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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117:50:40 #3417751이민추세 96.***.20.195 7012
90년대 후반 이민자로 한국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 않아 미국에 취업이민으로 그 당시 한국 대기업의 연봉 2.5배 정도 받고 첫 직장을 H1B로 시작한 1인입니다.
요즘 한국내 경제도 좋다하고 최저임금등을 대폭 올리고 근무시간도 문쩝이가 간섭하여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고 대체적으로 연봉 수준도 상당히 높아 미국으로 취업이민으로 오거나 유학후 취업해도 별로 경제적인 이익이 크지 않을듯 합니다.
최근에도 꾸준히 이 사이트에 올라오는 새로 이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유학후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민을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정치적인 토론을 하고 싶지는 않고 단지 한국이 못살던 시대나 또는 90년대 외환위기등의 굵직한 요소가 없는데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이 왜 잘나가는듯한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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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다니지 못한자들 전문직 종사자들 제외하고 강남 이외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오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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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다니고, 서울 강남에 사는데요.
더 행복해지려고 다시 미국 가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행복 안했다는것은 아닌데, 하루하루 긴장감에 무언가에 몰리는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또 저는 꽤 괜찮은 개발자였는데, 한국에서는 관리를 해야만 인정받더군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개발하는 즐거움(?)을 가져가고 싶은데 좋은 선택인지는 몇년후 알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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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몇개 (한개는 17층 짜리 대형) 가지고 있는 친척은 애들을 중학교 부터 보딩 보내더니, NIW 로 영주권 받아 나오던데요? 자제분들 교육 생각해서 미국으로 터전을 옮기고 싶어한것으로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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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퍼한테는 경제적 이득 커요… 오히려 더 커졌죠. 그리고 중위권 직장 잡은 후 적당히 노력한다면 커리어 면에서 하나씩 올라가기도 미국이 더 쉬움.
애들 교육 경쟁력에서 비교가 안됨. 죽을 똥 싸서 스카이 보내느니 적당히 시켜서 어디 주립대 보내고 말지.
한국에서는 이제 저녁이 생기긴 했는데 노후는 없죠. 나이 오십에 짤렸는데 저녁 있음 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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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원글님이 이해가 안됨. 미세먼지 하나만으로도 이민 나올 이유로 차고도 넘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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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다가 아니죠. 미세먼지, 한국특유의 서열문화, 사회 전반에 깔린 개똥같은 유교문화의 잔재, 악습, 육체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펜대잡는거 아니면 아직도 저급하게 보는 문화, 수도권 미친 부동산값, 등등등 이유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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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정년 퇴직하는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 친군 매일 손자, 손녀 얘기를 많이 하던 유머 많은 친구였습니다. 한국에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나는 떠나는 친구들이 대학갈 자녀 등록금 걱정이 주 된 주제였습니다. 한국은 잡 시장이 너무 작습니다. 중간에 대기업 나오면 중소기업으로 운 좋게 가도 월급은 절반 가까이로 줄죠. 복지 혜택도 따라서 형편 없이 나빠지고, 하다 보니 닭집이나 맥주집 당구장 커피샾에 퇴직금 털어 넣고 인생을 겁니다. 그걸 본 젊은이들이 공무원, 공무원 하는 겁니다. 전 한국을 떠나서 중국, 홍콩에서 직장을 다녀봤고, 일본 기업들도 많이 접해봤습니다. 여기 미국에서도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 직장인들은 경쟁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회만 되면 왜 안 나오겠습니까. 당장 한국서 자식 결혼을 시키려 해도 자식 전세 집 장만 도 직장 생활만 한 사람은 무지 힘듭니다. 4년전 제가 여기 올 때 어떤 열쇠 하시는 교민이 아직도 이민 오는 사람이 있어요? 하고 묻더군요.
지금은 경쟁력 있는 사람이 나오는 시대 입니다. 우리 자식들도 경쟁력을 갖도록 그렇게 키웠고 키우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애들을 키우면서 타운 하우스나 시청 공무원 하는게 좋다라는 말을 해본적도 없고 주변에 봐도 공무원 하겠다는 2세들을 아직은 만나본적이 없습니다.
한국처럼 미국 고등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거나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서 전공 불문 말단 공무원이라도 하겠다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적도 없습니다.
왜 한국만 공무원에 목매달고 있는지 참 아이러니 합니다.
한국 떠나기 직전인 90년대에도 대학생들이 5급 고시면 몰라도 9급이나 7급에 올인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를 않았던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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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국이 독재로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원하는 분들이 미국 이민을 많이들 원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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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가 꼴보기 싫어서에 한표를 던진다
도대체 애들 델고 선동질하고 국가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다
전대협패거리데리고 노는데
우리적엔 그놈들 저희들 끼리 서로 완장차고
누구에게나 한자리 권햇다
학사경고 제적 당하고 맨날 놀다가
그냥 요즘 다들 비서관 하데 -
2020년 현재 한국에서 아직도 미국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놀랍기는 합니다.
