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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고승이신 진제스님께서, 방문자였던 어느 서양 신학자에게 던지 화두였습니다.
What was I before my parents conceived me?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이후의 자신의 모습에 두려워 하지만, 그렇다고 태어나기 이전에 관한 자신을 두려워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서양철학의 원류중의 하나였던 에피쿠로스학파 사람들도 “죽는 다는 것은 태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일뿐” 이라고 했답니다.
도대체 우리는 우리부모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이전에 무슨 존재였을까요? 이것에 대한 깊은 성찰은 “죽음”에 대한 성찰과 다를것이 없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태어나기 이전에 우리는 존재치 않았으니, 태어나기 이전에 대한 내 존재를 생각하는 것은 쓸데 없는 짓거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은 이후에도 우리는 존재치 않는다고 여기면, 이 또한 죽은 이후를 성찰하는 것 또한 쓸데 없는 짓거리임에도 분명하지요.
그래서, 유가에서 공자는 “살아있는때의 의미도 잘 모르는데, 죽음이후를 왜 고민하는가”라고 일갈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유태인들의 종교를 뿌리로 가지고 있는 기독교 문화로 이루어진 서양문명이 전세계를 석권한 이후, 대다수 사람들은 유태인들의 시간관념인 직선적 시간관에 젖어들게 되어서 그런지, 과거, 현재, 미래로 이루지는 직선적 시간관에서 항상 주된 관심사는 미래인바, 태어나고(과거) 살아가다가 (현재), 죽고난이후 (미래) 라는 직선적 시간에서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항상, 죽음이후 (미래)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입니다.
기독교적 시각의 서양문명적 관점에서는 태어나기전의 우리존재는 지나가버린 과거라서 굳이 성찰해볼 필요가 없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라는 순환적 시간관을 가지었던 동양적 문화관점에서는 과거가 그냥 과거가 아니라, 하나의 원과 같은 미래다음에 이어지는 과거, 다시말하면, 미래의 미래가 되는 과거인지라, 우리들이 태어나기 이전에 관한 우리들의 존재는 우리가 우리 삶을 성찰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화두가 된다는 생각 입니다.
진제스님에게 그러한 화두를 받은 서양 신학자는 3일간의 짧은 한국방문동안 그 화두에 집중한 끝에, 진제스님에게 답하기를 “자비”라고 하였고, 진제스님은 “선문에 대한 답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답변” 이라고 했습니다. 틀린 답변이라는 뜻이지요.
아마도, 수억번 되풀이되는 불교철학의 “환생” 개념을 염두하면서 답해야 할 선문답이 아닐까 여깁니다.
죄를 많이 지으면 축생으로 태어나거나, 업보를 다음생에서 치러내야 한다는 불교적 시각은 기본적으로 순환적 시간관에 근거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수십만번 생의 반복속에 연결되어지는 “인연” 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 화두가 바로 “What was I before my parents conceived me?” 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우리 부모와 어떠한 전생인연(이것은 수억번의 인연과 업보의 씰줄 날줄의 결과)으로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난것인가에 대한 성찰이고, 바로 그것이 태어나기이전의 내 존재에 대한 성찰이며, 나아가서, 현생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법과 업장이 내가 죽은 이후의 내 존재를 규명하는 밑거름이 되는것 이지요.
마치, 봄에 열심히 씨를 뿌리고, 여름에 피나게 땀 흘리지 않고서는 가을에 풍성한 곡식을 거둘수 없고, 그래서 겨울을 생존해내기가 힘들어, 그 다음해 봄에는 아예 새로운 생명을 보지도 못하고 땅속으로 죽어 없어져, 다른 생명체로 태어나는 반복의 순환적 시간관이 떠오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근본원인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동시에 지금 우리의 삶은 우리가 죽고난 이후 무엇인가로 다시 환생한 이후 삶(그것이 인간의 삶이건, 축생의 삶이건, 곤충의 삶이건간에)의 밑그림 또는 기초공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겨울 소돼지 300 만 마리를 산채로 땅에 묻었습니다. 그것도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기때문에 그들을 땅에 생매장 한게 아니라, 자본(돈)이 손해나지 않기 위하여 300 여만 마리의 생명을 그냥 죽였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댓가를 우리는 현생에서 치러내지 못한다면, 수억번 반복되어지는 업복의 환생속에서 치러내야 하는게 아닌가 여겨 집니다.
What was I before my parents conceived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