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독립군 때려잡기

  • #1269837
    nnn 199.***.58.128 3895

    저 밑에 ‘선조의 지혜’ posting에 “박정희가 만주국 장교로 독립군 때려잡은 일이 없는데 독립군 학살하고 다녔다고 우기는것도 모자란 소리고 일제패망후 입국할땐 독립군 자격으로 들어온거 모르나”라고 어느 일베버러지 똘마니새끼가 있릴래(50.***.157.167 너말이야 이 똥대가리야… 잘 새겨들어) 이 글을 쓴다..

    우선 맛베기로 보도자료 하나부터 보고 들어가자.

    [‘박정희, 독립군 토벌’ 주장글 게재 기자 무죄 확정]
    http://www.pressbyple.com/news/articleView.html?idxno=9459

    아래의 글은 50.***.157.167를 비롯해 아직도 친일앞잡이가 뭔지 분간도 못하는 어린 애송이 일베버러지 24.***.96.11도 함께 보고 공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아래의 글은 다음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1. 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
    2. (滿洲國)政府公報 1940.1.6
    3. 滿洲新聞 1939.3.31
    4. 滿鮮日報 1942.3.24
    5. 滿洲日日新聞 1942.3.24
    6. 每日新報 1944.4.22
    7. 滿洲國軍誌(1987)
    8. 실록 군인 박정희(2004)

    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선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고령이다. 1926년 4월 구미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3월 졸업했다. 1932년 4월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37년 3월 심상과(尋常科)를 제4기생으로 졸업했다. 1937년 4월 경상북도 문경면의 문경공립보통학교(1938년 문경서부심상소학교로 개칭) 훈도로 부임해1940년 2월까지 근무했다.

    훈도로 재직 중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지원하였으나 일차 탈락하고 재차 응모하였는데, 당시의 정황이 만주지역에서 발행되던 일본어신문인 만주신문(滿洲新聞) 1939년 3월 31일자에 「혈서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라는 제목으로 상세히 보도되었다.

    기사 전문에는 “29일 치안부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공립소학교 훈도 박정희 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를 봉입(封入)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係員)를 깊이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두렵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아무쪼록 국군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라고 하여 군관학교 지원의 동기와 좌절된 사연을 미담으로 소개했다.

    기혼자인 데다가 연령 초과로 입학 자격이 문제되었으나 다시 도전하여 결국 1939년 10월 만주 무단장시(牡丹江市)에 소재한 제6군관구 사령부에서 4년제 만주국초급장교 양성기관인 육군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 제2기생 선발 입학시험을 치르고 1940년 1월에 15등으로합격했다. 만계(滿系 : 日系 외 통합분류) 합격자 240명중 조선인은 11명이었다.

    자격 제한의 벽을 넘어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사자의 강고한 지원 의지와 함께 대구사범학교 재학 시 교련배속장교로 있다가 전임하여 신징(新京) 교외 제3독립수비대 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관동군 대좌 아리카와 게이이치(有川圭一 : 1945년 6월 오키나와에서 전사)의추천, 그리고 대구 출신으로 신경군관학교 교관부에 일시 근무하고 있던 간도특설대 창설요원인 강재호소위(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 세칭 봉천군관학교 4기)의 도움이 있었다.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 예과과정에 입교해 제3련(連) 제3구대(區隊)에 소속되어 군사교육을 받고 1942년 3월 졸업했다. 졸업식에서 일계 2명, 만계 2명과 함께 우등생으로 선정되어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가 하사하는금장 시계를 은사상(恩賜賞)으로 받았다. 예과 졸업 후 타호산(打虎山)에 있는 제6군관구 예하 제5단(第五團) 제3영(營) 제8련(連)에 파견되어 2개월간 조장(組長)으로 부대실습을 한 후 다시 관동군 보병 제30연대 일명 다카다(高田)부대에 파견되어 3개월간 실습을 마쳤다.

    1942년 10월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했다. 1944년 4월 일본육사 제57기와 함께 졸업한 뒤 견습사관으로서 소만(蘇滿)국경 지대의 관동군 23사단 72연대[치치하얼(齊齊哈爾)에 주둔한 관동군 635부대라고도 한다]에 배속돼 2개월여 근무한 후 같은 해 7월 만주국군 제6군관구 소속 보병 제8단으로 옮겨 배장(排長 :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같은 해 7월 하순경부터 8월 초순까지 제8단의 2개대대가 일본군과 합동으로 팔로군을 공격할 때 소대장으로 작전에 참가했다.

