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가장은 새로 시작해도 될 나이

  • #104994
    40이란 204.***.209.132 1200

    다닐만한 직장이 있고, 지금 여기서 이상태라면 밥 굶지는 않을거 같은데..
    이 상태를 버리고 다른곳에서 새롭게 시작해도 될 나이인지 망설여 집니다.
    인생에서 돛을 다시 달아도 될련지, 닻을 내려야 할련지.
    나이 30에 이민을 온것도 큰 변화였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기회가 보입니다.
    비슷한 경험, 고민을 하신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막연한 의제같아서.

    • tot 192.***.241.146

      원글을 읽으니 갑자기 생각나는 어느책에 관한 서평입니다. 아래에 퍼왔습니다. (임꺽정-고미숙). 원글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늘 고민하고 있는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보입니다. 물론 선택은 각 개인들의 책임이지요. 좋은선택하셔서 행복하시길…


      직업적 노동에 기반한 생계 유지, 결혼과 출산을 통한 가정의 형성, 사회적으로 승인된 부와 지위의 획득 같은 것들은 이들의 (임꺽정과 그 패거리들) 관심 밖이다. 남녀는 복잡한 구애의 과정없이 눈만 맞으면 바닥에 엎어지고, 양반과 상민과 천민이 뒤섞인 군상들은 나이와 신분을 넘어 교유하며, 말이 통하는 자라면 하룻밤 인연만으로 생계를 책임지기도 한다. 이들에게 윤리가 있다면, 그것은 ‘권력과 위계’의 윤리가 아니라 오로지 ‘우정과 연대’의 윤리가 있을 뿐이다.

      그 탈주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상은 ‘자유인’이다. 자유인의 삶을 추동하는 힘은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지 않는 ‘야생적 자존심’이다. 칠두령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혁명가도 아니요 ,민중의 대변자도 아니다. 야생적 자존심을 바탕으로 ‘그저 자신의 길을 거침없이 갔을 뿐’, 그들이 관군과 싸운 것은 계급의식이나 민중에 대한 사랑의 발로가 아닌 탓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체화하고 있는 것은 다수의 가치가 아닌 소수의 가치, 메이저의 가치가 아닌 마이너의 가치다. 그럼에도 이들은 축제와 사랑과 배움의 기쁨을 누릴 줄 안다. 책의 부제가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