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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을 열광하게 한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지만 언론은 여전히 그 뒷이야기를 전하며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고 있다. 우리 선수들의 눈부신 선전은 백번 칭찬해도 넘침이 없겠지만 그간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와 이를 수용하는 우리 사회의 편향성에 대해서는 한 번쯤 냉정하게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장 아쉬운 점은 “내 편 아니면 모두 적(敵)”으로 규정하는 듯한 모습이다. 아사다 마오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어서 김연아도 분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보기 드문 명승부를 연출했다는 긍정적인 시각으로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기사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대결구도만 부각시키다 보니 아사다는 선의의 경쟁자가 아니라 한국인 모두가 넘고 가야 하는 공동의 적이 돼 버린 느낌이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아사다 마오 한 명으로는 부족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일본의 언론과 네티즌들까지도 우리의 공격 사정권에 포함시켜 버렸다. 김연아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아사다의 아름다운 율동을 칭찬하는 소리를 듣기 어려웠고 게다가 열아홉살 소녀의 눈물마저 “분하다”는 지극히 한국적 해석으로 덮어버리는 우리의 정서는 왠지 얼음판보다 차갑게 느껴진다.
김연아 가 훨씬 잘했고 아사다는 많이 부족했다는 정도로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쩌다 ‘복수’나 ‘설욕’ 같은 듣기에도 섬뜩한 말이 등장하더니 급기야는 ‘음모’와 ‘매수’ 등과 같은 스포츠와는 한참 거리가 먼 단어들이 지면과 인터넷을 채우면서 피아(彼我)를 구분짓는 작업이 마무리됐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 편가르기가 비단 스포츠 경기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박정희 지지자의 적이 돼야 하고 박근혜에게 호감을 가진 자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지 말아야 하는 극단적 배타성이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을 젊은 세대에까지 번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면 지나친 기우(杞憂)일까. 민주주의란 결국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점을 수용해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딘지 부족하고 미흡하게만 느껴진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누군가 중간지대에 서 있으려면 남다른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마이크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아사다의 인간적 모습에는 고개가 끄덕여졌고 세 차례나 올림픽에 참가하면서도 세계 정상급의 위치를 지킨 안톤 오노의 저력에 깜짝 놀랐다”라고 부담없이 말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상윤 대전도시공사 홍보팀 차장
특정 신문사의 논점이 아닌 좋은 글이란 생각에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