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살아온 삶 –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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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45.***.136.55 4408

    그녀와 저는 그렇게 만났습니다. 첨엔 학원 강의실에서 이런 저런 농담을 하다가 수강생들 몇명과 함께 밖에서 한두번 술을 마셨었고 그러다가 그날 심야 도움을 청하는 일로 인해서 그이후로는 단둘이 거의 매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녀도 술을 잘마셨고 담배도 잘피웠습니다. 예전의 한국 대학생들 참 술많이 마셨죠. 저처럼 공부못하고 게으른 인간 쓰래기 학생들은 더 그랬습니다. 매일 마셨죠. 그리고 한숨쉬고 세상을 비난하고. 하여간 그런 어처구니 없던 삶을 살던 저랑, 미국에서 졸업하고 취직도 못해서 전에 들어본적도 없는 아시아의 한국이란 나라에 돈벌러 온 그녀랑 무언가 분명히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매일 밤 늦게까지 여기저기 서울시내 술집을 쏘다니며 마시고 별을 보며 걸어서 그녀의 숙소까지 바래다 주곤 했었죠. 그러다 그녀의 숙소에서 같이 밤을 보내게되고 27살 백수 한국 청년과 23살 미국 여자가 사랑 비슷한거에 빠졌습니다.

    누가 먼저 그런말을 꺼낸건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우린 결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아이를 몇명 나을지를 말하며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이 뭔지를 제대로 알고 결혼하자라는게 아니라 다른 인종에 대한 성적호기심 지적호기심 처음접하는 새로운 문화권에대한 호기심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대책없는 불장난 그런것들이 전부 합쳐져서 그걸 결혼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던게 아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판문점 근처 민통선까지도 가봤습니다. 그녀가 한국의 분단 상황을 참 신기해 하더군요. 그 당시 한국의 지방 도시엔 그런 젊은 백인여자를 길거리나 술집에서 거의 볼수 없었던 시절이라 저는 은근히 그녀를 데리고 여기저기 술집을 찾아다니고 여행다니기를 즐겼던거 같습니다.

    그녀의 전공이 영문학이고 그녀가 태어난곳이 시카고의 South Holland라는 중부 한복판이라서 그녀의 영어는 사실 굉장히 표준어였고 그녀는 저와 대화할때 일부러 말을 느리고 똑똑히 들리도록 발음하는 배려를 항상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내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저는 저의 영어회화가 매우 빠른속도로 늘어나는것을 경험했습니다. 나중엔 처음 듣는 단어를 그녀가 말을했는데도 그 말뜻이 상황에 맞게 저절로 해석이 되는 경험까지 하고 그녀의 말이 진짜 한국어처럼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제 영어회화 능력을 키워주고 발음을 좋게 해주기 위해 참으로 보이지 않는 배려를 믾이 했었던거죠. 전 정말 영어를 영문학을 전공한 중부의 여자에게 잠자리에서 배운거죠. 우린 그렇게 만난지 두달만에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삶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을 거의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해 4월부터 북한 영변 핵원자로 이야기가 심각하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당시 상황은 현재 한국의 북핵 상황보다 휠씬 심각했고 미군은 북한 영토를 폭격하고 전쟁하기위해 북한 해역 잎바다에 힝공모함 두척과 수십척의 군함을 대기시켜 놓고 있었습니다. 한국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미국 시민들에겐 이미 대피령과 다름없는 남한 탈출 정보가 돌고있었습니다. 주한 미국인들이 하나둘씩 한국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녀도 그녀가 자주 어울리는 한국거주 미국인들을 통해서 전쟁이 임박했고 미국인들이 한국을 뜨기시작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있었습니다. 5월에 들어서면서 한국 언론에서도 전쟁이 임박했다라는 정보가 뉴스를 통해 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전쟁 비상 식량들을 사재기 하기 시작했죠. 저는 직감적으로 그녀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안전을 위해서 그녀를 미국으로 보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5월 어느날 저는 그녀와 술집에서 마주 앉았고 그녀에게 요즘 한국에서 무슨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한참동안 아무말을 안하고 다른곳을 바라보더니 제가 그이야기를 언젠가는 꺼낼줄 알았다고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는 말하길 자기는 절대 혼자 안떠난다고 거기에 대해선 다시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겁니다. 전 그래서 그녀에게 전쟁이 앞으로 일주일 안에 일어날 가능성이있고 (실제로 딩시엔 그만큼 상황이 급박헸습니다) 그럼 너는 떠나고 싶어도 못떠날거란 말과 만약에 최악의 상황에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히거나 하면 넌 백인 미국 여자라서 북한 군인들에게 분명히 성폭행을 당하고 인질로 잡힐거라 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끝까지 저랑 한국에 남아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자기를 미국에 보내고 싶다면 자기와 같이 미국으로 가자는 겁니다. 저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이야기였죠.