단순히 미세 먼지, 교육 때문이라면 미국도 지역에 따라 공립이나 사립이냐에 따라 교육의 질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미세 먼지는 아니지만 대도시 역시 교통체증이 심각하고 주택문제도 역시 높은 렌트비나 집값으로 서민들이 살기는 마찬가지로 팍팍합니다.
일본만 해도 높은 경제 수준이나 또는 자국내 시장이 커서인지 이민자나 유학생이 별로 없고 프랑스, 영국, 독일등과 같은 유럽 국가 출신들이 대량으로 유학을 오거나 또는 이민을 오는 사례도 주변에 그렇게 많지 않은듯 보입니다.
자주 보이는게 십억이 넘는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인, 인도인들이 대량으로 이민, 유학을 오는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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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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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분위기가 활기차고 희망이 넘치고 그렇죠? 열심히 하면 되고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진취적으로 창의적으로 뻗어나가는 젊은이들도 가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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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본 요즘의 한국 젊은이들은 세계 어느 선진국에가도 절대 뒤지지 않을 좋은 신체 조건과 정신 그리고 지식이 있는듯 싶습니다.
예전에 보던 한국 청소년과 지금의 청소년들은 국제화 측면에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은 되고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세계 무대를 두드려본다면 좋은 기회들을 많이 잡을 수 있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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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을 포함한 몇몇 댓글 달아되는 아해들 (sgg, 요즈음, 그리고 가슴 art 같은 아해들 말이다),
애네들 뭐냐? 거의 북한은 지상낙원이야요. 하는 북한애들처럼 왜들 이러니?남한은 지금
15년째 세계 최고 자살율과 세계 최저 출산율로
한국좀 안다는 외국학자들은 한국하면 치를 떨어되는데,
원글을 포함한 얘네들 누구니?
알바들이니? 수준도 너무 저렴하다.
알바비 아낀다고 가갸거겨도 못하고, 그저 욕질이나 해대는 애들 알바로 고용해서
이게 뭔짓들이냐?
사우스 코리아가 저녁이있는 삶이니 뭐니 하는 지상낙원이면 그냥 입다물고 있으면 되지
왜 북한애들처럼 떠들어 되는 거니?세계 최고자살율에 세계최저 출산율이면 이미 끝난 사회아니고 무어니?
일부 극소수 부동산 부자쉐키들 제외하고,
한국이 좋아서 살아가겠어? 할수없으니 살아가는것이지.
다 아는 이야기 가지고 이렇게 지상낙원 운운하면 북한아해들하고 뭔 차이가 나겠어?
원글 포함 알바쉐키들 수준들이 하도 저렴해서리…에고,알바 인건비좀 조금 더 써서 그나마 기본은 할 수 있는 아해들좀 쓰지.
멘, 쒸레기 같은 애들만 고용해서리…사우스코리아 지상낙원이나 운운하고 있고,
반론보면 바로 욕지거리나 해대고….
그거슨 아니지…
쩝.-
원글 자체가 정치적으로 토론하자는건 아니고 한국의 언론들을 보면 한국의 재정이 넘쳐나서 예산을 쓰지 않으면 제재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정부 및 지방 단체들이 예산이 넘쳐나는것 같고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대통령인지 북한 똘마니인지가 나와서 하는 말을 언론이 그대로 복사해서 전파하고 있더군요.
한번 한국의 언론들 뉴스들 체크해 보세요.
한국이 얼마나 잘 나가고 얼마나 살기 좋고 얼마나 좋은 민주적이고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원하는 대통령을 가졌는가 하고 문비어천가를 짖어 대고 있는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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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너 본색을 바로 들어내잔니, 문비어천가가 어떻고 저렇고,
너가 안티 문재인정권쪽, 그러니까 황교안 자유한국당이나 전 뭐시기라는 아주 드러븐 목사쉐키측에서 고용된 알바라는 증거를 지 입으로 토해내내, 그랴. ㅋㅋㅋ하지만, 나도 문재인 정권은 아주 드러븐 정권인거 인정한다. 어떤면에선 이명박근혜 정권보다 더 교활하지.
그런데, 어쩐다냐, 그게 너그들 사우스코리아의 팔자이고 운명인걸, 어떻게 청와대에 들어서는 정권마다 그토록 악마적이냐?
정치인들은 일반서민들의 거울이라고 하잔니. 팔자인걸 어떻게, 그런 인간들이 청와대에 들어가는게 좋다는데..
