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사 vs 미국회사 논쟁이 별 의미 없는 이유

  • #3973629
    fortune 140.***.0.1 53

    한국회사가 싫은 게 아니다. 후진적인 회사가 싫은 거다. 내 생각에는 미국회사냐 한국회사냐를 가지고 직장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별로 좋은 기준은 아니다. 적어도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면, 나는 회사의 국적보다 그 조직이 얼마나 성숙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한국계 회사에서 직접 일해본 적은 없다. 주변에서 한국계 회사에 다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개인적으로 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것만 가지고 한국계 회사 전체를 평가할 생각은 없다.

    대신 미국에서 거의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략 Fortune 100급 대기업 세 곳, Fortune 1000급 회사 세 곳, 그리고 Fortune Cookie급 작은 회사 세 곳 정도를 경험했다. 물론 아홉 개 회사를 가지고 미국의 모든 회사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조직 규모와 성숙도에 따라 직장생활의 성격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는 꽤 선명하게 경험했다.

    배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아주 작은 회사는 선원 다섯 명 정도가 타고 있는 돛단배와 비슷하다. 항해사는 항해만 하고 기관사는 기관만 보는 식으로 역할을 나눌 여유가 없다. 물이 새면 누군가는 물을 퍼야 하고, 돛이 찢어지면 누군가는 올라가서 고쳐야 한다.

    그래서 작은 회사에서는 자기 직무와 상관없이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다. Job description이라는 것이 있어도 현실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생기면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

    물론 이런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업무 범위가 넓고, 의사결정이 빠르고, 자신이 회사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반대로 체계적인 조직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피곤한 환경이다.

    Fortune 1000 정도 규모의 회사로 올라가면 그나마 조직이라는 것이 갖춰지기 시작한다. 부서도 있고 프로세스도 있고 담당자도 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회사들에서는 그 경계가 아직 상당히 엉성했다. 누가 결정해야 하는지 애매한 영역이 많고, 그런 문제는 결국 위에 있는 사람이 판단해서 방향을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시스템이 약한 조직일수록 개인의 영향력이 커진다. 특히 직속 상사나 그 위의 임원이 유능하고 합리적이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무능하거나 독단적이거나 감정적인 사람이면 직장생활 전체가 그 사람에게 좌우될 수 있다.

    물론 대기업에서도 나쁜 상사를 만나면 고생한다. 다만 조직의 제도와 프로세스가 촘촘할수록 한 개인이 조직 전체를 마음대로 흔들 수 있는 범위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내가 경험한 Fortune 100급 회사들은 여기서 확실히 달랐다. 조직이 거대한 배라면 이미 기관실, 항해실, 통신실, 조타실이 따로 있고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상당히 명확하다. 잘 만들어진 대기업에서는 의외로 이것저것 다 잘하는 사람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내가 맡은 영역에서 내가 잘하는 일을 정확하게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업무 분장도 명확하고, 의사결정 권한도 비교적 분명하고, 업무를 넘겨주는 방식도 정해져 있고, 필요한 전문 인력도 이미 존재한다. 내가 경험했던 좋은 대기업들은 정말 똘똘한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정확하게 수행하면서 거대한 기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일이 딱 떨어진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물론 여기에는 대가가 있다.

    그 거대한 기계 안에서 나도 정확하게 맞는 부품이어야 한다.

    조직이 원하는 능력이 명확하고 performance standard도 높다.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조직이 요구하는 방식과 계속 맞지 않으면 작은 회사보다 오히려 훨씬 냉정하게 도태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그 자리에 잘 맞는 사람이라면 직장생활은 놀랄 정도로 편해질 수 있다.

    나는 그래서 미국에서 직장을 고를 때 한국회사냐 미국회사냐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회사에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있는가?
    업무와 책임의 경계가 명확한가?
    의사결정이 개인의 기분이 아니라 제도와 프로세스를 통해 이루어지는가?
    상사가 바뀌어도 조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가?
    직원의 평가와 승진에 어느 정도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는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자기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게 조직이 만들어져 있는가?

    나에게는 이런 질문들이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보면 미국에 있는 일부 한국계 회사에 대한 문제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문제는 그 회사가 한국회사라서가 아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조직 운영 방식은 여전히 창업자나 특정 임원의 개인적 판단, 한국식 위계관계, 불명확한 업무분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면 그게 문제인 것이다.

    미국회사 중에서도 그런 회사는 널렸다. 반대로 미국에 있는 한국계 회사라 하더라도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고, 평가와 승진이 제도화되어 있고, management가 professionalized되어 있다면 한국계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민 1세대라면 한 가지는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처음 미국에 와서 언어와 문화가 익숙하지 않을 때 한국계 직장은 굉장히 편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사람도 편하고, 언어도 편하고, 취업도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그런데 그 편안함에는 잠재적인 비용도 있다. 한국어로 일하고, 한국 사람들과만 network를 만들고, 한국계 기업들 사이에서만 경력을 이동하다 보면 미국의 더 넓은 노동시장으로 나갈 때 필요한 언어, network, corporate culture에 대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한인사회의 늪이라는 것도 나는 한국인이나 한인사회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경력의 path dependency 문제에 가깝다고 본다.
    한번 특정 생태계에서 경력이 형성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생태계로 옮기는 비용이 커지는 것이다.

    결국 내 결론은 간단하다. 한국회사냐 미국회사냐를 먼저 묻지 말자. 그 회사가 얼마나 professional한 조직인가를 먼저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미국에서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만들 생각이라면 가능하면 미국의 넓은 노동시장에서 통용되는 경력, 언어, network와 업무방식을 축적하는 쪽이 선택지를 넓혀주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회사 간판에 태극기가 붙어 있는지 성조기가 붙어 있는지는 그다음 문제다.

    • 정의로운 복자 163.***.133.77

      AI 글 같기도 한데, 한국회사는 과거의 정복자 사회 관습이 문제.
      그런 전통이 회식자리에서 직원들 따귀를 치기도 하는데, 신기한 건 이런게 조직의 효율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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