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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트럼프는 그냥 ‘특이한 사람’ 정도가 아니라 정상인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의 인물입니다. 그의 언행을 보면 몇 가지 병적인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데, 정리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우선 트럼프는 극도의 자기애 성향이 있습니다. 자기 홍보가 직업인 정치인 대부분 어느 정도 그런 면은 있겠습니다만, 트럼프의 경우 이는 가히 병적인 집착 수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충 자기는 관심 있는 분야에선 누구보다 뛰어나며 절대 경쟁에서 지는 일이 없다는 걸 철저하게 믿고 있습니다. 대선 불복도 비슷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트럼프의 정신세계에선 본인이 ‘패배자(loser)’가 되는 건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가능성이기 때문에 끝까지 억지를 부리는 것뿐입니다.
그건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나 전략 같은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트럼프의 정신적인 문제에 기인한 현상입니다.
트럼프의 습관 중 하나가 어떤 전문 분야에 대해서도 “이 분야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는 그냥 과장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트럼프의 이런 집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취임식 인파에 대한 논란인데, 트럼프는 시종일관 자신의 취임식에 모인 지지 인파가 오바마 때보다 많았다고 우기는 중입니다.
이게 정치적 계산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그냥 사진 만 놓고 비교해도 이게 거짓말임을 알 수 있고, 실제로도 언론과 SNS 등에서 비교 사진이 올라오면서 거짓이 들통난 이야기라 이를 계속 주장하는 건 정치적으로도 손해이지만, 단지 자신은 아무리 사소한 면에서도 오바마보다 못할 수 없다는 생각에 끝까지 그런 허위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병적인 자기애에 맞물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트럼프의 가장 큰 특징인 거짓말을 하는 습관입니다.
역시 정치인이라면 과장이나 거짓말로 정치적 이익을 꾀하는 경우가 많으니 뭐가 대수냐 할 수 있겠지만, 트럼프의 경우는 거짓 주장의 정도나 빈도가 허언증 환자 수준에 근접합니다.
하도 허언증 증상이 심각하니 워싱턴 포스트 같은 주요 언론에서도 따로 페이지를 만들어서 트럼프의 거짓말에 대한 통계를 내고 있는데,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취임 이후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내뱉은 거짓말은 지금까지 대략 29,508건에 달합니다.
쉽게 말해, 그냥 앞서 언급한 본인이 가장 잘나고 똑똑한 대안 세계를 깨뜨릴 수 있는 어떤 사실이라도 거부하는 성향으로 인해, 별다른 고려 없이 즉석에서 말을 지어내고 그걸 본인도 믿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전에 트럼프가 인터뷰 과정에서 “서울의 인구는 3,800만 명”이라는 주장을 했는데, 이것도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을 받자 즉석에서 생각나는 숫자로 반박을 한 것이지,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닙니다.
재밌는 건 이런 심각한 허언증이 어느 정도 트럼프에게 도움이 된 면이 있다는 것인데, 기존 정치인이라면 저런 수준의 거짓말이 들통나면 한동안 정적과 언론에 시달리겠지만, 하루에도 비슷한 수준의 거짓말을 몇 번씩 하게 되니 나중엔 그런 게별 기삿거리도 안 되더라는 점입니다.
허언증을 제외하면 트럼프의 전임 대통령과 비교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식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언행에서 대통령을 떠나서 지성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수준이나 품격을 찾아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말을 못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프롬프트 없는 연설을 즐길 정도로 ‘달변’에 가깝긴 한데, 단지 그 내용이 앞서 말한 허언과 초등학생 수준의 어휘/문장력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별 과장 없이 이야기하면, 트럼프의 어휘력은 대충 “이 정책 엄청 좋다. 그래서 난 대빵 최고 대통령이다. 이거 까는 언론은 다 쓰레기다” 이런 수준의 문장을 그대로 공개 연설에서 반복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메모도 읽기 힘들어한다고 하던데, 아마 어렸을 때부터 문자 매체를 거의 접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래서 어휘력이 과장 없이 말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고, 연설에서 말하는 문장도 처참한 수준인데 허언증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그게 묘하게 본인의 정치적 입지에 도움을 준 경우라고 봅니다.
애초에 트럼프를 당선시킨 데에는 기득권, 엘리트, 정치적 올바름 등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식인이 아닌 동네 친구나 옆집 아저씨 같이 말하는 대통령이라는 존재에 열광한 것입니다.
대통령이 정치적 올바름을 내던지고 자신들이 쓰는 언어로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언론 같은 ‘기득권’과 싸우는 모습이 바로 어제 소요 사태를 일으킨 트럼프의 맹목적 지지자들을 끌어모은 그의 ‘매력’의 실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