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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 나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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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서울법대를 거쳐 대학원을 마친 형은 군입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형은 지도교수가 마련해준 해군사관학교 법학 교수직을 마다하고 해병대 장교로 자원 입대했다. 집에서는 왜 편하고 좋은 자리를 박차고 힘든 길을 가냐고 부모들이 야단을 쳤지만 고집을 꺾지 못했다. 해군, 해병대, 한미연합사 정보장교로서의 5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형은 서울대 부설 한국 방송통신대 법학과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그후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가 된 당시 지도교수를 통해 교수라면 누구나 탐을 내는 서울법대 교수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형이 거절하자 1년 뒤 이번엔 비서를 직접 집에 보내 같은 제안을 했다. 하지만 방송통신대학은 서민들을 위한 평생 대학이고 우수한 교수들이 좋은 직장을 찾아 떠나면 이 학교는 언젠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며 총장의 제의를 정중히 사양했다.
….형은 학교에서 적잖은 월급과 출간된 저서들을 통해 상당한 인세를 받고 있었지만 늘 가난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줄곧 형집에서 기거하던 나는 형이 늘 돈 여유가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도 부천으로 옮겼다. 그러다가 우연히 집에 날아든 편지들을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보육원과 고아원 등에서 보내 온 편지를 뜯어보니 형은 몇 명의 아이들에게 학비를 대주고 있었다. 함께 사는 내게도 전혀 내색조차 하지 않아 나도 모르고 있던 사실들이었다.
….그 후 형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선교활동에 더욱 매진하게 됐다. 그리고 부천에서 과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돈이 부족해 계약금과 중도금을 날릴 판이었다. 당시 나는 결혼해 분가한 만큼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곽교수가 1억2천만원을 아무 대가없이 줘서 집을 사게 됐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지금의 가치로라면 아마 10억원 정도는 되었을 큰 돈이었다.
….몇해 전 형이 LA를 들렀다가 전혀 생각지 않은 말을 내게 했다. 20여년 전 내가 박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학비를 대준 사람이 바로 곽교수였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라면 아마 1,500만원-2,000만원은 족히 될만한 적잖은 돈이었다. 나는 고맙게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바보같이 사는 사람이 형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전북 이리에 사는 사람인데 교회를 지으려 한다. 교회 부지는 내 농지를 내놓을 생각인데 건축 비용이 없으니 돈을 줄 수없겠느냐”고 한 생면부지의 사람이 형에게 부탁하자 형은 고심 끝에 은행에 가서 마이너스 통장에서 수백만원을 인출해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냥 줘서 보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대형 교회에 가서 청을 했지만 고작 받은 게 30만원이었다고 했다. 이 얘기는 형수를 통해 내가 전해들은 것이었다. 그후 내가 그 사람이 누군줄 알고 그 큰 돈을 줬냐고 묻자 형은 그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일지 몰라서 줬다고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다른 친구가 아닌 내가 검찰에 소환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형부가 검찰에 소환되면서 언니에게 말한 한마디이다.
….어제 형부의 집과 교수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언니의 작은 아들과 나의 큰 아들이 그 집에 있었는데 압수수색이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였단다. 가져간 것이라고는 언니의 통장인출 몇백만원의 영수증(큰돈이라서 버리지 않고 통장 사이에 보관했단다)과 곽교육감 활동의 스크랩 파일이었단다. 수색을 하며 책장에 쌓여있는 매일성경(몇년치가 쌓여 있었음)과 성경노트를 보곤 나중에 선교사로 나가실건가요? 하더란다.
전문은 이곳에..
http://www.sen.go.kr/web/services/bbs/bbsView.action?bbsBean.bbsCd=221&bbsBean.bbsSeq=6720그 외에…
곽교육감은 MB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시행한 종부세페지로 2009년 부터 300만원의 환급금을 받았으나 전액기부하고 있다고 하네요… 또한 교육감에 취임하자마자 청소원을 비롯한 일용직분들에게 직원식당을 개방하고 전용 휴식공간을 마련해주며 1시간 일찍 퇴근시킨다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