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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장에서 하는일의 대부분은 남들이 써놓은 보고서를 리뷰하고 코멘트를 제공하는 일이다.
덕분에 나는 두가지 감정을 업무를 통해서 자주 느끼곤 한다. 하나는 쾌감이고 다른 하나는 짜증이다.잘쓰여진 보고서를 리딩할때 느끼는것이 쾌감이고, 엉터리 보고서를 리뷰할때 갖게되는 감정이 바로 짜증이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의 분류기준으로 이 세상엔 두가지 종류의 보고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쾌감보고서, 다른 하나는 짜증보고서이다.이 두가지 종류의 보고서들은 각각의 특징이 있는데, (절대적이진 않다.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쾌감보고서는 충분한 시간과 Budget을 가지고 준비되고 쓰여진 것이고, 짜증보고서는 충분히 못한 시간동안 (심지어 budget은 충분했을지라도) 쓰여진 보고서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따라서, 나는 보고서를 리뷰할때 가장 먼저 체크하는게 얼마동안 무슨 연유로 이 보고서가 쓰여지게 됐는지 살피곤 하는데, 보고서 준비기간이 내 판단에 의거하여 충분치 못하고, 보고서 준비의 발생 근거 또는 백그라운드에서 구린냄새 (Fish Smell)가 난다면 짜증을 대비하는 마음자세를 가다듬고 보고서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다. 이런 짜증보고서류는 보통 나의 무지막지한 빨간색 코멘트들로 도배되다시피 하곤 한다.
반면, 잘쓰여진 보고서는 매번 나로하여금 나의 직장업무에 대한 개인적 시각을 확인시켜주곤 하는데, 그것은 직장업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쾌감을 느낄 수 있고, 스트레스가 아닌 일의 즐거움을 가져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준비기간과 보고서의 백그라운 체크만을 통해 직감되는 쾌감 보고서들을 책상위에 던져놓고 퇴근하는 금요일엔 심지어 이 쾌감용 보고서를 본격적으로 읽게될 월요일 출근이 기다려질 정도이다.
내가 위와 같은 긴 사설을 쓰게 된 연유는 일요일 아침 읽게 된 어느 책 서평 칼럼에서 발견한 아래 구절 때문이다. 내 경험상 짜증보고서들은 효율성 (Efficiency)이란 단어를 쾌감보고서들 보다 훨씬 많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효율성 (Efficiency)이란 단어를 믿지 않는다. 경험상 그것은 프로젝트의 구린냄새 (Fish Smell)를 가리기위한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를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해내는 프로젝트의 과정 (보고서 제출 포함)이 오히려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가장 높게 이루어낸 것들이라는 확신이 있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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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사회주의와 통독 이후 신자유주의를 경험한 클라우스 피베크는 <자유란 무엇인가>에서 사회주의와 시장자유주의
자들의 자유를 비판한다. 헤겔 <법철학>에 대한 세밀한 주해를 통해서 피베크는 이 양자가 자유를 잘못 해석했다고 지적
한다. 그는 전자가 시장의 자율성을 철저히 부정하려고 하며, 후자가 삶의 모든 영역을 오직 효율성의 척도로만 파악하려고 한다고 본다. 시장의 자율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나의 의지, 욕구, 자유가 억압당하고,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나의 자유를 다양하게 전개할 기회를 박탈당한다.요컨대 그는 이 양자가 자유를 끊임없이 입에 달고 살지만, 자유의 토대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사회주의적 공동재산이라는 환상과 탈규제적, 야만적인 시장구조가 위기의 시대에는 국가사회주의(나치)처럼 우리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지 난주엔 4만명 직원을 책임지는 내 직장의 총수가 직할로 운영하고 있는 Audit 그룹을 만났고, 그들이 나에게 물어본 질문중에 하나가 나의 사무실은 효율성 (Efficiency)있게 운영되는지에 관한 문의 였다. 나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효율성 (Efficiency)은 적지않은 경우 Quality를 희생시킨다고….나도 예전에 auditor로 근무해보았지만, 단한번도 질문내용에 이 단어를 사용한적이 없었다. 이번 총수도 결국 주식놀음만 하다가 바뀔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