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한국인들 못믿겠다… 신뢰할수가 없다

  • #3946517
    ㅇㅇ 118.***.65.28 502

    이것들은 누가보면 자기들이 세상 만사 모든걸
    통달하는줄 알더라..

    맨날 항상 똑똑한척 하는데 사실 알고보면
    무식한 헛똑똑이들일 뿐..
    주입식교육이 만들어낸 암기괴물들 뿐이다 ..

    지식이 풍부할진 몰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나
    통찰력, 객관적 사고 등은 전무하다고 느낄때가 많다..
    이들에겐 진실이냐 거짓이냐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에게 기분좋은 소리를 해주는 그것이
    진실로 통할뿐이다 ..
    보고싶은것만 보고 듣고싶은것만 듣는거다

    • 1960년대 초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79달러의 최빈국이었다. 실업률은 30%에 달했다. 정부는 경제개발을 위해 우여곡절 끝에 서독으로부터 1억5000만 마르크(당시 3000만 달러)의 차관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에 지급보증을 해주겠다는 은행이 없었다. 독일인들의 기피 직종이던 광부와 간호사를 서독에 파견하고 이들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얻을 수 있었다.

      1963년 12월 21일 김포공항에서 파독 광부 1진이 3년 계약으로 서독으로 출발했다. 가족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123명의 젊은이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들은 500명 모집에 4만6000명이 몰리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됐다. 대부분이 광산 노동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대졸 학력자도 상당수였다.

      이듬해인 1964년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함보른 탄광을 찾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났다.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 여러분이 이 먼 타지까지 나와 고생이 많습니다.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만큼은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열심히 합시다. 나도 열심히…”라며 눈물을 쏟았고, 결국 장내는 울음바다가 됐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외로움과 설움을 견디며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해 번 돈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송금했다. 월급이 650∼950마르크(당시 원화 가치 13만∼19만 원)로 국내 직장인 평균 임금의 8배에 달하는 큰 금액이었다. 파독 광부는 1977년까지 7936명이 파견됐고, 파독 간호사도 1만1057명이 서독으로 떠났다. 1달러가 아쉬웠던 시절, 이들이 고국에 보내온 1억여 달러는 당시 총수출액의 2%에 달해 경제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 이 돈과 함께 서독에서 빌린 차관으로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등을 건설할 수 있었다.”

    • 해리스 62.***.151.37

      원래 거지가 거금이 생기면 눈에 뵈는게 없슴.

    • 덤덤이아자씨 173.***.132.107

      한국사는 한국인들 헛똑띠지 ㅋㅋ 영악하긴 한데 미국인들에 비하면 세발의 피!
      미국인들은 겉으론 약간 멍청한것 같아도 속으론 엄청 영악함 ㅋㅋ 한국인보다 더!
      그러니 미국에서 미국인들에게 짠머리 굴리면 다 보임 ㅋㅋ

    • 한인 172.***.35.110

      도대체,
      애시당초 한인들에 대하여 어떠한 기대를 한 것인가 ?

      경제성장 하면, 하루아침에 베트남, 필리핀, 이디오피아, 콜롬비아 가. 미국, 영국, 독일 선진국에 속하게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