    1944년 12월 23일 일본군 소위로 예비역으로 편입됨과 동시에 만주국군 보병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보병 8단으로 부임해 단장의 작전참모 역할을 하는 을종(乙種) 부관 겸 부대의 단기(團旗)를 책임지는 기수로 근무했다. 옌지(延吉)에서 조직된 8단은 간도지구경비사령부 히노 다케오(日野武雄) 소장이 편성한 히노지대(日野支隊)를 기반으로 출발하였으며, 처음에는 주로 동북항일연군과 소련에 대한 작전을 수행했다. 1938년 7월 말부터 두만강 유역 하산호(湖) 일대에서 벌어진 국경분쟁에서 일본군이 소련군에 패퇴하는 장고봉(張鼓峰)사건이 발생한 이후, 만주국 국경경비대를 해산하고 국경경찰대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만주국군 잔류를 원하는 군인들을 기간으로 히노지대를 신설했다. 히노지대는 장비와 전투력이 우수하고 대원들의 일제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아 8단의 주력으로 재편되었다. 1943년 8단은 중국 관내의 팔로군을 공격하기 위해 러허성(熱河省) 칭룽현(靑龍縣)과 싱룽현(興隆縣) 일대로 이동해 쭌화(遵化) 인근의 팔로군 11·12단(團)에 대한 작전을 전개하는 한편 집단부락정책을 실시했다. 1944년 4, 5월경부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8단은 칭룽현 서남부의 반벽산(半璧山)을 중심으로 남북 지역에 산재한 팔로군과 교전했으며, 이때 을종 부관으로 8단 예하 각 부대에 작전 지침과 명령을 하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8단에 근무하던 조선인 출신 장교로는 배장 방원철(신경군관학교 2기)과 제1영 본부의 이주일(신경군관학교 1기, 일본육사 56기 해당)이 있었으며, 뒤이어 신현준(봉천군관학교 5기)도 간도특설대에서 8단 연장(連長 : 중대장)으로 전입해 왔다.

    .
    (일본군 중위 다카키마사오(한국명 박정희)가 독립군토벌대 만주군 군관지원하면서 쓴 충성맹세 혈서가 일본국회도서관에서 발견됨 – 滿洲新聞 1939.3.31자 7면)
    1) 혈서의 내용 –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
    2) 혈서에 동봉된 편지 내용
    –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 모향 50.***.157.167

      nnn 199.***.58.128 <—–니 에비가 중국인, 에미가 일본인이라면서?
      한국이 망하길 바라는 버러지 같은 새끼야~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너같은 새끼는 대체 정체가 뭐니?
      흑인멕시칸한테 줘 터지고 백인들한테 무시당하며 당한 설움을 한국인들 무시하고 한국 까면서 푸는 개새끼겠지 뭐~

      잡탕박쥐새끼 ㅎㅎㅎ

      글은 너무 조잡해 읽지 않았다~

      이승만,박정희,김대중,노무현,이명박 같이 훌륭한 한국의 어르신들을 기리는 일만 해도 모자란다.
      너딴 중국일본북괴의 세작 새끼 꼴값떨며 주절거리는거 들어줄시간 없따~

      • nnn 199.***.58.128

        글의 내용을 가지고 반박해줄래? 못하겠지 버러지새끼야??

        • 모향 50.***.157.167

          습작이랑 둘이 같이 자지 빨아주며 잘논다~

      • 습작 67.***.5.251

        더하자면, 간도특설대는 패망전 동북항일연군(조선인, 중국인 연합) 말살이라는 특별한 임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악랄해서, 친일인명사전엔 일본군소속 친일자는 소좌이상만 등재되었지만, 간도특설대는 그 목적과 악랄함이 더해 사병까지 모두 등재되어있습니다. 얼마전 뉴스에 나오던 백선엽 초대 육군참모총장이 이중 한명인데요. 해방후 만주국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 잡던 이들이 한국으로 고스란히 넘어와 이승만과 결탁합니다. 그래서 이승만정부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박정희는 당연히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4000여명에 달하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있습니다. 2009년 박정희친족들이 서울지법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서 제명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합니다. 하지만, 판사는 친일인명사전이 판단근거로 시간상 참고문헌이 명백히 기재되어있기때문에 잘 못이 없다고 기각합니다.
        그런데, 후에 대통령직속으로 친일진상규명위(2004년 발족)은 2009년 임무마감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민간)의 친일인명사전 4000명에서 700명을 추려내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발표하면서 박정희를 제외합니다. 아무래도 압박이 많았겠죠. 그렇게 되면 이승만도 넣어야하고 박정희도 넣어야하고 대한민국직속 특위인데 대한민국대통령 2명을 넣는다는 것이 대내외적으로 큰 무리가 있다고 당신 이명박정부는 판단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쨋든 그런 이유로 해서, 박정희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아닌 것은 아니죠. 이미 법원도 반민특위의 토대가 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자선의 박정희 등재에 이유없다고 판결했기때문에요.
        박정희는 친일을 한 것은 팩트이고 이것은 대한민국사법부도 인정한 겁니다. 더 이상 아니다라고 하시는 분들은 대한민국 법을 부정하시는 것밖에 안됩니다.

    • SWPD 208.***.108.2

      I’m impressed. Thanks for the info.

    • jsl 173.***.139.31

      원글 병신 새끼 오늘도 출근했네.

      • 여기는 207.***.184.138

        쪽바리새끼 피폭전복 먹고 피똥싸라 ㅋ

    • 173.***.139.31

      선거철이 오긴 왔구나.