너도 그런인간들이 청와대에 들어가는걸 알바비 받으면서 열심히 돕고 있는 것이고…그런데, 문재인쪽도 그렇고, 문재인 개쉐이를 외치는 너를 고용한 인간들도 그렇고, 왜 둘다 모두 똑같이
마치 무슨 숨겨진 합의를 본것처럼
15년째 이어져오는 사우스코리아의 세계최고 자살율과 세계최저 출산율엔 별로 신경도 안쓰고 있는것일까?나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고 있지
문재인쪽이나 (이것은 노무현쪽-김대중쪽도 포함이다), 너그들 토착왜구들이나 둘다 모두
사우스코리아의 세계최고 자살율과 세계최저 출산율에 가장 큰 원인 제공자들이라는 것이다.뒤르켐이라는 아주 유명한 사회학자가 평생연구끝에 자살에 관하여 결론내린게 있다.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니가 돈받고 지지하는 안티 문재인측이나, 그리고 문재인측이나 뒤르켐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떤 존재들이 되겄나 한번 곰곰히 생각혀 봐라. 너에게 알바비를 주고 있는 인간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함 곰곰 따져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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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트에 들어와 미국을 혐오하고 반미적인 성향의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가 궁금하긴 했습니다.
한국이 잘나간다면 이런 사람들이 workingus 에 들어와서 헛소리할 이유가 있는 그게 궁금했던 겁니다.
오래동안 한국 방문도 하지 않고 한국 언론만 보면 한국은 모든 경제 상황이나 사회 상황이 잘 나가는 세계 최고의 나라라고 찬양 일색인듯 싶고 일본, 미국은 후진국 취급하는 추세로 보이고 오직 중국만이 천하의 세계 제일 국가라고 빨아대는게 보이는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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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그거 알아요? 재벌3세자식들도 또 설카포연고생들도 중견기업사장 또는 중소기업사장들도 다 미국에서 살고 싶어하고 영주권 취득하고 또는 시민권 취득한다음에 한국에서 놀다가 다시 미국에서 잡을 잡는경우를 저는 보았습니다. 저희 누나가 출입국관리사무소직원이어서 많은 정보를 얻거든요… 비자갱신할때 무슨 사유쓰고 본인이 직접와야하는 법이 있는데, 그것떄문에 많이 접합니다.
대기업 재벌 자식들도 이러는데 지식인들,연예인들,부자들도 이러는데… 지금 정보화시대인데 우매정책으로써 한국에 남아있는 사람들 빼고 다 미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미국이 낙원이란말은 하지 않겟습니다. 근데 한국이 헬조선 헬조선 지옥불반도 거리는지 그 이유는 아셔야 할겁니다. 이게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직도 나오는 말인데… 괜히 나왓겟습니까?-
공감하는 바 있으나, 지나친 일반화를 하시는것은 피하시는게 어떨까 합니다.
한국이 좋은 분들 많이 있어요. 당장 홍라희 여사님 자제분들(아들은 서울대 나왔군요.)을 포함한, 제법 많은 3세들은 한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할것 같은데요? 사고를 쳐도, 불법을 저질러도 죄값을 치루지 않으니…
그와 더불어 서민들 등골에 빨때 꼽아 지낼 수 있는 분들도 한국이 더 좋을것 같아요.그와 반면에,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나라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한국에 계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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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출입국사무소에서 이름만 되면 국적이 나오는 시스템이라…
혹시나 오해할까봐 그런데 컴퓨터로 신원조회한다는 소리입니다.
제가 듣기론 재벌자식들 거의다가 영주권자 아니면 시민권자인 소리를 들어서
님말에 공감 못하겟네요
그리고 한국을 위한다구여? ㅋㅋㅋ
솔직히 자본주의 사회라서 법을 피해가면서 도덕적인룰도 피해가면서 하는건 뭐라 안하겟는데…
골목상권 침해하고,유통회사 차려서 중간에 이득 취하고 그것도 편하게 그것도 중간에 이득취하기 쉽게 법을 바꿧더군요…
이런나라가 한국입니다.
솔직히 한국이 빨대 꽂아서 살기 좋다고 하는데 당연하죠, 미국에서는 경쟁력이 안되니까 한국에서라도 빨떄를 꽂아야겟죠
근데 그거 아십니까? 그사람들도 시민권자 영주권자라는걸?-
제 말의 방점은 지나친 일반화에 있습니다. 한국이 좋을 수 밖에 없는 검은머리 외국인들이 넘치게 있고, 묵묵히 후학을 키우고, 소외 받은 분들 돕는 교수들도 있고, 마케팅을 개떡같이 하는곳이기는 하나, 남들 모르게 사회활동 하는 기업도 있고, 재벌중 사심없는 장학사업을 하는곳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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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서서히 망해가고 있는 나라입니다..
