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alk Free Talk 일본에 부역하는 자들의 논리 This topic has [2] replies, 0 voices, and was last updated 5 years ago by 차별민족. Now Editing “일본에 부역하는 자들의 논리” Name * Password * Email Topic Title (Maximum Length 80) 이번 램지어 사태와 미국 노예의 역사를 뒤지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이루고 노예제 폐지의 선발 주자로 나서 1833년 노예제를 완전 폐지했고 일본이 흠모하는 프랑스는 1827년에 노예매매를 금지한 데 이어, 1848년에 노예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했고 미국도 남북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1863년 노예해방 선언을 했고 노예폐지에 대한 세계적 추세는 조선에서도 영향을 미쳐 갑오개혁 1894년에 신분제 폐지를 공표했고. 청나라도 1906년 노예제를 공식 폐지했다. 그런데 조갑제의 글을 보니, 일본은 노예제를 일찍 폐지했는데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고 하면서 조선은 동방노예지국이라 설을 풀었던데... 그럼 일본이 노예를 폐지한 근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찾아 보니. https://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5149 종군위안부가 성노예가 아님을 주장하기 위해서 1926년 노예조약 제1조를 들먹었는데. 그런 법이 있다는 자체가 노예를 유지했다는 뜻인 것 같은데... 아무튼 그들이 조선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사용되는게 노예제인데 성노예란 말이 나오면, 열등제도를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에 온갖 논리를 내세워 일뽕들을 이용해 가려보고자 하지만 쉽사리 가려지지 않는 것 같다. 일본의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언제 폐지 되었는지 아시는분 계신가요? 키워드를 신분제로 하니 나옵니다. http://www.1ga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3406 1870년 봉건적 신분 질서 폐지로 농민과 평민들에게도 무사들만 썼던 성을 허용했다. 1871년 메이지 정부는 에도시대 농 · 공 · 상을 평민으로 하면서 에타(穢多), 히닌(非人) 등 천민을 평민으로 해방했다. 이른바 4민 평등이 이루어졌다. 폐도령(廢刀令)이 내려져 사무라이가 칼을 차는 것이 금지됨으로써 평민과 구별짓는 사무라이의 특권은 모두 사라졌다. 사무라이를 상징했던 일본식 상투 촘마게도 사라진다. 1876년 사무라이에 지급되던 가록(家祿)을 정지하고 퇴직금 형식으로 일시금을 지불한다. 이를 '질록 처분'이라 한다. 이를테면 퇴직금인 셈이다. 그러나 퇴직금으로 사업을 해 성공하는 자가 드물듯이, 사무라이들도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거의 실패했다. 일본 지도자들이 서양을 시찰하면서 절실히 느낀 점은 군사력 강화였다. 1873년 메이지 정부는 징병령을 발표하여, <strong>20세 이상 모든 남자는 3년간 현역</strong>에 복무하고<strong> 그 후 4년간은 보충역</strong>에 남는 내용의 제도를 마련했다. ... 현역 보충역 어디서 많이 듣던 용어인데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용어 였어. 출처 : 일간경기(http://www.1gan.co.kr) I agree to the terms of service Update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