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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선진국가들이 수백년에 걸쳐 이루어낸 근대산업화를 단 몇십년만에 이루어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만큼 특출한 성과를 달성해버린 대한민국은 어쩔수 없이 그 성공의 밝은면과 어두운면을 동시에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어두운 측면들중의 대표적인 것으로 저는 한국사회의 the nouveau riche를 들고 싶습니다.
the nouveau riche는 한국말로 졸부를 뜻하는 것인데, 영어식 설명으로도 다음과 같습니다.
the people who have recently become rich and like to show how rich they are in a very obvious way그런데, 졸부들도 다같은 졸부들만 있는게 아니라, 양심적이거나 사유라는 걸 하는 또는 할줄 아는 졸부들도 있지요. 제가 위 제목에서 말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바로 이같은 졸부들이고, 이들을 저는 “금수저”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그밖에 졸부들은 사실상 쓰레기들이라고 불러도 별 무리가 없겠습니다.
이러한 대한민국 졸부들 또는 금수저들이 (사유할 능력을 가진 졸부이) 왜 이민을 나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된 계기는 아래 정희진이라는 평화학자의 어떤 책 서평 일부분을 접하고 나서 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프란츠 파농(1925~1961)은 “직장을 잃지 않으면서 죄책감 없이 고문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알제리 독립군을 고문하는 프랑스 경찰을 상담했다. 그들은 이를테면, 지적이고 싶지만 잃는 것은 없었으면 하는, 내가 자주 만나는 유형으로는 페미니즘 관점이 주는 힘과 다양한 지식은 갖고 싶지만 세상과 갈등은 피하면서 기득권은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식의 앎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평화 혹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얼룩진’ 옷을 벗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소외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행복보다 괴로움이 안전하다. 행복은 지켜야 하는, 피곤한 것이다.”
위의 발췌구절에서 특히나 첫번째 하일라이트 볼드(Bold) 부분인 “직장을 잃지 않으면서 죄책감 없이 고문하는 방법”이 담고있는 이중적 의미가 제겐 한국이라는 약탈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할 수 있는 금수저로서 “불편한 마음없이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뜻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한국의자본주의가 약탈적인 이유는 한국인들 대다수가 건물주가 되기를 욕망하는데, 이 건물주라는 것이 기본 경제학이론에 따르면 지대를 추구하는자라는 뜻이며, 생산을 전혀 하지 않고 이자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고리대금업자와 동격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알제리 독립군을 고문하는 프랑스 경찰들이 “직장을 잃지 않으면서 죄책감 없이 남들을 고문하는 방법”을 얻을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정희진은 “불가능”이라고 이미 말했지만, 저는 정씨의 대답을 좀더 디테일하게 잘라서 이렇게 답하고 싶은것 입니다. 한국에선 불가능하지만, 이민나오면 가능할지도….
그리고, 이민생활이 주는 덤일지 모르지만, 위의 발체구절중 두번째 하일라이트 볼드(Bold) 부분을 나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나는 이런느낌을 자주 가지면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외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행복보다 괴로움이 안전하다. 행복은 지켜야 하는, 피곤한 것이다”
미국생활 때로는 외롭습니다. 그리고 물설고 낯설움에 괴로울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것들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더 행복하곤 합니다. 내 경우엔 이런것들 (고독, 소외, 적막함)로 인하여 내 삶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더 깊은 사유와 성취를 일구어 갈 수 있었다는 판단이 들어서입니다. 심지어 60이나 70을 넘어서도 이러한 생활은 계속 진행 되어질 수 있습니다. 정년이 따로 없으니까요…
외노자 엔지니어로서 그냥 이민생활 버티어내며 20년가까이 살아오다보니까, 저도 모르게 제가 제 일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업무의 결과를 양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질적으로 고민하고 성취해내고 마는, 소위 말하는 장인정신일 수도 있는 습관이 저도 모르게 제 몸에 베게 된것 같은 기분 말입니다. 요즈음은 그냥 일자체가 즐겁습니다. 그래서 월요일 출근이 오히려 기다려 질 지경입니다.
이와같은 이민자로서의 삶이 (또는 소외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삶이) “직장을 잃지 않으면서 죄책감 없이 남들을 고문하는 방법”을 욕망했던 알제리 독립군을 고문하는 프랑스 경찰들의 삶보다는 분명하게 나아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제가 한국내의 모든 건물주들이 알제리 독립군을 고문하는 프랑스 경찰들과 다름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생산적인 노동을 하지 않고서 오로지 “사유재산권”이라는 특권 하나로 건물세입자들의 등골을 무한정 빨아 먹고 살아가면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것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남들을 고문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랬던 프랑스 경찰들의 마음가짐과 일맥 상통하는 맥락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제가 만일 한국이라는 사회에서의 기득권에 안주하여 그곳에서 살았다면, 지금 어땠을까를 가끔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 많은 유혹과 욕망의 거리를 헤메고 다녔을테고 매일매일의 술과 향락의 시간들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금수저라도 진짜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가려면 약탈적이고도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 한국을 빠져나와 이민생활을 해볼만 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한국은 이미 자살율 최고 출산율 최저인 지옥이나 다름없기에….
그 지옥속의 쓰레기같은 삶으로 한번뿐인 인생 낭비하기는 억울하다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