출산율은 0,9명대로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삼성전자 빼고는 대부분의 대기업 중소기업들도 망해가고 있죠.20~30년 뒤 노인,육아부양비가 경제활동인구랑 1:1 매칭될 정도로
사회가 침체되고, 세금과 연금 건강보험료가 신나게 털릴겁니다.도망칠수 있다면 미리 도망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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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삼이 말년에 IMF로 국가 부도 사태가 되고 대중이 집권으로 대우,한보등 굵직한 기업들 사라지고 은행도 정리대상이 되던 시대에 미국에 온 입장으로서는 현재 2020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민을 꿈꾸거나 또는 실행하고 있다는게 참 희한하게 생각은 됩니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인권과 여성들을 위한 패미니스트 문쩝쩝이 정권에서도 이민을 하는 사람들과 한국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은 많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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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노인이 늘어나면 사회기반 유지인력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노인증가로 인해 특히 간병인 간호사 요양보호사 수요가 엄청 늘어나고, 인구감소로 경찰 소방관 환경미화원 경비원에 하다못해 쓰레기분리수거인 편의점관리알바 등등, 아무리 인공지능과 로봇이 발달해도 대체할 수 없는 사회기반 직업군이 인력공급이 딸려지면, 그 대우를 좋게 해줄 수 밖에 없죠.
그럼 공부 잘해서 4년제 대학 학사나 석박사 후 대기업 취업해 고급인력 직장인으로 살아가는거나, 편의점 알바를 하는거나 똑같이 월급 500 받는 시대가 올 겁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발전가능성이 무지막지하게 떨어집니다. 어차피 똑같은 대우인데 누가 4~10년 버려가며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합니까?
이미 서울대 공대 자연대 석사과정부터 미달나는거보면 대학원은 2년전부터 망해가고 있는 모양새죠.
현재는 일본이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죠. 알바만 하며 사는 프리터가 판치고, 기업들은 별볼일 없는 구직자들을 상전 취급하며 모셔옵니다. 그나마 한국보다 인구변화가 덜하고 엔화장난질로 버티고있는겁니다. 물론 실질 gdp 성장률은 박살낫지요.-
JTBC에서 보도된 내용이고 통계이니 팩트만 말하겟습니다, 지금당장 검색해보세여 네이버나 구글 또는 jtbc뉴스룸에서
일본 성장률 보다 못한게 한국성장률입니다.일본이야 우리나라보다 국토가 크고 그러니 잃어버린 10년 10년 하지만 경제성장률은 2~3%대입니다. 그것도 아주 꾸준하게
근데 한국은 6% – 5% – 2%대 지금은 1%대라고 한국은행에서 또는 세계은행에서 이렇게 발표합니다.한국은 나라도 작은데다 자꾸 조선업 조선업하고 반도체반도체 하고 핸드폰핸드폰 하는데 아주 웃겨죽겟습니다.
제가 하도 궁금해서 메뉴얼같은거 뒤져보니 다 일본제품아니면 독일,미국이엇고 특허관련된건 다 미국거였습니다.
이게 뭘 뜻하는지 아시나요? 우리나라는 껍데기만 잘만든다는거엿습니다.근데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이 세계최고 일본은 전자제품 하락 이러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미국나사에서도 미제,독일제 안쓰고 일제쓰는데, 독일 자동차회사들도 일제는 넘버2 이러고 있는데 왜 한국만 이렇게 일본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지… 반감 가지는건 좋습니다. 역사관이 확실하다는거니까요 근데 그걸 넘어서 기술자체도 폄하하는걸 보니 우리나라는 아직도 멀었구나란걸 느꼇고 제 후손들에게는 이런 바보같은 나라에서 안살게 하기 위해 나올려고 합니다.아직도 한국이란 나라는 정신 못차렷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져?
그 한국이란 dna가 증명하는거 같네요 언젠가 먹힐겁니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근데 더 웃긴건 한국애들은 삼성 잘나간다고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줄 아는 모양입니다.심지어 이재용조차도 애플,아마존,페이스북,구글사업가들한테 굽신굽신거리고
또 일본,중국 사업가들한테도 머리박으면서 조아리는데…삼성이라는 회사도 이런데 한국 대기업이 아주 잘나간다고 착각하는거 보면 기가 찰 노릇이져…
아 그리고 자꾸 미국 폄하하는 사람들 보면 그렇게 좋으면 한국 살았으면 좋겟네여 왜 이 사이트 기웃거리는지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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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의 “명목”성장률 기사에 선동된 바보 여기있네. GDP는 PPP로는 비교 안했나보네. ㅉㅉ
마이너스 금리의 일본 실질 성장률은 여전히 0%대이고, 실질이 2%이면 당장 금리 올려야함.
니가 한국 DNA 탓하기 전에 니 DNA부터 좀 조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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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되는 내용입니다.
자국을 높이고 자긍심을 갖는건 좋은데 일본이나 미국이나 만만하게 볼 그런 국가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왜 자꾸 잊고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한국에서 느꼈던 한국의 경제성장등이 놀랄만한 성과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강대국을 따라가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던데요.
