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과 늙는다는것

  • #103430
    89578098-089-790- 68.***.178.67 3424

    사람의 신체라는것도 젋을때는 유연한 근육이나 몸놀림을 가지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면 신체각부분들이 경직됩니다. 노화되는 이러한 인간의 신체와 더불어 그 신체에 깃들어 있는 정신도 굳어지거나 무감각해진다는 느낌을 요즈음 자주 확인하게 됩니다.

    직장퇴근후에, 저녁먹고나서 아이들 공부조금 도와주고 나면, 잠자리들기전에 별로 할일이 없어서, 책을 읽거나 TV를 시청하는데, 최근 책속의 작은 글자읽기가 조금 힘이들정도로 눈에 노안이 와서, 요새는 주로 TV를 시청합니다. 인터넷과 연결된 TV덕분에 몇몇 한국드라마를 보고 있지요.

    흔히 대중통속 줄거리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드라마에는 악인들과 선인들의 대결양상이 펼쳐지곤합니다. 그런데, 악인들의 악행들로 부터 제가 젋었을때 시청하면서  느껴졌던 감정들이 사라져 버린듯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 악인들이 응징을 당하거나 처벌을 받았을때도, 카타르시스같은 감정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악인들이 진실을 은폐하는데 성공하고, 오히려 성공적인 삶을 이어가게되는 드라마 종영을 지겨보더라도 별로 답답한 마음마저 들지 않곤 합니다.

    그냥, 그렇게 됐구나 하는 시청감상들 뿐 입니다. 오히려, 저 드라마속 악인 캐릭터를 이런구도로 배치하였다면, 좀더 실감나는 악인성격이 드라마속에서 구현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생길 정도 입니다.

    악인들이나 선인들이나 그저 한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말입니다. 밥먹고 똥싸는 그저그런 한 인간 말입니다.

    신체가 노화되면 여러가지 굳은살이 박히고, 경직되어 미세한 고통이나, 외부충격에도 무감각해지듯이, 우리들의 정신상태도, 다른사람들의 황당한 악행들에 무감각 해지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TV드라마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겪고 직장생활이나, 피부로 와닿는 일부 주변분들의 악의적인 행동이 나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때도, 즉각적인 반응이나 보복같은거 보다는, 그들의 악행을 어떻게 이용하면, 나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하는 생각 뿐입니다. 그들의 악행이 고쳐지거나 바로잡혀지는것에 대하여 관심이 없을 뿐더러, 제가 그들의 악행을 이용하는 저의 행동또한 선과 악이라는 잣대는 전혀 고려치 않은채, 얼마만한 긍정적 효과가 나에게 되돌아 올까 하는 생각들 말입니다.

    결국은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나 그것이 악행이라고 판단하는 저 조차도, 곧바로 남들에게 악인으로 보일 수 있는 반응적 행동들을 하게 되는 셈 입니다.

    물론 사이코패스들 처럼, 수많은 타인들의 고통을 수반하는 악행들의 강도는 아닐지라도, 저와같은 무감각해지는 영혼을 세월속에 형성해 나가는 사람들이 아주 사소한 악행을 부담없이 저지르게 되고, 그것이 수백만 수천만인들의 유사한 행동들로 전사회적으로 축적이 될때, 그 사회는 절망의 사회로 변질되는게 아닌가 하는 논리적 유추까지 해보게 됩니다.

    한국사회나 미국사회나, 상류지배층들의 파렴치한 행위들과 그것으로 인한 온갖 사회부조리들을 매일매일 듣고, 혀를 끌끌 차지만, 그러한 그 지배층들의 파렴치성이 과거완 달리 심드렁한 뉴스거리로 별로 관심을 끌게되지 못하는 무감각의 영혼들이 전 사회 구석구석으로 완연하게 펴저나간 결과가, 바로 지난주 토요일 아리조나 투손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학살사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같은 사람들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다가 죽는게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서 기계같은 차가운 존재로 살아가다가 죽어가는 과정들이 좀 씁쓸해지는 생각 입니다.