      근데 여기는 미국에 있는 웹사이트다.

      번지 잘못찾아서 알바하고 있다. 하하하

    • 홍어회 173.***.145.26

      원글 병신 인증 지대루 한다.

      니가 왜 왕따 당하는지 알겠지.

    • smith 173.***.137.111

      원글 병신 찌질이 또라이 인증함.

    • 뭐라궁? 69.***.230.184

      노무현 정부의 박정희 친일 여부 결론

      ○ 2005년 노무현 정부시절 대통령 직속 기구로 발족했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4년 간의 조사를 마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 2009.11.6.<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친일진상규명위의 핵심관계자는 해당 매체와의 통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일파로 분류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많은 논의를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위를 입증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 친일 조작
      ○ ′민족문제연구소′가 1939년자 <만주신문> 기사를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만주군관학교 합격 발표일자(1939.2.24)와 혈서 관련 기사(3.31)의 순서가 모순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실상 사장 되었다.

      ○ 즉, 1939.3.29일에 합격을 위해 혈서를 썼다고 보도했으나 박정희가 합격한 군관학교는 1939.2.24일에 이미 합격자 발표를 하였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디지털 복사본만을 공개하며 박정희 혈서설에 대한 갖가지 조작의혹을 받고 있다. 박정희가 소속되어있던 부서명, 년도차이, 만주일보 폐간일 등을 고려하면 ′민족문제연구소′와 ′조선족 류연산′씨의 혈서설 주장에 대한 증거는 없다.

      ○ 만주일보 기사를 소개하면서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졸업한 ′다까끼 마사오′ 박정희가 졸업생 대표로 일왕찬양 했다′고 했지만, 실제 기사 내용의 생도대표는 ′아카미 쇼히코′다. 오히려 ′박정희 만주군 소좌′가 독립군을 도왔다는 임시정부 요인의 증언 기록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조선족 류연산
      ○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의뢰한 조선족 류연산씨는 독립군을 토벌하였다며 박정희를 친일파로 주장하여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해, 검찰이 이메일로 증거를 요청하였을 때 그는,

      ○ ″어느 중국책에서 관련 내용을 봤으나 책을 구할 수 없고 작가도 죽어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 박정희가 1940년까지 문경소학교에서 선생으로 교직생활을 했으며 그에 대한 증거들은 많다. 그러나 좌파들이 주장하는 박정희의 1939년 ′대사하 전투′와 간도조선인 특설부대 입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임시정부 마지막 요인의 증언
      ○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임시정부 마지막 요인 백강 조경환 선생은 의병정신선양회 활동을 하였다. 백강은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힌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유언할 만큼 강직한 인물이다. 그 백강 선생이 말한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다.

      ○ ″5.16 쿠데타가 일어나고 얼마 안돼서 한 젊은이가 면목동 집으로 찾아왔는데, 큰절을 하였다. 옆에 동행한 사람이 ′대통령 이십니다′ 하길래 보니 박정희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제가 만주에 있던 다카키 마사오입니다′. 일제군내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빼돌렸던 다카키의 이름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놀랍고도 반가왔다″.

      ○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군을 보충해야 할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박정희(다카키 마사오) 소좌의 도움은 컸다고 한다.

      ○ 박정희는 1946년 광복군 제 3지대 제 2중대장 자격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였다.

    • 사일구 143.***.195.99

      박정희가 관동군 635부대에 배속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부대 관할 구역이 소련의 국경지역인것을 봐서 독립군를 때려잡았다는 것을 뒷받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그 뒤의 행적도 팔로군과 마찰되어 필자의 주장 근거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군이 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일본을 위해 일했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독립군을 탄압할 수 있을만한 인물이란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 Dae-Jung 150.***.157.74

      Thanks for the good info, Kim dae-jung’s cock sucker.

    • 세상에 41.***.88.244

      여기에 반대를 누른 사람들은 과연 반역행위 친일파 후손 답도다.
      아~ 아~~
      일본 넘들이 했던 그대로
      반대 누른 그 손목을 일본도로 쳐 베어 버려야 할 넘들..

    • 오일육 71.***.8.85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런 사람이 빨갱이가 되었어도…
      장군 승진하고, 516 쿠데타 까지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딸의 대통령 당선 득표율이 51.6%
      그리고 이번에 총리 후보에 오른 인물이 5개월동안에 16억 고수익을 올렸다는 구만…
      참, 우연 치고는….혹시 오매불망 기대하는 숫자?
      박근혜 정부, 출범 15개월만에 ’17부3처17청’→’17부5처16청’ 바뀐다. (5처 16청이라…)

      허허 이런 경천동지할 일도
      http://www.ddanzi.com/index.php?mid=ddanziNews&search_target=tag&search_keyword=%EB%B0%95%EC%A0%95%ED%9D%AC&document_srl=2078270
      박정희가 일본 육사 졸업후 만주 치치하얼에 있는 관동군 635부대 견습사관을 했다고 하는데…
      치치하얼에는 731부대 산하 516 독가스 부대가 있었다….이런 우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