조선시데에도 왜놈들이라고 무시하다 조선 전 영토가 왜인들에게 유린당하고 수십만 조선인들이 포로로 일본에 끌려가 국제 시장의 노예 가격이 대 폭락할 정도로 헐값에 팔려 나가고 조선의 대부분의 젊은 여자들은 왜놈들에게 당한 치욕적인 역사가 있지요.
역사를 잊지않고 극일을 위해 일본을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지 그냥 지나간 일을 두고 욕만 해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데 이를 또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선거때 표나 받으려는 벌레같은 사람들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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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danzi.com/ddanziNews/615146
20년전인 1999년에 딴지에 올라왔던 글입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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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사람으로 많은 부분이 공감되어 이 게시판에 같이 고유하고 싶어 카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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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36살먹은 남자다. 지난 달에 컴퓨터를 샀다. 할 줄은 알았지만 소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터넷도 탐험하고 이렇게 요즘 인기있고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온다는 딴지일보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요즘 한국은 서용빈인가 하는 야구선수하고 김뭐인가 하는 가수들이 병역을 기피해서 시끄러운 모양이다.갑자기 군대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난 오늘 한국국적을 버린 대신 뉴질랜드 국적을 얻었다. 이곳에 온 지 약 3년… 뉴질랜드 국적 얻었다고 정말 이나라 국민이 된 걸까? 천만에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도 난 이방인일 것이다. 난 그것을 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나 싫어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웬만큼 정착도 했고 내 명의로 된 작은 집과 배 한 척도 있다.
3년내내 하루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지금은 일주일에 5일을 바다에서 보낸다. 난 어려서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곳에 와서 비로소 난 비슷하게 꿈을 이룬 것 같다. 고기잡이 배의 주인이 뭐 대단할 것까지는 없지만 틈나는 대로 바다를 그리며 나름대로 난 낭만을 느끼고 삶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때때로 외롭다는 생각이들 때도 있지만, 어차피 난 혼자가 아니었던가…
난 정말 한국이란 나라가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이곳에 왔다. 누구는 미친놈이라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싫었다. 한국이란 곳이. 하지만 그래봤자 김치 못 먹으면 못 살고 좋아하던 한국노래 들으면 눈물 흘리는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다.
난 고아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와 여동생 이렇게 둘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 두 분 다 차사고로 돌아가셨다. 서울로 오시던 고속버스가 다리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천만원이란 돈이 보상금으로 나오고 난 부모님을 잃었다. 친척분들 말로는 그 운수회사 사장이 3성장군에 대단한 권력가 출신이어서 유가족의 힘으로는 그 정도 돈도 겨우 받아낸 것이라고 했다.
15평짜리 아파트 한 채와 아버지께서 하시던 작은 동네 식료품점을 처분해서 그렇저럭 살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신문 돌리고 여동생은 대학도 포기해가면서 하나 뿐인 오빠를 위해 돈을 벌었다. 난 여동생을 위해서 그리고 내 미래를 위해서 죽도록 열심히 그림을 그린 끝에 경희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3수를 했다.
레슨을 받는다는 것은 형편상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공부 잘해서 학력고사 잘 치고 실기시험을 잘 봐도 최소한 대학 강사에게 레슨받지 않으면 대학 못 간다고 주위에선 충고를 했지만 난 무슨 소리냐며 무시했다.
난 용산고등학교를 나왔다. 가난하고 부모도 없는 놈이 할 수 있는거라곤 그저 열심히 공부하는 거였다. 당시 나의 내신은 2등급에 학력고사 285점(체력장 포함)임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레슨 한 번 받지 못하고 동네 미술학원만 겨우 입시 석 달 전 갔었던 게 아마 3수의 고배를 든 원인이 아닌가 싶었다.
담임선생은 가난한 고아가 무슨 미술이냐며 그냥 연고대 아무과에나 가라고 하셨다. 나를 걱정해주신 것이었을까? 아니면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아뭏든 난 끝까지 미대를 고집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난 군대에 가야 했다. 고아에 소년가장이나 마찬가지인 나를 병무청은 무슨 이상한 법규를 들어가며 현역대상자라고 했다. 여동생이 조그만 직업소개소에서 사무를 봤는데 아마 그게 이유가 아닌가 싶다. 어제 인터넷을 보니 배우 이병헌이도 소년가장이라 현역에서 면제사유가 되었다고 하는데 외제차를 타며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버는 소년가장도 한국에 있고 나처럼 현역가는 소년가장도 있고 한국은 정말 변하지 않는 다양성의 나라인 것 같다.
결국 난 대학생활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군대로 끌려갔다. 군대가는 날 용산역에서, 부모님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여동생을 안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오빠도 없이 혼자 살 계집애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차라리 나를 위해 돈벌어야 하는 동생힘도 덜고 잘되었다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군대에서 보낸 3년… 난 빽도 없고 아무것도 없던터라 당연히 강원도 횡성으로 끌려갔다. 공병이었는데 상병 달기까지 거의 매일 안 맞고 살아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병장을 달기 한 달 전 진지를 파는 훈련을 하다가 졸병이 잘못 휘두룬 군용삽에 복숭아뼈를 크게 패여서 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휴유증으로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발목부위가 퍼렇게 변하고 시린다.)