    • ㅇㅅ 129.***.190.230

      우울증 별거 아닙니다.
      이런 식의 씁쓸함과 희망없음이 지속되면 어두움이 마음을 점점 덮어갑니다. 결국 삶에서 소망없음을 알게되고 내 삶이 의미없게 느껴질뿐 아니라 자식들의 삶도 의미없게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두려움이 엄습해오게 되죠. 두려움, 죄, 어두움, 죽음…. 사단이 끊임없이 속이며 속삭여온 “너자신을 믿어라 너밖에 믿을게 없다” 라는 말을 붙잡고 왔다가, 이제 결국 인간도 못믿을 존재고 나도 못믿을 존재임을 깨닫게 될때 깊은 어두움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만 있는게 아닙니다. 항상 우리에게 어둠속에 숨지말고 빛가운데로 나오기를 원하는 그 빛이 곁에 있읍니다. 우리가 그 빛가운데로 나가기를 주저하고 두려워할 뿐이지요.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어둠속에 숨었던 것처럼. 우리안에 있는 죄성때문에…인간은 누구나 그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죄때문에 사망이 우리가운데 임하게 되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어린양 희생양으로 보내셨다고 하구요.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사망을 피할길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스스로 아무도 의인이 되는 인간이 없다고 하거든요. 이미 아시겠지만 부모님도 가족도 자식도 원글님에게 희망을 주지 못할겁니다. 아플때 어떤 유명한 의사도 원글님을 죽음에서 구하지 못하구요. 오로지 한길만 있을뿐입니다.

      • 89578098-0… 68.***.178.67

        종교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는 님이 부럽습니다.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종교적 시각이 아닌 인간적인 시각에서, 고뇌 해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하나님, 예수, 이런거 말고,
        매일 밥먹어야 하고, 똥싸야 하고, 섹스해야 하는 인간적인 시각 말입니다.

        신앙이란거를 본인의 내적영혼 세계에 투사해야지, 남의 정신적 문제까지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것은 정신적 폭력의 첫걸음 되기가 쉬워집니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어디에서 만들어진것인지, 그 이전 어떤 종교에서 그 교리와 신화를 차용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화되어서 오늘에 까지도 님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는 저로서는, 그닥 별로 감흥이 오지 않네요.

        차라리 수메르인들의 신화를 베께오다시피 하여, 일구어낸 변방의 유태인들의 신화에 불과했던 하나님-예수그리스도가 왜 지구 동쪽끝 일부 한국사람들 머리속까지 파고 들었는지에 대한 지리인문학적인 관심은 여전히 많지만, 하나님 말씀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삶의 여정이 거의 유사했던 수메르문명 메인종교의 중심적 인물이야기를 알고 있는 저같은 비관론자에게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수메르문명 시대를 살다가 사람들이나, 예수 그리스도시기를 살다가 사람들이나,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나 밥먹고, 똥싸고, 쎅스하는 공통성에 기반한 깊은 고민과 통찰력이 현재를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욱 값진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 ㅇㅅ 76.***.119.92

          메조키스트신가요? ㅎㅎ 농담이구요.
          고통이 값진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연단의 수단이 될수 있음에 값진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연단일까요? 돈일까요? 성공일까요? 아마 그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시게 되실지도 모르지요.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사망을 피할길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역사나 지리인문학이나 과학이나…그저 배설물에 지나지 않다고 여기실때도 있지 않을까요. 밥먹고 똥싸고 섹스하는게 값질게 뭐있습니까…그냥 진화론에 따라서 발생하고 사그러지는 싸이클속에 들어있는 아메바와 다를 것 없는 개체일 뿐인걸. 그걸 값지다고 자기최면 하며 의미없는 물질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끊임없는 싸움일 뿐인걸. 하나님을 모르면요. 아메바라면 생각에서 오는 번뇌라도 없지요. 사실 이런 생각조차도 않는 많은 인생들이지만.

          처음에 부럽다는 말은 저도 어느정도 이해합니다. 영혼을 깨닫는것이 값없이 얻어지는것도 아닙니다. 신앙을 개인의 내적투사라하시는데, 예수의 믿음은 영혼구원이 궁극의 목적입니다. 어떤 경우엔 하나님이 절대로 값싸게 그 영혼구원을 주시지 않습니다. 아들의 죽음과 맞바꾸신 그 값비싼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실제로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완악한 우리를 구원하는 길이 그방법뿐이심을 아시기 때문이죠.

