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E 법인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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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실 76.***.224.91 3592
    S사장님은 저의 두 번째 큰 고객이었습니다.

    90년대 초반, 직원 다섯명과 기계 두대로 자수공장을 열었습니다.

    일년이 지나 주문 물량이 많아지자 기계를 더 들여와야 했습니다.

    십오만불 짜리 기계 두 대를 들여오면서 법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저의 법인설립 첫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지요.

     

    법인 설립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은행서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파이낸셜 스테이트먼을 만드는 일은 저의 기본적인 업무입니다.  당시 사업상 거래가 활발했던 웰스파고 은행에서 3개월에 한번 제가 직접 작성한 회계서류를 제출하고, 인캄이 1불이상되어야 한다는 (손실을 보면 계약위반이라는 뜻) 계약서에 S 사장이 사인을 했습니다. 물론 그의 퍼스날 게런티도 들어갔습니다. 기계 두대의 인보이스가 30만불인데 80프로를 융자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계가 8대로 늘고 직원이 40명에 달했습니다.

    샤핑센터의 한구석에 이천스퀘어피트로 시작한 공장은 몰 안에 4개의 빈자리를 더 얻고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가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경 20마일 거리에 마땅한 빌딩을 구입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직원들이 문제였습니다. 5마일이 넘으면 사표낼 직원들이 많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카풀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직장을 잃을까 걱정했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도 숙련된 직원들을 놓치면 공장 가동에 지장이 큽니다. S 사장은 욕심을 조절할 줄 아는 사업가 였습니다. 부동산 투자와 사업을 합치고 싶었지만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한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마침 아주 가까운 거리에 가구점 자리가 났습니다.

    레이지보이 가구 체인점 이었는데 문을 닫아 좋은 조건에 리스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가장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비즈니스 라이센스가 저의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이만 스퀘어피트의 넓은 공장과 사무실에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가구점을 할 때는 직원이 몇명 없었으므로 남녀각각 화장실이 하나였지만 직원수가 많아짐에 따라 최소한의 법적 허용치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제너럴 콘트렉터와 계약하여 화장실 공사를 시작했고 끝나야 할 시간에 당연히 끝이나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공사가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기계 8대와 사무실을 이전하는 일은 세심한 계획이 필요했습니다.

    새 공장에 전기 공사를 하는 일만 한달이 걸렸습니다.

    도안을 그리고 기계가 놓일 자리를 만드는데 새로 들여올 기계들을 예상하여 여러번 수정하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계들을 운반하는 트럭을 예약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당일, 공장의 기계가동이 멈춤으로 인해 벌어지는 주문 물량을 조율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기한 내에 만들어 보내지 못하면 계약위반에 신용추락이 따라오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주말도 없이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입니다. 우리가 지체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은 21시간 입니다.

     

    제가 안이하게 공사하는 사람 말만 믿었지요.

    지불도 100프로 끝냈고 당일 아침까지 화장실을 완공한다고 약속을 했으므로 당연히 믿었습니다. S 사장이 공사가 지연되니 이전 계획을 다시 잡을까하는 의문을 제기 했을 때 문제 없다고 큰소리 친 것은 저의 오만이었습니다. 그 때의 뼈아픈 경험때문에 중요한 일들은 제가 직접 다니면서 제 눈으로 보고나서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리조나에서 봉제와 자수기계를 움직일 트럭이 이미 떠났습니다.

    근처 이삿짐 회사에서 사무실 이전을 완료했습니다.

    직원들의 업무 스케줄도 확인 되었습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이라면 전 직원이 이틀쯤은 오며가며 스탠바이하겠지요. 타임카드로 철저하게 근무시간이 지켜지고 오버타임, 더불타임을 정확히 계산합니다. 연방법과 가주의 최저임금법을 따라 그중 높은 금액을 지불합니다.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타임카드를 쓰면서 두배의 봉급을 주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노동력 착취라고 정의하는 미국입니다. 생산 공장에서 직원관리의 허점을 보이면 법정 소송이 줄지어 일어나므로 조심해야합니다. 공백이 생기는 스물한시간 동안은 메니저급만 남았고 다음날 9시 기계를 돌릴 전 직원이 출근하도록 준비되었습니다.