3개월간 수통에 입원해 있으면서 난 점점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한국사회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통합병원의 현역병들은 빽이 좋다고 한다. 그 곳 방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이상하게도 체육대회를 하면 늘 방위가 이긴 것 같다. 달리기를 하건 족구를 하건…
제대 몇 개월을 남겨두고 난 의가사를 당하기 싫었다. 그래서 병원에서라도 좋으니 현역제대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횡성에서는 당시 훈련중 난 사고로 중대장이 진급에서 탈락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나를 거부했고 그래서 치료가 다된 후에도 2주 동안을 대기하다가 결국은 용산 국방부에서 전역대기를 했다.
그 좋다는 국방부를 난 빽없이 가게 된 것이다. 그 곳에서의 몇 달간은 정말 나에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멍했다. 난 마땅한 보직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무반에 누워 있기도 뭐하던 차에 나에게 떨어진 임시보직은 국방부 청사 장군식당 청소 보조였다. 주로 방위와 현역병들이 보직을 담당하는 곳인데 웬만한 빽으로는 오지 못하는 자리라고 했다. 난 말년 병장이라 주로 다른애들이 청소할때 옆에서 담배만 피웠다. 하지만 타부대에서 온터라 고참대우는 받지 못했다.
말로만 듯던 장군식당.. 메뉴는 매일 달랐다. 중식 한식 양식, 난생 처음으로 뒷정리를 하며 캐비어란 것을 먹어봤다. 비프스테이크, 함박스테이크, 탕수육, 양장피, 오리탕, 한정식 등 비록 먹다 남은 것이긴 하지만 난생 최고급요리는 거의 다 섭렵했던 것 같다. 그 곳 사병들말로는 장군식당은 한 끼 당 당시 5천원의 부식비로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이거 일반식당이면 한 끼 당 줄잡아도 5만원은 받을거라고 했다.
내가 제대할 무렵 사병의 급식을 담당하는 국방부 모 장군이 사병부식비 수십억 원을 착복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니면 국방부 사병들은 맨날 px에서 사먹어서 그런 것일까.
국방부 사병식당의 반찬은 한 마디로 돼지밥 수준이었다. 차라리 예전에 있던 횡성은 이곳에 비하면 진수성찬이었다. 반찬이라고 나오는 게 간장에 버무린 마늘, 쉰 김치, 똥국이라 불렸던 된장국이 다였고 가끔가다 외국에서는 가축 사료로나 쓴다고 하는 팔뚝만한 맛 없는 수입 꽁치를 저급 식용유에 튀긴게 나왔다.
당시 한 끼당 700원이 사병부식비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이건 아무리 잘쳐봐야 원가 2백원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모장군(이름이 기억 안 난다)이 구속되었을 때야 비로소 난 그 이유를 알았다.
다행이 군생활 중 친한 친구를 하나 건지게 된 곳도 바로 그 장군식당이다. 그곳을 담당하던 박 하사가 바로 그인데 동갑내기에 서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친해졌다. 당시 그는 마찬가지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그림을 포기하고 하사를 지원해 국방부로 차출된 케이스였는데 난 그를 위해서 제대하고 한 달 동안이나 매일 그림지도를 해주었다.
요즘도 그와는 종종 통화를 한다. 지금 그는 헌병대에 있는 걸로 안다. 아직도 국방부 장군식당 그렇게 맛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에엠에푸가 터져도 장군식당의 식탁은 변한 게 없고 오히려 더 찬란해졌다는 예상대로의 답을 그로부터 듣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역시 떠나오길 잘 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국방부를 지킨다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출근하는, 황금보직 방위병들의 아버지는 헌병대 사병들의 말에 의하면 모두 장군이나 국회의원, 병원장, 은행장들이라고 했다. 내기 억에… 6개월 방위들도 넘쳐났던 것 같고.. 거의 다 자가용을 타고 삼각지 다리 밑에 주차해두었다가 퇴근할 때 타고 가고.. 몸도 헬스클럽들에 다니는지 다들 좋았던 것 같고… 횡성의 동료들까지 말 할 필요도 없다. 국방부 헌병대, 의장대 사병들은 대부분 저 밑 지방에서 차출되어서 휴가도 제대로 못하고 고된 업무로 발바닥이 갈라지는 판에…
내가 한국사회에 대해 심한 염증을 가지게 된 때가 아마 바로 이 군시절부터 였지않나 싶다.