    • 구원 136.***.250.100

      그래서 ㅇㅅ님은 영혼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아니면 죽음 후에 혹은 심판의 날에 구원의 티켓을 받을 것이라 확신 하시는 건가요?

      어느 목사님이 그러시던데요 심판의 날에 자기는 하늘로 올라가니 바지 가랑이 붙잡을 생각하지 말라고…ㅋㅋ

    • sfo 142.***.3.15

      한 사람의 넋두리를 들어줌에 있어서 종교적 견해 없이 있는 그대로를 들어줄 수는 없을까요. 어떻게해서든 종교논쟁으로 이끌어내고야 마는 이기적인 종교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후세계를 믿기 시작하면 현재의 삶에 소홀해질 수 있죠. 중간고사 망쳐도 기말고사 잘 보면 된다는 식의 자세랄까요. 지금 매 순간을 꽉차게 살 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겠죠. 밥 먹을 때 밥 먹는 것에 집중하고, 이 닦을 땐 이 닦는 일에 집중하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땐 다른 일 생각하지 않고 그 여가를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집중하는 삶이야 말로 알찬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요.

    • ㅇㅅ 75.***.83.218

      위에 “구원”님,
      아이러니컬할지 모르지만, 저는 그다지 (제가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을지 안받을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뭐 이미 체험으로 구원받은건 있습니다만.) 아마 구원에 대한 의심 자체가 없어서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의 질문해오는 사람보면, 좀 식상합니다. “이사람 이단이야 뭐야” 하는 생각에…. 만약 목사님들중 이런식의 질문을 집요하게 해오시는분 있으시면, 좀 이상하게 여겨질거 같습니다. 성경적으로는 “구원받으셨읍니까”라는 질문보다는 “구원의 확신은 있으십니까”란 질문이 더 정확한 질문같습니다.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너희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니”란 성경구절에 비추어봐서. 그런데 정말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대답은 당연히 “예”가 되겠네요.)

      예수님을 믿으니, 그분 말씀도 그냥 약속으로 믿는다고 할까요;그냥 이세상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항상 내곁에 계시며 함께 하실거라는 약속을 믿고, 또 죽음을 너머 천국까지 그렇게 저를 인도하실거라 믿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거”라는 식의 믿음은 제 믿음이 아닙니다. 처음에 영접/침례할때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지만, 우리의 죄성으로 인하여 죽을때까지 계속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입니다. 제게는 그냥 아버지되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아이덴티티를 잃지않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게 중요한거같습니다. 탕자의 비유나 베드로의 고백이 그래서 내게는 언제나 큰 위로가 됩니다.)

      사후세계를 믿게되면 현재삶에 소홀해지게 된다는 말씀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세상에는 현재삶자체가 커다란 고통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sfo님은 그런 경험이 아직 없으신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주 많은사람들이 여러가지 문제로 고통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사람들 중 예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예수가, 천국의 믿음이 현재삶을 지탱시켜주는 힘의 원천이요 위로가 됩니다. 정말 깊은 절망을 경험해본 사람에게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어떤 인간도 자신도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하거든요.

      사실 사는데 정말 중요한게 무언지 확실히 알게 하시니 예수님 믿는게 좋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요런거 중요하지 않으면, 망쳐도 미련가질 필요없고 걱정염려할 필요없다고 하시니 좋습니다. 쓸데없는거에 미련가지거나 세상에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니 좋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현재 삶에 소홀하는 거처럼 보여질지 모르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가 걸린 현재삶이라면 목숨까지도 걸수 있는 믿음도 허락하시니, 예수님 믿는게 좋습니다.

    • roundone 69.***.59.72

      “오히려, 저 드라마속 악인 캐릭터를 이런구도로 배치하였다면, 좀더 실감나는 악인성격이 드라마속에서 구현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생길 정도 입니다.”

      –> 바로 님께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단지 삶의 패턴이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의 삶에 조그맣게라도 어떤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역시 그렇게 하려고 발버둥 치고있지요 (말같이 잘안되지만).

      외식, 여행, 운동, 캠핑, 취미, 사상, 종교, 대화 등등 너무 많지요. 그리고 적당히 고민하시는 것 잊지마시고요. 최소한 작은 재미를 발견하실 겁니다. 가까이 계시면 쇠주한잔 기우릴텐데… (참고로 전 주량은 잔인하게 적고, 안주량는 무식하게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