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큰누나

  • #3545933
    칼있으마 73.***.151.16 653

    큰누난
    나보다 따악 11살 위지만
    지금도 큰누난 내게
    16살,
    꽃이자 천사자 선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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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출셀 했다는
    사회지도층인사들과
    그들을 지도하는 지도층들은
    모두가 다

    농부의 아들

    들였다.

    심져

    소설속 주인공을 뽑는 오디션에서도
    농부의 아들여야만
    서류전형을 통과할 수 있었고

    거기서 또 천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될려면
    반드시 조건이 하나 따라 붙었는데

    건,
    농부의 아들이되
    가난한 농부의 아들여야했다.

    글쟁이들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아니면
    책속에서도 성공이나 출세를 안 시켜 주었었다.

    사회진출

    을 앞둔 난
    내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진로를 선택하는데
    여러날을 심사도 하고 숙고도 한 결과

    울아버지의 아들이 되기로 결심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

    로 태어날 수 있어서였으며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야만

    쉬 성공할 수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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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에 나오자마자 난 물었다.

    엄마,
    좨네들은 뭐야?
    왜 좨네들이 날 뚫어지게 봐?

    “응, 얘가 네 큰누나고, 얘가 네 큰형이고, 얘가 네 작은 누나고, 얘가 네 작은형야.”

    아무리 형제요, 가족이요, 오누이라도 그렇지 쪽팔리게.

    엄만 날 나체로
    퍼대기 위에 뉘어 놓은 터라

    누나들을 보는 순간
    성적 수치심을 느껴

    다리를 오므리곤
    거시기 위에 손을 얹었는데
    얼마나 큰지
    왼손으론 부족해
    오른손을 불러 가려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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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에 진출해서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곳이 우리집이란 곳였고
    우리집을 점점 알아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화목한 집이단 걸 알았다.

    아버지는 엄마를 무척 사랑했고
    그래선지 술만 마시면 엄말 팼는데
    너무나 사랑했기에
    열 대 때릴 것도
    가슴이 나약하고 여리셔서
    차마 열 댈 채우지 못 하고는
    꼭 두 세 대 정돈 탕감을 해 줬다.

    절제력 또한 대단해서
    식구들이 개로 보이면
    과감하게 거기서 딱, 멈추곤
    막걸리 잔을 내려 놓았다.

    차마
    돼지까지로 볼 순 없잖냐는
    깊은 뜻이 있었던 거였다.

    또한 자식들을 너무 사랑해서
    매일매일 자식들과 놀아줬는데
    그 놀이가 바로 매놀이였다.

    그런 아버진 맬 들 때마다
    일반 매가 아닌
    사랑의 매만 들었고

    자식들에게 차마 작대기를 들 수 없었기에

    작고 조그맣고 간단한
    낫이나 쇠스랑, 호맹이, 곡괭이를 들고 우릴 쫓았고

    우린 말 그대로
    좁빠지게 토껴선 산속에 숨어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살곰살곰 겨들어가는 놀이를
    하루가 멀다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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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사람들 중
    쪽바리들을 통해 일찌기

    서구 문명

    을 받아들인 친일파들은 큰누날

    천사

    라 불렀고

    우리 것은 좋은겨람서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내얀다던
    독립군 후손이나 의병 후손들은 큰누날

    선녀

    라 불렀다.

    나는
    외국출신인 천사와
    국내출신인 선녀를 합해서

    큰누나라고만 불렀다.

    즉, 내게 큰누나란
    천사고 선년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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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누난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고 예뻤다.

    그렇지만 난 이곳에서
    큰누나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고 예뻤다곤 말하지 않겠다.

    자칫,

    팔은 안으로 굽니마니
    제식구 감싸기란 오해의 소질 없애기 위함이다.

    무튼,

    큰누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줄곧 올 수로 1등만 해선
    두각이란 걸 나타내기 시작했다.

    동네사람들과 선생님과 면장은
    큰누날 영재라고 불렀다.

    하도 뛰어남에
    소문은 금세 발도 없이 천 리를 갔고
    소문을 탐색하고 있던
    내로라 하는 전국 각처의 산업체의 스카우터들은
    일찌감치 누나를 서로 스카웃하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접근하여
    뒷구멍으로 불법거래를 자행하며
    엄청난 제의를 해 왔다.

    세계 석학들도 감히 하지 못 한 걸

    큰누난

    6학년 2학기에
    당당히 조기 졸업이란 걸 해 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다 부산의 어느 산업체의 스카웃 제의에
    부모님과 변호사의 입회하에
    큰누난 싸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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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이나 구정이 되면
    누난 내 선물을
    한보따리 싸들고 옴을 잊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핸가 누난 내게

    “칼아,
    누나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우리 칼이랑 식구들 모두 강변에 가서 살자아?”

    싫어.

    “왜?”

    아, 그냥 싫어.

    그러다 한 핸 물어봤다.

    그 강변이 어딘디?

    “음, 금모래 은모래가 마악 반짝이는
    부여에 있는 백마강변.”

    그럼 더 싫어.