군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다. 동생이 3년 동안 나를 위해 부어놓은 적금을 타서 등록금도 내고 생활비로도 충당했다. 내 주제에 좋아하는 여자도 생겼다. 열심히 그림도 그리고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생활했다. 동생의 권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이 가난한 티를 내기 싫어서 과하다 싶은 메이커 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이 년 동안 사귄 여자는 동양화를 그리는 당시 서울여대에 다녔던 여자였다. 지금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사귄지 이 년 만에 그녀의 집에 인사드리러 간 것을 계기로 나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철저한 염세주의자로 변했다.
가진 것 없고 부모도 없는, 거기다 가난한 그림쟁이 주제에 무슨 여잘 사귀나… 은행지점장이라던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집안에 들어왔다 삼십 분이 채 안 돼 현관문을 나서기까지 인사 한 번 받지 않았고 눈 한 번 맞춰주지 않았다.
사랑? 웃기는 말이었다. 그렇게 서로 사랑했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빈부의 차가 나는 남녀가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을까? 난 순진했다. 그녀는 괴로워했고 결국 난 그녀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끝나고 나는 이를 악물고 그림을 그렸다. 3학년부터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고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생활 4년 내내 성남의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모은 돈 천만원으로 난 대학원을 준비했다. 졸업하자마자 어렵사리 동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국전 출품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잘 그려봤자. 미리 수상자 다 정해놓고 서울대 홍대 돌아가면서 상타먹기 하는 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난 가진 것도 없고 심사위원 선생도 한 분 모르고 그 사람 제자도 아니며 주위 인맥이 좋은 것도 아닌 터라 한 번도 출품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그려서 출품한 작품이 일본에서 열리는 쿄토 국제청년미술대회에서 2위로 입상을 해서 상금 30만 엔과 난생 처음 3일 동안 일본 구경도 갈 수 있었다. 이후 다른 작품으로 독일 에센 지방에서 열리는 영아티스트 컴피티션에 출품해서는 3위 입상을 했다. 난 용기를 얻었고 동생과 생활의 안정을 위해 대학교수가 되어 작품활동을 계속하기로 목표를 정했다.
하지만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단계인 강사 자리를 얻을 때 난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라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했다. 아무리 실력 좋고 뭐고간에 돈 가져오라는 말을 경희대부터 그 밑에 서열에 있는 학교관계자들로부터 (경희대보다 좋은 학교에 강사 신청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신병자 짓이다.) 수십 번도 더 들었다.
마지막으로 대학시절 날 지도했던 지도 교수의 후배가 교수로 있다고 해서 추천받아 찾아간 모예전이라는 곳에서는 칠백 정도를 가져오라고 했다. 난 정말 토할 것 같았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라는 것을 알았다. 난 동생과 성남에 있는 12평짜리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로 집 앞에 동네유치원에서 미술선생하는게 다였다. 당시 월수 30만원 조금 넘게 받았는 데 직업 소개소 직원으로 있던 동생은 70 정도를 받았다. 밤에는 간간히 경희대 앞에 있는 입시미술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그나마 대학다닐 때 담당교수가 다리를 놓아준 덕분이었다. 당시 하루 저녁에 만 원 정도를 일당으로 받은 것 같았다. 일년 조금 넘게 그 생활을 하면서 난 점점 더 한국사회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여동생은 직업소개소에서 경리를 맡아보았는데 가끔씩 소개소 차를 직접 운전하기도 했다. 같은 직업소개소 근무하는 후배의 생일 잔치를 하느라 그곳 소장과 직원들이 모두 음주였던 어느 날 모두를 집에 데려다 주고 자신도 집으로 차를 몰고 오던 중 잠실 탄천에서 음주 차량과의 추돌사고로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당시 선거철로 기억되는데 그때 국회의원 아들이 모는 차량과 충돌한 것이다. 당시 민자당 의원의 아들로 기억되는데,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조그만 탄천길에서 대학생 신분에 걸맞지 않는 그랜저를 시속 100 가까이로 몰았는데 여자친구랑 싸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역시 한국은 있는자들의 나라던가?
경찰서 형사들은 앞날 창창한 젊은이 앞길 망치지 말고 합의 봐주라며 음주사실도 기록하지 않았다. 은근히 우리 남매를 윽박 지르는 듯한 분위기에 우린 가진 것 하나 없는 약자로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치료비와 보상금 오백 만원을 병실침대 위에 던져두고 가는 의원 사모님의 모습을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사모님 운전기사 말로는 그것도 우리 남매 사정을 사모님이 듣곤 딱해서 백 만원을 더 금일봉 조로 준 거라고 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도 동생의 휴유증은 한 달 정도를 더갔다.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한 달간은 내가 반대로 동생의 시중을 들었다.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유치원은 쉬어야 했다. 사고 나고 3개월간은 정신이 없었다. 그와중에 내가 무슨 정신이 있었을까?