    기계작동을 완전히 멈추기 전 오후 1, S 사장이 저에게 마지막으로 전화했습니다.

    정말 가도 됩니까?’

    물론이지요. 우리 계획에 차질은 없습니다.’

     

     사실은 며칠전 공장 메니저가 제게 조언을 했습니다. 가든그로브에서 사업을 하다가 소송에 휘말려 힘들게 번 돈을 탕진하고 한국사람들의 적당주의와 미국법의 한치도 양보없음 사이에서 피말리는 경험을 했다는 분입니다.

    이 선생님 조심하세요. 공사허가는 만만히 볼게 아닙니다. 내가볼 때 공사가 지연되는 것은 기정 사실이고 따라서 허가가 안나올 것도 확실합니다. 이대로 공장이 멈추게 될 위험이 있어요. 좀 손해를 보더라도 한발 물러서지요.’

    그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NO PERMIT ALLOWED”

    오후 세시 경리부장이 노란종이를 들고 허겁지겁 제 사무실로 달려왔습니다.

    왜 그렇게 쉽게 생각했는지 순식간에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시청에 전화를 했습니다.

    담당자는 사무실에 없습니다.’

    수퍼바이저를 찾았습니다.

    휴가중입니다.’

     

    저는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산타아나 시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시청에 가는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다운타운 원웨이를 반대로 들어갔습니다. 어찌해서 시청에 도착하여 뛰어들어 갔는지 기억에도 없습니다.

    담당자에게 두가지를 설명했습니다.  수년간 E 법인이 시정부에 낸 세금, 그리고 고용창출에 대한 사회적인 기여입니다. 또한 준비해간 E 사장의 세금보고서를 내밀었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법인의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기위해 애쓰는 증거를 보라고 했습니다.

     

    공장이 한시간 중단되면 열사람이 봉급을 가져가지 못하고, 공장이 하루 중단되면 전직원이 봉급을 가져가지 못하고, 만일 공장이 일주일 중단되면 법인이 죽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그리고 복도에 주저 앉았습니다.

    비즈니스 라이센스를 내 손에 들고가기 전에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화장실 공사가 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안되는 것을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임시 화장실을 만들면 조건부 퍼밋을 내줄 수는 있지만 제 선에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런 결정권이 있는지 말해주세요. 당장 만나게 해주세요.’

    그분은 지금 휴가를 갔습니다.’

    휴가를 어디로 갔습니까?  제가 그리로 가서 허락을 받겠습니다.’

     

    시청직원이 모두 퇴근할 때 저도 나와야 했습니다.

    수퍼바이저의 전화에 메시지만 직접 남길 수 있도록 선처가 되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4시에 다시 시청으로 갔습니다.

    시청 입구 돌계단에 앉아서 추위에 떨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저의 교만을 용서하시고 이번 기회를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침 8시반에 수퍼바이저가 공장에 나왔습니다.

    이틀 내에 임시 화장실을 설치한다는 조건 아래 영업 허가를 받았습니다.

    8시반 부터 9시반 사이에 경찰서, 알람캄퍼니, 소방서 등의 여러 부서에서 무려 아홉 항목을 첵 마크 했습니다. 10시부터 공장이 가동되었습니다.

    지난 칠년간 경찰서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S 사장의 안목이 돋보였습니다.

    해마다 경찰서의 행사에 참여하고 후원금을 전달하고 경찰서에 한국음식을 보내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죽는날까지 배워도 배움은 끝이 없다는 진리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또한 내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천년도 초반 E법인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자수와 봉제기계 20대를 삼교대로 돌리며, 디자인 부서를 신설하고, 직원 150명이 활발하게 일하는 단단한 회사로 발전했습니다.

    S 사장님은 젊은 1.5세 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검소한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증권과 은행잔고가 날마다 불어났으므로 개인재산 관리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푼돈을 써서 고급차 한대 구입하시지요?’

