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 #104635
    호ㅡㅓㅗ사ㅡ쇼 72.***.241.138 2252
    이삼년에 한번 다녀오는 고국이지만, 작년에 다녀온 한국은 이제 나에게 더이상 고향의 의미가 없어졌음을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시었고, 형제들은 이미 한갑을 지났거나 그 언저리에 다다라, 자신들의 가족 챙기기에도 힘겨워 하는 모습들이라, 내가 자청해서 만나자고 하는 것 자체가 송구스러울 정도였으니….

    친구들 또한 그저 만남이라는 반가움의 순수함으로만 시간을 내어 서로얼굴보고 술한잔하기엔, 모두 자신들의 삶들을 알뜰살뜰 챙기기기에도 바빠 부담스러워 하는 그들의 분위기를 눈치가 아예없지 않은 제 자신이 그들의 속내를 무시하고서 만나자고 하기가 쉽지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느리지만 맘편한 속도감을 유지하는 무궁화열차나 새마을열차 혼자타며 정해진 목적지없이 여유있게 돌다온 몇일간의 여행이 지친 내 마음을 오히려 더 많이 달래주고 도닥거려준 기억뿐이다.

    그곳에 고향은 있었지만, 이제 더이상은 존재치 않는다. 그래서 한국엘 힘들게 시간내고 돈써서 가고픈 욕망은 아주 엷어졌다. 아직 가보지 못한 미국의 풍경좋은 장소들을 조용히 다녀오는게 지친 내 삶에 더많은 활력소를 줄것만 같다.

    추석은 이제 내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아려한 추억일뿐, 지금의 추석은 타인들의 추석인셈이다.

    엊그제 읽은 어느 신문칼럼의 글귀가 가슴을 애벼 파고 있다.

    “귀향이 불가능한 나그네에겐 모험이라는 원심력도 갖기 어렵다”
    늙고 있음을 절감하는 미국에서의 추석한가위
    • 동감 146.***.145.39

      저역시 부모안계시니까 한국 가본게 10년이 넘었습니다.
      추석이 명절처럼 안느껴 지기시작한지도 오래되었구, 보름달이라도 보자고 뒷뜰에 나가던 마음도 비로 인해 올해는 뛰어 넘고 말았습니다. 한국에 가고픈 마음도 안생기는데, 주변에서는 왜 안가는지 아니면 못가는지 걱정하며 저보다 더 안타까워합니다.
      제가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귀향이 불가능한 나그네에겐 모험이라는 원심력도 갖기 어렵다”

      좀 풀어서 설명해 주실분 있나요?

      • ㄴㄹ허ㅛㅓㅛㅏ 72.***.241.138

        위의 글은 고은시인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부분인데, 저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살고있는 우리들의 삶을 팽이나 원의 중심을 기점으로 원운동하는 회전체와 같은 움직임에 비유해보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팽이나 회전체는 회전 중심으로 향해지는 구심력과 원중심으로부터 회전체가 움직이고 있는 트랙 또는 원의 끝트머리로 향하는 원심력이 평형이나 균형을 이루어야 넘어지거나 비실되지 않고 잘 돌아갑니다.

        고향이 그리워지는 동기나 방문하고픈 욕구(귀향) 를 구심력에 비유하고, 미국이나 타향에서 활동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활력 또는 도전정신 또는 타향살이에서의 인생모험들을 원심력에 비유하는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귀향이 불가능해지거나 힘들어진다는것은 회전체의 구심력이 줄어들거나 없어진다는 이야기니, 타향살이 미국에서의 삶의 추동력인 원심력(모험 또는 무언가를 새롭게 추진하려는 욕구)이 아무리 잘 유지된다한들,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이 사라지는 형세가 되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미국 타향살이는 더 어렵게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미국 생활 15년입장에서 더이상 무언가를 새롭게 하거나 더 욕심을 내어보고싶은 동기부여가 예전처럼 잘 안되고, 그저 하루하루 무의미하게만 지나게 되어 내심 걱정이 되었고, 왜 이리 미국삶에 대하여 무기력해져 가기만 할까 고민하던중, 고은시인의 글을 접하고나서, 그 이유를 저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고향이 사라진것이 그이유요, 그것은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품고 살아왔던 내 삶의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이 깨어져 버린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 방법은 천상 싫으나 고으나 지금 살고 있는 미국을 나의 고향으로 재창조해내야 한다는 것 뿐이데, (구심력과 원심력을 아예 미국에다만 작동시키는) 그게 그리 쉽지 않아 보이네요. 내일 당장 직장에서 만나는 미국인 직장동료들에게 갑자기 가족이나 절친처럼 가깝게 다가간다는게 쉽지 않은것 처럼 말입니다. 한인교회는 더더욱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상태라, 저에게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여튼, 저의 새고향은 만들어 내야 할것 같습니다.

        님에게도 행복한 삶의 기회가 오시기를 기원합니다.

