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Forums Job & Work Life 유학생으로 와서 미국에서 지금까지 살아 남은 건 기적의 연속 This topic has [21] replies, 0 voices, and was last updated 6 years ago by Ana. Now Editing “유학생으로 와서 미국에서 지금까지 살아 남은 건 기적의 연속” Name * Password * Email Topic Title (Maximum Length 80) 이제는 이 사이트에 잘 오지 않지만 우연히 제가 6년 전에 올린 글을 발견했습니다. <a href="https://www.workingus.com/forums/topic/취직-못하고-한국-들어가게-되면-어떻게-되는-걸까요">https://www.workingus.com/forums/topic/취직-못하고-한국-들어가게-되면-어떻게-되는-걸까요</a> 이 때 인턴이 하도 안 구해져서 겨울 방학에 산호세에 무작정 갔는데 거기 있어도 안 구해지는 건 마찬가지라 우울해져서 하숙집에서 며칠간 누워만 있었습니다. 낭떠러지에 내몰린 심정이었습니다. 당시 CS로 전공을 바꾼 게 겨우 1년 전이라 4학년이었습니다. 1년 학교 더 다닐 집안의 경제적 여력이 안 됐고 사실상 인턴을 못 구하면 미국 생활은 끝이었습니다. 인턴을 구하면: 봄 co-op과 여름 인턴을 하면서 6개월을 벌고 가을학기 다니고 그 다음 봄 학기도 파트타임으로 들으면 또 6개월이 생기니 경험을 쌓고 공부를 해서 취업에 도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턴을 못 구하면: 봄학기 다니고 졸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인턴도 못 구하는데 취직은 불가능하니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글을 올린 1월 4일 토요일은 겨울방학이 끝나기 겨우 보름 전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경비를 지원해주셔서 어렵게 왔는데 빈 손으로 돌아갈 생각에 막막했습니다. 그리 오고 싶던 미국에서 학교 다니면서 '한국에 들어가면 나는 할 게 노가다 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매일 자신을 채찍질 해왔는데 이렇게 한국에 갈 생각에 허탈했습니다. 빨리빨리 문화, 상명하복 문화, 술 문화, 경쟁, 자격증 시험, 비교질.. 어느 것 하나 맞질 않아 암울했습니다. 그 다음주에 테크니컬 인터뷰 두 개가 잡혀 있었는데 무기력해져서 준비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보다 3주 전, SFO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산호세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밤에 도착해서 하숙집 아주머니가 라이드를 해 주셨는데, 눈만 오던 학교 주변과 비교되는 풍경이었습니다. 101 고속도로를 따라서 말로만 듣던 아마존 로고도 보이고 무슨 스탠포드 이름도 보이고, 선선한 바람이 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솔솔 불어오고.. 지금 생각하면 그 설렘 덕분에 인턴을 못 구한 가을 학기의 실패를 잊고 의욕을 가지고 3주간 버틴 것일지도 모릅니다. 3주간은 타는 간절함으로 구직을 했습니다. 중고 자전거를 샀습니다. 기차역까지 자전거로 50분은 걸려서 어딜 가든 왕복 4시간은 걸리는데도 몇 일에 하루 정도는 meetup을 가고 나머지 시간은 인터뷰 공부를 하고 링크드인과 엔젤리스트로 무작위로 커넥션 신청을 했습니다. Caltrain과 자전거로 meetup이 있는 곳은 샌프란시스코든 멘로파크든 갔습니다. 가서 괜찮은 회사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얼굴에 철판 깔고 좀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혼자 자전거로 다니다 보면 여러 회사 건물들을 지나치고 셀 수 없이 많은 회사 이름들을 보았습니다. 회사 이름을 읽어보기도 하고 저런 회사에서 일하는 건 어떤 경험일까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그 앞에 작아진 것 같아서 눈물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힘들었던 상황이라 여러 요인들이 섞인 눈물이었을 겁니다. 소리내어 울기도 했습니다. 도로 갓길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면서 혼자 우는데 차들은 무심하게 쌩쌩 달리고 소음에 우는 소리도 묻히고 세상에 혼자 된 느낌... 그렇게 하다 보니 진이 빠졌던 걸지도 모릅니다. 하도 돌아다니니 배가 고파서 많이 먹어야 하는데 하숙집 아주머니는 눈치를 주니 미안하면서도 서럽고... 아무튼 그 주말도 지나고 금요일이었습니다. 테크니컬 폰 인터뷰에서는 하이어링 매니저가 Array를 shuffle 하라는 문제를 물었습니다. 정답을 몰랐습니다.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랜덤이며 확률이며 아는 것 다 갖다 붙여서 대답했지만 마지막 인터뷰도 이렇게 정말 끝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은 방학 기간은 겨우 1주일. 애초에 1년 반 남짓 컴퓨터 공부해서 인턴 구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고, 그 주말에는 희망고문에 지쳐 체념을 하고 학교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말이 지나고 리크루터한테 보이스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next step을 얘기하자는데 기쁜 마음도 잠시, 온사이트 인터뷰는 어떻게 뚫지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전화를 했는데 verbal offer를 받았습니다. 봄 인턴이라 그런지 그냥 온사이트 없이 오퍼를 준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얼마나 기뻤을지는 위에 제 상황을 통해 짐작이 가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나서 그냥 웃음만 나왔습니다. 제가 그 회사에서 일 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습니다. 당시 대단한 회사였어서... (아무튼 그래놓고 다른 리크루터가 온사이트를 오라길래 다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가 그건 그냥 회사 시니어급들 만나는 자리라고 해서 안심하고, 비자/학교 제도상 봄 인턴이 허용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봄 인턴을 구했는데 그게 안 될까봐 또 조마조마하고 그 후에도 수 차례 지옥과 천국을 오갔습니다...) 처음 출근하던 날 2월 3일은 겨울인데도 회사 캠퍼스에 벚꽃이 가득 피어 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저는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고 잘 살고 있습니다. 2014년 겨울은 미국 생활 하면서 당시에 맞은 가장 큰 위기였지만, 그 후로도 그 만한 위기가 열 번 정도는 닥쳤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정도부터 좀 안정이 되었습니다. 굴곡 가득한 인생을 살다가 안정이 되니깐 욕심이 많아지다가도 힘들었던 시절, 그 때 도와줬던 사람들, 망할 뻔한, 아니 망할 수밖에 없던 그 많은 위기들과 그 때마다 기적적으로 얻게 된 second chances를 생각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workingus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엔 불안해서 매일같이 글을 올렸고, 답글에는 험한 말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도움 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말 나온 김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CS 마이너나 해서 경제학 리서치 잡이나 얻으려던 제가 CS로 전공을 바꾸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된 데에는 이 사이트 사람들 조언이 많이 작용 했습니다. 그나저나 엔지니어 첫 1~2년은 일하면서 머리가 뽀개질 정도로 스트레스 받더군요... 아무튼 미국에 배경 없이 와서 자리까지 잡은 1세대 분들은 정말 뛰어난 분들이든지 아니면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분들이든지 만나보면 대단한 분들이더라고요. 미국에 남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돼서 안타깝게 한국에 돌아가신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사연 없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가끔은 영어 때문에 위축되고 타지에 가족도 없이 혼자 사니 서러울 때도 있겠만 그 때마다 지나온 고개들을 돌아보며 자긍심을 갖고 당당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젠 나도 끝났다고 생각할 때마다 도움을 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감사함과 겸손을 마음에 되새길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 모든 걸 당연시하던 저였는데, 우연히 발견한 예전에 올린 글 때문에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군요. I agree to the terms of service Update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