    오버타임으로 가족이 먹고 사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제가 그럴 수는 없지요. 또한 언젠가 사업이 안될 때를 대비해야지요. ‘

     

    그의 말대로 자수공장, 봉제공장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쿼타 시스텀이 무너지고 싼 완제품이 중국, 베트남, 인도 등지에서 미국으로 밀려들어 왔습니다. 인건비와 재료비, 정부규제 때문에 가격 경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문 물량이 줄어드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만 생산할 수록 적자를 보는 사업을 계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S 사장은 서서히 직원을 줄여 나가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파이넨셜 리포트를 보여주면서 당장 10프로 봉급 삭감을 해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일반 경비는 줄일대로 줄인 상태입니다. 삭감되는 봉급의 거의 두배만큼 전체 레이버 코스트가 줄어든다는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또한 기계로 인해 발생되는 재산세도 만만치 않으므로 사용이 중단된 기계들을 처분하여 없애라고 말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카운티에 재산세 재조정 요청을 하고 감사관을 불러 현장 답사를 하게했습니다.

     

    너무 더운 날이었습니다.

    봉급 수표에 사인을 하기위해 S 사장이 제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전체 봉급 금액과 세금을 살펴보던 사장은 공장장을 불렀습니다. 공장장이 제 사무실에 오는 동안 차 한잔을 마시면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공장장이 도착했습니다.

     

    지금 일년째 회사가 적자를 보고 있어요. 공장직원 10프로를 해고하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 그대로 있습니까? 공장장이 먼저 해고되고 싶어요?’

    그처럼 단호한 말투와 표정을 한번도 본 일이 없었습니다. 사업가는 역시 돈으로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꼭 실행 하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힘들어요. 한사람 한사람 다 직장이 필요한데 누굴 내보내야 할지사장님이나 선생님은 숫자만 보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사람을 보면서 실천해야하는 입장입니다. 이해해 주시고 조금만 시간적인 여유를 주십시요. 몇 명은 다른곳에 곧 취직이 될 것 같아서….’

    원망의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이유는 필요없어요. 한 달 후 봉급 명세에 변화가 없으면 공장장 월급은 없습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15년동안 법인의 의무를 다하고 E 법인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릴적 부모손에 이끌려 이민온 전형적인 1.5 S사장은 쉬고 싶었습니다. 너무 힘들게 살아온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저도 인정했습니다. 그처럼 열심히 일하는 1.5세 청년을 저도 별로 만난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법인은 법인 자체에 생명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결혼하여 자녀를 얻으면 그 자녀는 성장하여 자기의 갈 길을 갑니다.

    나로 인해 생긴 생명이고 내가 보살펴 줄 의무가 있지만 내 소유는 아닌 것입니다.

    법인도 그와 같아요.

    S 사장이 만들었지만 그가 없어도 E 법인은 다른 주인을 만나 영구적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소문나지 않게 새주인을 찾았습니다. 직원들의 사기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합병 전문회사에 의뢰를 하고 필요한 내부서류를 준비했습니다.

    적당한 바이어가 나섰습니다. 장부 가치로 회사를 사겠다는 풀 오퍼입니다.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에스크로가 끝난 후 일년동안 두사람 (S 사장과 디자인팀장) 이 풀타임 직원으로 일한다.

    둘째, 현재의 고객명단을 최선을 다해 확보한다.

     

    중국계 의류 회사였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행복한 마음으로 거래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몇번 만나고 나니 다음과 같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첫째, 일년을 월급장이로 일하기 싫다.

    둘째, 가까이 비슷한 공장을 운영하는 지인, 그리고 한인 자수공장은 결국 문을 닫게된다. E 법인을 기반으로 가주에 의류 공장의 거점을 마련하려는 중국의 중간 기업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손님 리스트와 라이센스를 목적으로 한 거래였습니다.

     

    S 사장은 오퍼를 거절하고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법인을 해채시켰습니다.

    일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개인사업체를 열어달라고 말하겠지요….

     

    이영실(Diane)공인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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