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박 50일 좌충우돌 유럽 생환기15 – 만남…헤어짐… 그리고 아우토반(Autob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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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만기 24.***.74.254 14834

    ‘%#%*#%&*#’ –> 아시죠? 독어랍니다.
    ‘저… 여보세요?’
    ‘네?’
    ‘저 혹시 김영순씨댁 아닌가요?’
    ‘맞는데… 누구세요?’
    ‘네… 저는 만기라고 이번에 유럽여행길에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인데요… 저…’
    ‘아~~ 호호호… 영순이한테 얘기 들었어요… 난 영순이 엄만데…’
    ‘아이구… 그러세요… 안녕하세요…’
    ‘지금 어디에요? 프랑크푸르트에 왔어요?’
    ‘네… 이제 막 괴테 생가 둘러보고 전화드리는 건데요…’
    ‘그럼… 어쩌지? 영순이 지금 비행중인데…’
    ‘네?… 그럼 언제…’
    ‘오늘 저녁에 돌아와요…’
    ‘네~~~ 그럼 제가 저녁때 다시 전화를…’
    ‘아니… 그러지말고 지금 그냥 와도 괜찮은데…’
    ‘네…? 아닙니다. 영순씨오면…’
    ‘바로 어디 또 갈 계획아니면 지금 그냥 와요… 잠깐 기다려봐요…’
    ‘네?’
    ‘내가 애들 아빠 바꿀테니까…’
    ‘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래 지금 괴테 생가에 가 있다고…’
    ‘네…’
    ‘그러면 내가 여기서 가려면 한 30분 걸리니까… 거기서 조금만 더 둘러보다가 한 30분쯤 후에 근처에 있는 OO에서 봅시다. 인상착의가 어떻게 되죠?’
    ‘아이구…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저녁때 영순씨오면…’
    ‘그냥 내가 반가워서 그러니까 그냥 내 말 들어요… 자… 내가 어떻게 알아보면 될까?’
    ‘그러시면… 여기 배낭여행하는 사람들 많으니까… 제가 배낭에 파란색 수건을 달아 놓고 있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좀 있다가 봅시다…’
    ‘네…’

    도대체 영순씨가 뭐라고 했길래 부모님들께서 이렇게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실까 궁금해하며 약속장소(괴테 생가 근처였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에 미리 가 있기로 마음먹고는 아픈 발을 이끌고 걸음을 옮기는 만기…

    배낭여행객들이 자주 들리는 코스여서 그런지 어느때보다 배낭을 짊어진 여행객들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한국말들로 한결 마음이 푸근했던터라 영순씨 없이 어른들과만 있게될 상황이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한사코 데리러 오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결국은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가 벤치에 앉아서 아버님을 기다리며 여행정보책을 꺼내 읽고 있는데…

    ‘저… 한국분이시죠?’

    고개를 들어보니 처음보는 아가씨 두명이 생글거리며 내려다 보고있다.

    ‘네… 맞는데요…?’
    ‘저… 죄송한데… 저희가 오늘 프랑크푸르트를 떠나려고 하는데요…’
    ‘그런데요…?’
    ‘근데…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아직 결정을 못해서… 좀 여쭤보려구요…’
    ‘네…? 그걸 왜 저한테…?’
    ‘들고 계신 책보니까 여행하신지 오래 되신것 같아서…’
    ‘아~하!!! 이거요… 이거 여행 끝내고 돌아가는 사람이 주고 간 책이라 그래요…’
    ‘네~에~ 그래도 가보신 곳 중에 혹시 추천해주고 싶으신 곳 없으세요…?’
    ‘푸하하하!!! 저도 여행 시작한 지 얼마 안되서 런던이랑 파리밖에 안 다녀 봤는데요…’
    ‘아~ 그러시구나…’
    ‘죄송합니다. 못 도와드려서…’
    ‘괜찮아요… 그럼 여행 잘 하세요…’

    할말을 마치고 총총히 사라져가는 이 두 여인들…
    생환기에 괜히 등장했을리 없다는것쯤은 이미 다 눈치 채셨으리라…
    이 친구들에 관한 얘기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이제 다시 영순씨 얘기로 돌아가 보자…

    ‘저… 혹시 만기 학생?’
    ‘네!!! 안녕하세요? 아버님…’
    ‘만나서 반가워요… 자 일단 차에 탑시다…’