    하여간 그날 저와 그녀는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문제를 놓고 상당히 심각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언론에서도 전쟁 임박 상황은 점점 더 위험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급기야 미국에 있던 그녀의 부모님도 한국의 전쟁임박 소식을 듣고도 귀국하지 않는 그녀를 데리러 한국으로 나오겠다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동시에 저역시 그녀를 미국으로 돌려보내기위해 계속 몇일을 다투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전쟁임박 상황이 너무 심각했고 그녀의 부모님과 저의 귀국 요구가 너무 강했던거죠. 그래서 그녀는 더이상 버티기를 포기하고 6월 중순에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김포공항에서 그녀를 떠나보내는데…공항 보안검색을 하러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그녀가 정말 옛날 한국 드라마에서처럼 통곡을 했습니다. 눈물 콧물 흘리면서 그러면서 전쟁이 나더라도 꼭 죽지말고 자신을 위해서 실아있으라고 .. 전쟁이 끝나면 한국을 다시 재건 시키기위해 모든짐을 다싸서 한국을 들어와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영원히 한국인들과 함께 한국에 살거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오래 울었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를 이상한 넘으로 보면서 지나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한국을 떠나 시카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994년 6월 중순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 208.***.37.227

      팬 입니다

    • 지나가다 73.***.152.254

      등단하셔도 되겠네요! 다음편 빨리 기대해 봅니다.

    • 이런글 173.***.124.43

      이런글 좋아요~ 후속편 어서 올려주세요.

    • 사랑 169.***.247.185

      합니다. 다음편 빨리 좀 요

    • 208.***.37.227

      왠지 임신해서 미국에서 애기 놧을거 같은….

    • 유학 199.***.224.193

      글 잘 쓰시네요,

      근데 제기억에..
      그때 그정도로 전쟁공포에 휩싸였다는 기억은 없네요,
      차라리 삼풍백화점 붕괴 이런게 더 기억에 남는군요,

      • 브룸필드 67.***.59.123

        삼풍 백화점 붕괴는 1995년 6월 말입니다.

        제가 그놈의 7-4제 라는 것 때문에 서초동에서 방만 얻어서 살면서, 하루 세끼를 구내식당에서 때울 그 당시라…

        지하철 3호선 교대역을 빠져나오면서 그 메케한 냄새, 엠블런스 소리등등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 유학 73.***.35.253

          꼭 삼풍배화점 붕괴가 94년도에 일어났다는 위미보단,
          그 당시 1990년에 초에 기억남는일이 삼풍백화점 붕괴지..
          미의 북핵 폭격한다는 소문으로 패닉상태인 적은 없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 초등학년 67.***.170.150

      궁금한데 그래서 지금 어느지역에 사나요?

    • 50세 개발자 174.***.25.33

      94년이면, 제가 첫직장 2년차 였는데.. 전쟁 공포.. 흠.. 전혀 기억이 없는데… 소설인지 실화인지.. 쩝.. 여하튼 재밌게 읽었습니다. 글 잘 쓰시네요..

    • Hhh 24.***.77.108

      전쟁 공포 있었습니다. 참고로 당시 미국에서 kosta 참석 중 덕분에 기도도 하고 했던 기억납니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에는 안이했다가 나중에는 사재기 한다는 뉴스도 봤습니다. 그리고 기억으로는 카터가 방문해서 덕분에 긴장이 좀 완화되었다는 기사도 기억납니다. ㅋ

    • 지나가다 149.***.7.28

      시리즈 시작하신다길래 또 어떤 뻘글일까 했는데, 생각외로 대박이시네요. ㅎㅎ

    • D 172.***.15.28

      잘 읽고 갑니다. 다음 편 기다려 지네요

    • 아기 공륭 둘리 68.***.223.50

      전 그 당시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한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무뎌진건지…. 생각이 없는 것이 었는지…..전쟁의 대한 공포는 없었는데…

      미국 교수들이 난리도 아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다들 저한테… 괜찮냐고 물어 보고….. 그래서 걱정되서 한국에 전화 해봐…. 다들… 무덤덩…

    • 1 76.***.48.235

      원래는 영변핵시설을 폭격하기로 했는데 김영삼이 직전에 막았음.

      차라리 그 때 막지 막았어야 (어차피 자로 잰듯한 정밀폭격, 이스라엘이 하는) 지금 이 개고생을 안 하는데.

    • 팬입니다 4.***.47.9

      다음편 기대됩니다.

    • Weer 174.***.19.165

      바보들 많다. 저 당시 미국이 북한 진짜 조질라고 했었고 한국이 발가벗고 나서서 막은거 모르는 사람들 겁나 많구만..

    • 유학 73.***.35.253

      그때 폭격했으면,,지금 너희들은 없단다,,
      한반도는 불바다 였겠지.

    • Ar 108.***.30.35

      그당시 군에 있었는데 긴장감 최고였습니다. 일반 사병들은 쉬쉬해서 몰랐었는데 비밀 취급하는 사람들은 쫄깃쫄깃 했죠 심장이…

    • vb 24.***.237.54

      94년 여름은 무지 더웠던거 기억납니다. 대학 도서관 에어컨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올정도고 모두다 복날 개 마냥 혀빼고 헥헥 대던 시절이었죠. 아직도 그런 장면이 생생히 기억나는데…
      또하나, 친구가 그 여름에 결혼을 했는데 그날 당일날 김일성 죽었다고…
      제가 모르는 사이 전쟁 위험이 컸었나봅니다.

    • GoGo 136.***.17.160

      몰입도 짱입니다 근데
      문단을 조금씩만 나눠서 올려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 a 209.***.184.254

      94년 여름 생각나네요. 김일성 사망이 있었고…제 평생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첫사랑이자 지금의 부인을 만났던 94년 여름.

      • AR 100.***.240.104

        김일성 죽었을때 비상걸려서 군장챙겨 헬기 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쟁난다 생각했고 이등병 한두명은 울먹이기도 했죠..

    • 애들대갈빡 184.***.171.214

      정말 쫄깃해지는 문장 단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