    그렇게 유명하다는 서울이란 곳도 몰랐을 땐데
    그렇게 안 유명한 부열 알 리 없어

    막연히 부연

    300억 광년이나 떨어진 곳일 거라 여겨져
    끔찍했기 때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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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 봄 누난
    부여의 백마강에서
    삼천궁녀의 일원이 되고팠던 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의 매,
    못 배운 한,
    직장생활에서의 고단함과 고달픔.
    어린 나이에 멀고먼 타지에서 맞게 된 두려움과 외로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나선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
    잃어버린 꿈, 희망.

    그래서
    절망.
    그리고
    좌절.

    걸 모두 안고
    꽃으로 지고싶었는지도 모를 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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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추석을 쇠러 온 누난
    내 선물 보따릴 풀다말곤

    퍽,

    그대로 마루위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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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누나봐.

    엄만 이미 노랗게 무너져 내린 하늘을
    양손과 머리로 떠받치곤

    “얼릉 아부지 찾아와 이놈아.”

    동네는 수근거릴 틈도 없이
    금세 바삐 돌아갔고

    이장은 니약까에 누나를 태우고
    차를 잡겠다고 신작로로 달렸으며

    주막에선 아버지가
    오늘저녁에 엄마와 우릴 팰
    체력을 안배하고 있었다.

    아버지, 큰누나가 거시기해서……

    술은
    깨는 게 아니라
    확 달아나는 거란 걸

    난 아버지를 보면서 알았고

    아버진
    하얀 고무신 한 짝을 잊곤 니약까를 쫓았다.

    여기까지가 내 목격자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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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후.

    아버지와 엄마의
    대화 녹취록이 공개되었는데,

    “개노무 색휘들,
    링게루 하나 팔에 꽂아놓고 내비두다
    둬 시간이나 지나서야 큰 병원으로 가보라니.

    살면서 개소리란 개소린 다 들어봤지만
    그렇게 참신한 개소리는 첨 들어 본당게?
    쳐죽일색휘들.

    바로 큰병원으로 가라고 했으면

    살 수 있었을텐데,

    응급처치만 했어도

    살 수 있었을텐데
    살 수 있었을텐데……”

    논산 그 병원에서 한참을 머물다
    다급히 큰 병원으로 가라 했고
    대전 그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누난 죽은 후였고.

    지금같으면 논산 그 병원에 쫓아가선
    의사고 나발이고

    고발이니 마니
    돌팔이니마니
    패죽이니 마니 했겠지만

    당신

    엄마 아버지의 기준은
    대통령 다음으로 높은 냥봔이

    선생님,

    그 다음 높은 냥봔이
    의사 선생님였던 거였다.

    감히 하극상은 상상을 못 하셨던 거였다.

    난 지금도 큰누나가 뭘로, 뭔 병으로 죽었는 질 모른다.

    녹취록에
    증거가 될 만한 것이 발견되지 않아서기도 하지만

    부모님은 감히

    그들만의 언어.
    선생님들만이 사용하는 의학용어를

    머리에 담아둔다는 건 불경스런 일이라 여겨
    대전에서 집에 오는 동안
    다 털어버렸던 걸로 짐작이 갈 뿐,

    따로 부모님을 밖으로 불러내어

    큰누나가 왜 죽었대?

    물어 볼 수가 없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그 의학용얼 풀이한 걸로 짐작이 가는
    부모님의 대활 몇 번은 들은 것도 같다.

    “거시기가 아파각고.”

    무튼,

    그 때 알았다.
    죽을 땐 쌈빡하게 죽어얀단 걸.

    쌈빡하게 죽으면 몇 년 안 가지만

    ‘살 수 있었을텐데’

    를 남기고 죽으면
    산 자의 가슴에 평생, 평생 한으로 남는다는 걸.

    저승사자년하고 바람이 나
    그 년 따라 집을 나가실 때까지도

    아버진

    “살 수 있었을텐데”

    하셨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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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누나 소원대로

    강변에 가 산다고 하지 않곤?

    물으신다면.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도 쬐끔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반대했다.

    그 어린나이에도 난

    조강지처 버리는 놈은 사람도 아니라고 여겼었기에

    나와 각시되어 놀던

    봉숙이.

    조강지처인 봉숙이를 버릴 수 없어서였다.

    300억 광년이나 떨어진 곳으로 가면

    제아무리 하늘을 날고 긴다는 견우직녀도
    못 만날 거라 여겨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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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추석이 다가오면
    자동으로 큰누나가 생각나고

    그럴 때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이자
    그들을 있게 한 출세곡인

    이 노래를 가만히 불러본다.

    백마강 다알 바아~ㅁ에
    물새애가 우~우~우~우러~~~

    그 해
    추석 전날였고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
    흐느끼기에 좋았었다.~~~

    • 재능 107.***.213.109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여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발판을 삼아야 한다고 언눔이 그랬었거늘…
      칼 같은 재능을 개발하지 못하고 걍 있는갑다 하고
      이런 훠킹유에쎄이에서나 칼같은 펜을 휘두르고 있으니
      그 재주가 아깝기만 하구만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