    집으로 가는 내내 이런 저런 얘기들을 물어오시는 아버님 덕분에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갔고 차는 어느덧 아담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한적한 주거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근데 만기 학생은 학번이…?’
    ’89학번인데요…’
    ‘음… 내가 63이니까 26년 선배네…’
    ‘네~에~’
    ‘뭐야~ 동문 선배라는데 반갑지도 않은 모양이지…?’
    ‘네?!!!’
    ‘만기학생이랑 같은 학교 독어과 63학번이야…’
    ‘네!!!??? 제가 다니는 학교를 어떻게…?’
    ‘영순이가 얘기해 주던데… 지 아빠, 엄마 졸업한 학교 후배 만나서 비행기에서도 잘 도와주고 또 프랑크푸르트오면 연락하라고 했다던데…?’
    ‘어~어? 저 영순씨한테 어느 학교 다니는 지는 얘기한 적 없는데요…?’
    ‘이상하네…? 만기 학생 OO대다니는 거 아니야?’
    ‘어… 맞는데… 영순씨가 어떻게 알았죠?’
    ‘그건 나도 모르지… 어쨌든 후배가 맞긴 맞네…’
    ‘그러네요… 대 선배님이시네요…’
    ‘자… 이제 다 왔네… 내려서 계속 얘기하자구…’

    아담하게 꾸며진 벽돌집 앞에 주차를 하고 짐을 챙겨 들어가니 문 앞에서 어머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이런저런 얘기끝에 아버님, 어머님 두분다 만기 학교 대선배님들로 그당시 흔치 않았던 소위 CC에서 결혼에까지 성공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까 너무나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시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이후 좀더 이야기 오고가고 자연스럽게 어떻게 만기가 배낭여행을 결심하게 되었으며 또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까지 진행되었다.

    ‘그럼… 어제부터 지금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잔거네…?’
    ‘네… 뭐…’
    ‘점심은?’
    ‘아까 기다리면서 간단히 먹었습니다.’
    ‘그래도… 끼니를 그렇게 떼우면 안되지… 여보… 뭐 좀 있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먹은지 얼마 안되서… 진짜로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그래… 그럼… 샤워라도 하고 좀 쉬지?’
    ‘그래도 될까요?’

    두분의 배려로 샤워를 마치고 객실에 여장을 풀고는 또 세상모르고 곯아 떨어지는 만기… (개념이 없는 건지… 배짱이 좋은건지… 여건만 허락하면 이눈치 저눈치 않보는 만기… 나중에 듣기로는 민망하게 코까지 엄청 곯았다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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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외출할 채비를 마치신 아버님이 깨우셔서야 겨우 눈을 뜬 만기…
    졸린 눈을 비비며 간단히 세수를 하고 거실로 나오니 어머님도 역시 외출 채비를 마치시고는 서둘러 나가자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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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지금 어디로…?’
    ‘아~ 공항가서 영순이 태우고 저녁먹으러…’
    ‘영순씨 올 시간이 되었나보죠?’
    ‘지금가면 딱 맞게 도착할 것 같은데… 늦으면 안되는데… 우리 나가는 것도 모르니까 늦으면 길 엇갈릴텐데…’
    ‘여보… 걱정하지마… 시간 넉넉하니까… 그나저나 만기학생보면 영순이가 깜짝 놀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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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거미가 짙어질 무렵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간신히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영순씨를 만날 수 있었다. 부모님께 손을 흔들며 다가오던 그녀… 몇 발자국 뒤에 서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역시 반갑게 손을 흔들어준다…

    아~ 얼마만에 재회던가? 비록 비행기안에서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렇게 다시 그녀를 보니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옛 애인을 다시 만나는 것같은 감회에 젖어 드는 만기…

    공항을 빠져나와 프랑크푸르트의 명물인 아펠바인(Apfelwein: 사과와인)을 곁들여 즐겁게 나눈 식사, 식사후 들린 어느 호프집에서의 소세지와 맥주, 그리고 뢰머광장의 밤거리 풍경을 고스란히 만기 가슴에 남기며 또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기 마련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만기와 그녀와의 만남은 또다시 아쉬운 짧은 만남으로 끝이 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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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내일 다시 비행 스케쥴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만기는 쉽게 잠을 이룰수 없었다.
    아직 그녀와는 무슨 애틋한 감정이 생기고 자시고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니 헤어짐이 조금 아쉽기는 했어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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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낮잠을 많이 잔 탓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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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조금 머리가 무거웠지만 그녀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실거라던 아버님 말씀을 듣고 맞추어 놓은 알람(수정이랑 경애가 주고간)을 끄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는 만기…
    공항에서 헤어지기 전 다시 한번 프랑크푸르트에 들리겠다는 기약없는 약속을 남기는 만기…
    그리고 돌아오는 길…

    ‘만기는 운전할 줄 아나?’ –> 지난 밤 식사중 편하게 말을 놓기로 하신 아버님…
    ‘네… 운전경력 5인데요…’
    ‘그래… 그럼 아우토반한번 달려보고 싶지 않아?’

