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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7X년생입니다. 어느덧 세월이 이렇게 흘러 4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 분들도 계실 듯 한데, 그동안 이 험한 세월을 어떻게들 살아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몰랐었는데 돌아보니 인생의 우여곡절이 참 많았네요.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서 장교로 전역 즈음 IMF외환위기를 겪습니다. 그때는 그게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몰랐는데 취직하려 보니 사람 뽑는 데가 없어 그제서야 그런거구나 했습니다. 취업이 쉽지 않던 시절이라.. 집에서는 군대에서 말뚝 박으면 어떻겠냐고.. 막상 알아보니 그해는 신청자가 폭주하고 자격 조건이 안돼 그냥 그렇게 제대를 합니다.
없는 가정 형편에 무전 유학을 떠납니다. 식당 웨이터 파트타임을 하며 간신히 끝내고 돌아와 작은 IT 기업에 제 인생 첫 취업을 합니다. 열심히 일해 초고속 승진하던 중 카드 대란이 터집니다. 그게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장은 밤사이 야반도주를 하고 회사는 채권단으로 넘어갑니다.
이직 후 다시 마음을 잡고 열심히 일합니다. 이직한 회사에서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을 냅니다. 그때도 그게 뭔지 몰랐는데 지금 와 돌아보니 제 인생 가장 중대한 전환점이 되 버렸네요. 그 즈음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아내를 만나 결혼과 동시에 그간 벌어 놓은 돈으로 전세 낀 첫 집을 장만하고 그 해 미국에 와서 첫 아이를 낳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발생전… 회사가 어려워집니다. 이래저래 휴직 같은 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확률 제로의 구직 활동을 시작합니다. 우연히 스태핑 회사 소개로 미국 대기업에서 파트타임으로 3개월 정도 일했는데 저를 좋게 봐준 PM의 추천으로 정직원이 됩니다. 우여곡절끝에 영주권도 받습니다.
회사에서 투자한 신규 사업 하나를 맡아 승승장구,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둘째 아이, 셋째 아이도 태어납니다. 몇년 간은 집에서 잔 날 보다 호텔에서 잔 날이 더 많았고 밀리언 마일러가 되어 자주 업그레이드 혜택도 받게 됩니다. 야근에 출장에 또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Executive MBA까지 제 인생 가장 빛나고 (?) 바쁜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진한 향수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어린시절 모든 게 (친구들 포함) 그리워지고.. 가장 중요했던 건.. 홀어머니께 할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한국 얘들같이 커 줬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모 S 대기업에 수석인지 차석인지로 입사하게 되어 귀국을 합니다. 이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됩니다. 철야, 주말 출근… 일이야 어떻게든 하겠는데 눈치 싸움과 인간 관계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6개월 쯤 되니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그 회사에 실력은 제로와 가깝고 성질 더럽고 매일 회사 돈으로 술 마시며 직원들의 충성도를 점검하는 모 임원과 한판 붙습니다. 다들 통쾌해하지만 직접 나서는 않더군요. 그 무렵 그 사람 하나 때문에 퇴사한 퇴사 동기들이 한 10명쯤 됩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이상한 조직이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오기로 마음 먹고 한국 생활을 정리하던 즈음.. 전에 다니던 미국회사 보스로 부터 연락을 받습니다. 다시 와 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다시 그 회사에 전보다 (훨) 좋은 조건으로 재 취업을 합니다. 꿈같은 생활이 시작됩니다. 마당있는 큰 집 사던날 큰 애의 함박 웃음을 기억합니다. 꿈같은 몇년이 지나고.. 그 사이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를 받습니다. 내가 맡던 부서가 다른 회사와 딜이 되어 넘어갔다. 너두 가야 한다. 그때 역시 그게 (M&A) 곧 어떻게 나에게 다가올지는 잘 몰랐습니다. 제가 맡던 부서가 넘어간 그 회사가 경쟁 업체 였던지라 곧 구조조정이 시작 됐습니다. 점령군처럼 와서 모든걸 뒤집어 놓고 결국 같이 일하던 동료 1/3이 레이오프 됩니다. 저는 아직도 간신히 붙어있습니다. 점령군들의 무시와 우월감을 매일 느끼며 저는 퇴역 고문같이 훈수 두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렸고 목은 너덜너덜 해진 느낌입니다. 그 옛날 군대에서 봤던.. 하루 종일 신문보고 장기두던 전역 앞둔 대령 아저씨들이 생각났습니다. 얼마전 주 고객인 중국계 고객들이 관세 문제로 어려워지자 더 큰 구조조정 계획이 나왔습니다.
마음은 자연스레 비워집니다.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르게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제 머리위로 나비같이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집은 페이오프하고 몇 년간 401K 도 수익률이 꽤 좋았네요. 1~2년간 먹고 살만한 Cash는 세이브 해 놓았습니다. 작년에 집사람이 뭘 자그맣게 시작해서 수입이 꽤 됐는데 (덕분에 세금은 엄청 냈습니다) 올해는 이상하게 그게 또 잘 안돼 작년 매출에 반도 안되네요. 사업이라는 게 업앤다운이 참 크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주제넘게 운이 좋아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문득 찾아오는 염려와 고뇌는 피할 길이 없네요. 요즘 제 유일한 낙은…. 애들이랑 집근처 파크에서 볼 차는 겁니다. 아이들이 제 앞가림 할 때까지 만이라도 아버지로서 더 열심히 살아겠다는 마음도 다지면서.. 요즘 젊은 세대들은 더 힘들다고 하더군요.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저희 아버지 세대들도 나름 어쩌면 더 힘드셨겠지요… 그러고보니 이제는 진짜 중년이 된게 맞는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