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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가 자취를 감췄다.’
단기 외화조달시장에서 달러가 급격히 말라붙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지난 17일에는 하루짜리 초단기 외화 차입인 오버나이트 금리가 무려 12%를 호가한 사례도 나왔다. 불과 지난주만 해도 2%대면 가능했다.기간물 차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8일 기준으로 한 달짜리 기간물 차입 금리는 9~10%까지 올랐다. 리먼브러더스 몰락 직전에는 한 달짜리 외화차입 금리가 3% 안팎이었다. 한마디로 단기외화시장이 얼어붙은 셈이다. 이처럼 단기차입 금리가 급격히 치솟은 것은 외국계 은행과 국내 외은지점 등 단기 외화자금을 빌려주던 공급처가 달러를 틀어쥐고 풀지 않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월가 위기로 외화차입시장 급랭
=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미국 글로벌 금융회사가 잇따라 무너지고 미국 신용등급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장 참가자들은 그야말로 혼돈 상태다. 현금 확보가 최선이라는 불안 심리가 극에 달하고 있다고 금융권에서는 분석한다.금융권 한 임원은 “오버나이트 금리가 9~10%에까지 도달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18일 주요 6개국 중앙은행들이 달러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서 경색된 심리가 다소 호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월가 쇼크 후폭풍이 국내 은행 단기차입시장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중장기 외화채권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단기차입시장마저 급격히 경색되면서 은행 외화 유동성에 ‘노란불’이 켜졌다.
올해 들어 중장기 채권 발행 실적이 거의 없는 시중은행들은 1년 내외 사모사채나 은행 간 차입, 외화 기업어음(CP) 등을 통해 달러 차입에 숨통을 틔워왔지만 이러한 시장마저 위축되면 외화 유동성에 악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18일 금융감독원은 은행 자금 담당자들을 소집해 외화 유동성과 외화 차입 상황 등을 긴급 점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달러자금의 씨가 마른 상황에서 수출환어음 매입이나 외화대출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해 수출업체도 연쇄적인 외화자금 압박을 받을 것으로 염려된다”고 말했다.
◆채권시장도 아수라장
= 18일 채권시장은 유동성 부족 염려가 폭발하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리먼발 악재가 글로벌 금융회사 추가 도산 염려로 전이되면서 불안심리가 극에 달하자 채권마저 내던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원은 “리먼 파산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채권시장이 강세를 나타냈지만 이제 채권보다는 현금 확보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채권 매도세가 몰렸다”고 말했다.
이날 국고채 3년물과 5년물은 전날보다 0.29%포인트 급등했다. 한때 0.4%포인트가량 폭등하는 패닉장도 연출했다.
이성희 JP모건은행 서울지점장은 “원ㆍ달러 스와프시장에서 한 달짜리 달러 스와프 금리가 ‘리보+1000bp’에 달하는 유례없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면서 외국인 채권 매도에 단초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스와프시장에서 한 달짜리 달러자금을 빌리려면 무려 10%포인트에 달하는 가산금리를 감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전날보다 500bp나 오른 것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이 지점장은 설명한다. 그만큼 국내에 달러 부족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국고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은행채와 회사채 시장은 더욱 꽁꽁 얼어붙을 전망이다. 특히 기업 자금조달을 위한 회사채 발행시장은 더욱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달러는 물론 원화 현금 확보에도 더욱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윤여삼 대우증권 연구원은 “금융회사들마저 유동성 확보에 나서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해도 시장에서 소화되기 힘들 것이고, 그러면 기업은 금리를 높여 발행할 수밖에 없어 회사채 시장은 점점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