많이 하다보니… 컨테이너에 살아도, 트럭에서 노숙하며 살아도 된다는 마인드 입니다.
지금도 하루에 끼니를 한번만 파스타로 단촐하게 해먹습니다.
그렇게 한지 이미 꽤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약하더라도,
기준이 되어있고 비자나 영주권 상으로 결격이 안 생길만큼만 찾고 있습니다.
이 나이에 여자친구같은게 있었다면 아마 고민이 많았겠지만, 이미 온전히 혼자인걸요.
타지 생활도 많이 해봤고 해외 출장도 몇번 나가본 터라 고생도 왠만큼 할 준비는 되어있는데…. 정확히 현지에서 잡 마켓과 생활이 어느정도 라는것인지 가늠은 잘 안갑니다.
30대 남자 답지 않게 초장부터 구구절절하여서 죄송합니다.
그냥 한국 자체에 미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보니 이런 긴 글을 썼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