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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언제나 생각하고 기억을 더듬으며,
좋았던 시간을 함께 보낸 그 분에게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올라 온 직장 상사에 대한 글을 읽고 다시 그 분과의 추억을 되새깁니다.
나와 띠동갑 정도였죠.
내가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내 또래의 성질이 날카로워 보이는, 기생 오래비 같은 사람이 다가오더니,
“xx씨? 반갑습니다. 저는 oo라고 합니다. 이리로 같이 갈까요?”
큰 회의실이었습니다. 몇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도 같이 앉더군요.
긴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나를 데리러 왔던 그 사람이 웃으며
“내가 노래 잘 부르면 한곡할텐데!! 노래대신 커피부터 한잔할까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라. 내 또래인 것 같은데 실실 웃으며 이런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되나?’ 싶었습니다.
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스스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직급이 꽤 되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속승진한 차장급인 책임연구원이었습니다.
그의 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5년 정도를 같이 일했는데, 너무 행복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는 소위 말하는 마이너였습니다. 연구소에서는 특정 대학 출신이 아니면 다 마이너였습니다.
마이너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였습니다.
죽어라 일하던가, 빽줄이 좋던가…
빽줄이는 똘아이인 경우가 많았죠.
죽어라 일하는 스타일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무척 피곤합니다.그런데 그 사람은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
차근차근, 언제나 준비하면서 일을 했고,
일을 시킬 때에는 계획과 함께 내가 할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해야 하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이 몫이었습니다.내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귀신같이 알고는,
할 수 있도록 상세히 설명하고 실례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버벅대면서 시간을 지체하면 같이 일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는지 상세히 설명하고 문서로 정리해 주었습니다.
“나 없을 때, 추가로 해야 할 일이 생기니 다른 방식으로 몇 번 반복해보세요. 소스도 고쳐보고 하면서.”딴 팀은 프로젝트 결과 발표 전날이면 언제나 밤샘을 하고 바빴지만,
우리 팀은 그런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딴 팀 눈치도 있고 하니깐 그냥 코드 리뷰나 한번 해봅시다.”
그는 혼자 묵묵히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하였습니다.그의 프리젠테이션은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내용보다는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의 세련됨에 넋이 나갈 정도였죠.
한번은 복잡한 통신 메카니즘을 설명하면서, 당시 MS에서 막 발표한
파워포인트의 베타버전으로 동적 기능을 이용해서 절차적으로 설명을 하는데,
입이 벌어질 정도였죠.그는 절대로 같은 팀 사람들에게 화내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큰 소리를 내는 일도 없었구요.
현장에 시험 설치하러 갈 때면 바짝 긴장한 내 마음을 눈치채고는
“책임은 내가 지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니 그냥 해보고 안되면 다시 해보고 고치고 하면 됩니다.”그는 ‘아랫 사람’, ‘부하 직원’이라는 말을 싫어했습니다. 그냥 ‘팀 동료’, ‘같은 팀원’ 이런 용어를 사용했고, 언제나 같은 팀원에게는 나이에 상관없이 존대말을 썼습니다.
한번은 “부장님. 존대말은 거리감이 느껴지니 말씀을 놓으시는 것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제 버릇이구요, 저는 이게 편해요.”
하지만 우리 팀원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집안의 곤란한 일을 설명할 수 없어, 다른 핑계를 만들어 외출하겠다고 하면
“부담가지지 말고 천천히 일보고 막바로 퇴근하세요.”
라며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마치 윗사람에게 보고하듯이 그 날 일어났던, 나와 관련된 일을 메일로 보내왔습니다.그의 단점이라면,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아래위를 가리지 않고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한번은 중역 있는 자리에서도 “그게 전무님께 일어난 일이라면 납득하시겠습니까?”라며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바람에 소장님이 말리고 하는 소동이 있었죠.)
술을 언제나 급하게 마시고 분위기에 취하면 멈출 줄 모르고, 그러다 어느 순간엔가 잠이 들어버리는 술버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고, 주사가 있는 것은 아닌데, 술 못 마시는 사람에게 술 권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그 술을 지가 무슨 백기사인양 다 마셔 버립니다.
권위, 카리스마, 무게감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별 영양가도 없이, 무게감으로 숨이 막힐 것 같은 회의에서는 그가 한마디 던져 웃다가 끝난 회의가 많았죠.
“연구소라고 말이야 복장에 대해 뭐라 안했더니 운동화 신고 오는 것들이 있지 않나 말이야. 연구원들 복장 때문에 내가 외부 손님들 보기가 창피해 죽겠어. 어이 x부장 어떻게 생각해?”
‘쓰바… 왜 하필이면 우리 팀장에게 x랄이야?’ 혼자 생각하고 있었죠. 오만상을 다쓰고 문책하듯 던지는 한마디에 그 분이 정색을 하면서…
“이번에 성과급 받으면 구두 한 켤레씩 다 돌리겠습니다.”
‘복장은 그래도 성과는 낸다’는 재치 넘치는, 뼈있는 대답이었죠.비공식 여사원의 인기투표에서는 내노라하는 총각들을 제치고 매번 일등이었습니다.
날카로워 보이긴 해도 아주 미남이었죠. 나이보다는 거의 십수년 젊어 보이는 귀티가 흐르는 꽃미남 스타일이었습니다. 유부남이라 혼자서 속앓이 하는 여사원이 있는가 하면, 괜히 들이대는 여사원이 있을 정도였으니… 그가 아랫사람과 여사원을 세심하게 챙기는 태도에 오해를 많이 사기도 했습니다. 본사 사람과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여사원들을 하나 둘 집에 가라고 보내고는 그 본사사람에게 “연구소 여사원을, 부장님께서 부당하게 대하시는 여사원들과는 구분해주세요.”라고 한방 먹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유머러스하고 매너좋고 인간성 좋고, 똑똑하며, 능력까지 겸비했던 그 사람을 생각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뭔가 결정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제가 미국 온 이후로 이민을 갔다더군요.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간다고 하니 그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욕심 같아서는 잡고 싶지만, 본인도 많이 생각한 결정이니 딴 소리는 소용이 없겠죠? 하지만 많이 힘들거예요.”
그랬던 그가 연구소에서의 위치상 한계를 느껴서인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서인지 몰라도, 그냥 호주로 이민 간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죠. 늦은 나이에 이민 갔지만, 그가 하는 사업은 잘되리라 믿습니다. 안부를 누군가에게 전해듣고 있지만, 내가 직접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무슨 사정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더군요.‘참 좋은 사람’과 같이 일했던 소중한 기억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