    그녀와의 작별후 기분이 별로인 걸 눈치채신 아버님의 뜻밖의 제안에 잠시 들뜨는 만기…
    그러나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는…

    ‘그럼 좋겠지만… 저… 국제 면허증이 없어서…’
    ‘뭐… 없으면 어때? 조금 맛만 보면되지… 기분도 풀겸 한구간만 운전해봐…’
    ‘그래도… 괜찮을까요?’
    ‘걱정하지말고… 자 그러면 어디… 아우토반을 탈 수 있는 쪽으로 가 볼까?’
    ‘진짜로 아우토반으로 가실려구요?’
    ‘그럼… 운전할 줄 아는 젊은 친구들 소원이 속도 무제한인 아우토반에서 한번 달려보는 거라던데… 만기는 아닌가?’
    ‘아… 저도 뭐… 그럴 수 있다면야 좋지만…’
    ‘그럼 됐네… 그냥 걱정하지 말고 한번 달려보라구…’

    이렇게 아버님의 배려로 또한번 배낭여행객들이 쉽게 해볼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 만기…
    그녀와 작별의 아쉬움을 뒤로하려는 듯 시속 200Km의 속도로 가볍게 아우토반 2구간을 냅다 질주하며 오늘도 또 미지의 세계로 달려가본다.


    그리고 여기서 잠깐 사족을…
    영순씨가 제가 다니던 학교를 알아낸 배경은 비행시 제가 입었던 학교 축제때 산 티의 엠블렘때문이었다는 사실… 그 티가 나중에 또다른 인연을 만들어 주었지요…
    그리고 혹시 다른 추측을 낳기 전에 밝혀드립니다.
    여행중 꼭 다시 프랑크푸르트를 들릴것을 다짐했으나 그 이후 결국엔 다시 갈 수 없었답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 연락을 취할 계획이었으나 연락처를 적어놓은 다이어리가 잃어버린 가방에 있었다는… ㅠ.ㅠ
    그녀에게 정말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있었더라면 무슨 방법을 취해서든 연락처를 알아냈겠지만 그러지 않은 것으로봐서 스스로 판단했을때 그녀에 대한 그때 당시의 마음이 ‘사랑’임은 아니였던것 같습니다. 뭐… 고마움 + 아쉬움 정도…
    어쨌든, 그렇게 잘 대해주셨는데 아직까지도 감사하다는 연락을 못한 만기는 늘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랍니다.

    자!!! 그런 마음들은 그냥 만기 가슴 한켠에 좋은 추억으로만 남겨두기로 하고…
    또 다른 만남과 추억을 찾아 떠날 다음이야기는 생환기 16에서 이어집니다.


    • 6년만기 24.***.74.254

      최진실씨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던 배우였는데 너무 안타깝네요… 더군다나 인터넷에 쓴 그녀에 대한 글이 직,간접적으로 그녀의 자살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생환기를 올리면서도 혹시 누군가가 상처를 받게 되면 어쩌나 하는 기우를 해 봅니다.

      어쨌든,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신 고인께 삼가 명복을 빕니다.

    • 기다림 12.***.58.231

      다음편도 기대가 됩니다. 참좋은 분들 같아요. 그런 분들 만나기 쉽지 않을텐데… 만기님 참 복이 많습니다.

    • eb3 nsc 98.***.14.48

      어떻게 하면 그렇게 좋은분들만 주변에 만나게 되는건지요?? 정말 재미있구요..
      만기님 생환기 덕분에 우울했던 기분이 업되구요.. 나도 열심히 살면 이런일도 있겠구나 즐거워 진답니다… 계속 쭈~~ 욱 부탁 드려요..
      그리고.. 최진실씨는 정말 저와 남편이 너무나 좋아하던 배우여서..정말 많이 속이 상하고있네요… 맘이 아픕니다…

    • 생환기팬 72.***.232.123

      김영순씨가 만기씨와 couple이 될거라 예상했었는데, 저의 예상이 빗나갔군요. 아무튼 생환기가 진행될 수록 더욱더 어느분이 만기씨와 couple이 되셨는지 예상이 힘들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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