        • 184.***.235.133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면 연세가 어느정도 드셨을지도 모르겠는데…
          미국생활 15년이면 그리 오래사신것도 아니네요.

          근데, 귀향이라는 자체보다도, 글에서 표현하신거처럼, 부모님돌아가시고 형제들도 바쁘고…그러면 자연, 쓸쓸하실거 같아요. 꼭 미국에서 한국방문하는거가 문제가 아니고, 서울살다가 오래전떠나살던고향에 방문하는것도 비슷한 심정일거에요. 예전에 제가 어려서 시골살때, 제 당숙이나 그런 어르신들 가끔 놀러와서 며칠씩 여기저기 친척집 묶는거 보면….참 쓸쓸해 뵈더군요. 그렇더래도 다음해에 또 건강이 허락하면 또 찾아오시고… 그분들께는 큰욕심없이 그저 순박하게 시골지키고 있는 친지가 그나마 큰 위안이 되었을 듯해요. 시골들러서 방문할 친지라도 있으니까. 친척없는분들은, 그냥 옛전에 알았던 동네사람들러서 막걸리 한잔 하시고 다녀가시는게 다 더군요.

          미국에서 고향 방문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그분들 연세가 60이 넘으신 분들이에요. 나이가 깊어갈수록 고향이나 옛사람들에 대한 그리움도 깊어가는가 보더군요.

          미국은 정붙이고 사시기 힘든 땅이에요. 의지로 되는게 아니죠. 사람과의 정이 중요한거니까. 산천도 중요하긴 해요. 그런데 그 산천에 친구나 여러사람과의 그리움이 엮어져 있지 않는 산천은 별로 정이 붙진 않을거에요. 미국 산천은 또 한국처럼 아기자기하고 쫀득쫀득한 산천이 없어서 원래 정붙이기도 힘들고요.

          사람들 더 붙드세요.
          미국사람들은 별로 도움안되고, 그나마 한국사람들과 계속 부대끼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뭐 음식도 인스턴트나 일회용같은거 좋아하시는 취향이라면 미국사람들도 나쁠건 없겠죠만.
          미국속에서 한국사람은 그냥 섬이에요. 혼자만 있는 무인도도 될수 있지만, 그나마 마음이 통하는 한국사람과 섬마을을 이루며 살수있을정도는 가능할거에요.

          사실 나는 아직 추석이고 뭐고 … 미국에서 감흥이 없으면 없는거지 뭐…하고 넘길수 있는 나이이지만, 한국에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원글에서 느끼는 그런 느낌 많이 느낄거같아요. 그래서 아마 사람들이 가족이민에 목을 메겠죠? 미국이 살기 좋아서 가족들 데려오는게 아니라, 혼자서 타국생활하기 싫으니 감언이설로 한국서 잘살고 있는 가족들 꼬셔오는거죠. 저도 지금 조카들 꼬셔올 생각 많이 해요. 제 자신보다는 제 아들놈, 미국서 친구도 없이 국제미아처럼 살게 될까봐 그게 격정이라서…아무리 미국서 태어나 영어잘해도 미국애들은 좀 다르죠. 제 아들놈 한국말도 못하지만 한국데리고 나가보면, 애들이랑 노는게 너무 달라요. 보는 내가 행복할정도로요. 미국서는 그렇게 행복해보이지 않거든요.

          • ㅜㅡㅠ,.ㅡ/ 72.***.241.138

            사람들을 더 붙들어라….
            의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런데, 혼자사는 습관이(물론 단촐한 가족은 있지만) 너무 깊게 들어서, 정다운 사람을 만들기까지 치러내야 하는 감정소모가 부담스럽네요. 차라리 개나 고양이에 더 관심이 가는 입장입니다.

            혼자서 할수 있는 취미나 소일거리도 고려중입니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 Mohegan 20.***.64.141

      꼭 제가 한국에 나갔다면 느낄수 있는 심정을 잘 쓰셨네요. 친구들은 일년에도 몇번씩 한국을 잘 가던데 저와 처는 왜 그렇게 못하는지.. 아마 성격탓인 모양입니다.

    • 가을 74.***.34.1

      내 가슴이 아프네요…..가을 인가 봅니다..

    • 벽창우 74.***.6.196

      “귀향이 불가능한 나그네에겐 모험이라는 원심력도 갖기 어렵다”

      원글님이 설명을 해 주니 더욱 마음에 와 닿는 글이 되었네요.

      지난 4월 한국 갔을때 꼭 뵈야 할 분만 보고, 차를 빌려 와이프와 둘이서 전국을 돌고 왔습니다.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들 보는것 보다 마음이 편하고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 이 좋아하는 취미나 소일 거리 찿아서
      되도록이면 몸 과 정신이 건강해 질수있게 햇빛을 받고 할 수 있는 야외 활동하는 것으로,
      활기찬 생활을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