엎친데 덮쳐 무리를 한 끝에 군시절에 다친 발목이 재발되어 나 또한 움직이는데 큰 불편을 겼었다. 그러던 차에 예비군훈련을 내내 빼먹었다는 이유로 난 예비군 훈련법 위반으로 입건되었다. 동네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서 동사무소에 가져가면 거기에 무엇을 더 첨부해서 내라, 뭘 더해서 내라, 훈련 면제 사유가 부족하다느니 어쩌니 옥신각신해서 차라리 발목이 부서지는 한이있어도 더러워서 훈련받아야겠던 차에 동생의 사고와 또 발목 상처의 재발로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발조치를 당한 것이다.
당시에는 예비군 훈련을 돈 좀있는 똥깨나 싸는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많이 빼먹었다하여 신문에 보도된 일이 있을 때인데 정말 우습게도 입건된 사람들 중 내 이름이 맨 먼저 신문에 났다. 그것도 실명으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의사나 중소기업사장, 변호사 뭐 이런 직종이 많았는데 전부 이모 박모로 나고말이다. 법원에서 판사는 엄청난 정상참작(다리상처)이었다고 마치 무슨 은전이라도 베풀 듯이 판결을 내렸다. 벌금 100만원을 내고 석달 후 나는 3박4일의 예비군훈련을 마쳤는데 마지막 날 발목상처 재발로 결국 2주일간 병원통원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자비를 들여가면서 말이다.
동생과 함께 한국이란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영원히…
그래서 12평 시민 아파트를 처분한 돈 이천오백에 동생과 내가 평생을 모은돈 3천 만원을 깡그리 챙겨서 이곳 뉴질랜드로 이민 온 것이다. 이곳에 와서는 부두 잡역부일서부터 해서 안 해본 일이 없다. 동생은 한국교민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3년을 둘이서 정말 고생하면서 돈을 벌어 결국 작년 말 나는 고깃배를 하나 장만해서 그걸로 생계를 삼고 날 위해 대학을 포기했던 동생을 뉴질랜드 제1대학에 들어보냈다.
동생은 지금 그곳에서 장애자 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이번이 첫 번째 학기다. 바닷가 근처에 방 두 개짜리 조그만 집을 샀다. 난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아무런 사회의 편견도, 적어도 우리 남매가 사는 이곳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우린 이곳에선 영원히 이방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언제나 불이익당하고 따돌림받는 이방인 아니었던가? 적어도 우린 이곳에서 따돌림과 불이익을 당하진 않는 것 같다. 아직 겪지 않은 인종차별이니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최소한 이곳은 노력한 대로 대가가 지불되는 사회다.
난 틈틈히 그림을 다시 그릴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공부를 좀더 해서 이곳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싶다. 이곳 대학에서 장학금 입학허가도 작년 겨울 받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어 미루고 있다. 올 여름엔 조그만 겔러리에서 개인전도 열고 싶다.
꼭 그렇게 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작고 보잘것 없는 고기잡이 배의 선장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동정 받으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단지 한국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게 항상 자랑스런 것은 아니며 한국사회를 지독히 혐오한다고 그것이 죽을 죄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난 분명 죽을 때까지 한국사람일 것이다. 아무리 국적이 바뀌었다고 해도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난 아무리 달리 생각해보려고 해도 이 사실이 너무 싫은 것이다.
어느 사회나 잘못되고 고쳐야 할 것은 있게 마련인 것 같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해도 너무한 곳인 것 같다.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수단방법 안 가리고 모은 돈 있고 빽 있으면 한평생 죄짓고도 발뻗고 잘 수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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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녀석도 관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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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을 읽어보니 미국으로 이민올 충분한 이유가 아직도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다는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부지런히 준비해서 좋은 이민 생활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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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arently, based on MetLife research, 64% of US workers would like to be expat. And, there are many reasons behind the willingness including GenX and GenM;
https://www.businesswire.com/news/home/20190731005577/en/American-Employees-Strong-Desire-Work-Rarely-Opportunity-
자료 잘 봤습니다. 파견근무는 상당한 특혜/포상이라 생각을 해서 대부분 원하는거 아니었어요? 한국 같으면 90% 넘어갈 것 같은데요?
36%나 파견근무 하기 싫다 하는걸 보면 미국 근무 환경이 그닥 나쁘지 않은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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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에 부정부패가 없는 곳은 없다. 단,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중략…
한국은 외국으로 이민이라도 나 갈 수 있지…
북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보시라…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방법 밖에 없어.,그런면에선, 한국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보다 낫 다.
인간은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고, 경험 해 본 만큼만 사고 한 다.
많이 많이, 해외로 나아 와, 한국의 장 점과 단점을 보고 가시라..
그래도 세계 국가 전체에서 중간 이상이다.문제점은 민족성이 매우 특이하다는 데 있다..
피지배, 노예 사고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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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한국생활 적응못하거나 사채업자에게 쫓겨다니거나 전과가 있거나 가족에게 버림받거나 뭔가 이상한것들이 오겠져..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고 미국오면 다될줄아는 현실도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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