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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꿈을 꾸었어도 잘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어젯밤 꿈은 그렇지가 않았다. 디테일하게는 역시 기억되지 않지만,적어도 꿈에 등장했던 인물들만큼은 또렷했다. 친한 친구들, 사랑하는 여자, 그리고 아들이었다.
친구들하고는 오랜만에 즐거운 만남을 가졌던 기억이었고, 사랑하는 여자와는 만나서 깊게 포옹하고 아쉽지만 아주 기분좋게 헤어지던 기억, 그리고 집에서 아들녀석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쓰다듬던 기억들이 어젯밤의 내꿈을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사랑하던 여자와의 포옹은 오늘 하루종일 내내 나의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그여자의 얼굴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내일 수도 있고, 아주 먼옛날 사랑했던 여자였기도 해 보였지만) 마치 오래전 젋었을때 여자와 사랑을 나누던 시절의 들뜬기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꿈속에서의 기억이, 현실에서 내 기분마저 좋게해준다는 사실이 의아해 질 정도이다.
그러다가, 문득 장자의 나비 꿈도 기억이 났고,
벤야민의 “범속한 각성” 또는 “세속적 깨달음”마저 떠올려졌다.우리들의 무의식이 지배하는 꿈속에서의 체험이나 우리들이 의식이 지배하는 현실속에서의 체험이나 어느것이 진실인지 회의감마저 들게 만드는 장자나 벤야민에게 의지해 본다면, 오늘 나의 기분좋음은 비록 그 기분좋음이 꿈속에서의 체험을 통한 것이었을지라도, 황당한 망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사실상 우리가 태어나, 성장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그려보고, 그 꿈을 이루려고 애를쓰면서 살아가는 행위들이 삶의 대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제 나이 50대중반에 이르서서 뒤돌아보게되는 지나온 반세기의 내인생은 하나의 분명한 “꿈”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겐 미국유학도 꿈이었고, 미국직장생활도 꿈이었고, 현재의 직장도 꿈에서 그리던 것을 겨우 잡아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루어지지 않았던 꿈도 그에 못지않게 많지만 말이다.
하여튼, 그 꿈들을 이루었건 아니건 상관없이 우리는 꿈에 의해 이끌려 살아오고, 그 꿈에서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꿈으로 인한 기억이나 체험들을 마치 소가 되새김질 하듯이 무한 되새김 (회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나는 자동차에 대한 욕심이 많았고, 명예에 대한 욕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만달러짜리 중고 자동차도 너무 만족스럽고, 예전에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내 경력상의 성취도 그저 시큰둥하게만 여겨지고 있는 요즈음, 혹시 이런게 바로 장자의 나비꿈이나 벤야민의 “세속적 깨달음”을 이제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른 아닌가 자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보면,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라는 국악 노래가 (흥타령이) 가장 적합한 가사로서 다가오게 되는 나이를 먹게된 기분마저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