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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칼빈으로 알고 있다. 그는 장로제도를 세우면서 대의정치 행정을 도모하였고. 그 행정제도는 교회 교구제도를 일반 행정기구 “캔톤”으로 발전시켰다. 개혁교회는 영국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장로교회를 제도화 시켰고 훗날 영국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내기도 하였다. 본질적으로 보면 장로제도는 매우 민주적이고 교회 질서면에서도 교회의 리더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한국은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서 교회가 부흥되었고 장로교회가 한국 교회를 대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으면서 개교회의 장로들의 역할을 바로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하면 장로교회를 연상시킬 정도가 되었고 자립, 자존을 원칙으로 네비우스 정책 선교방법을 앞세워 교회마다 장로들이 바로 자신들의 직분에 충실했던 것을 보게 된다.옛부터 이런 좋은 전통을 가진 장로제도가 오늘날에 와서는 목사와 장로사이 권위와 대립의 갈등으로 빚어지고 있고 목회에 상당한 걸림돌이라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특히 목사 자신이 세운 장로에게 배반을 당하는 것은 억울하고 슬프다. 물론 모범적으로 장로들이 오직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묵묵히 봉사하며 목회자를 돕는 교회들도 많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고 갈등을 빚고 있다. 목회자들이 장로때문에 목회를 못해먹겠다고 한다. 장로가 신앙적인 존경의 대상이라기 보다 빨리 교회에서 나가 주었으면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들이 목사보다 먼저 왔고 경우에 따라 교회설립에 일익을 담당한 터줏대감이다 보니 목사가 나가기 전에는 어찌할수 없고 또한 부양해야하는 사모와 아이들이 아직도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 그 결정도 쉽지만은 않다.일반적으로 목사와 장로관계를 다루는 세미나 강사들이 쉽게 말하는 내용을 보면 교회가 평안하려면 먼저 당회가 교인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고 목사와 장로간의 존중이 필요하다고 한다. 당연히 틀리지 않고 백번 맞는 말이다. 누가 그것을 모르겠는가마는 목회현장은 결코 그런 배부른 소리에 만족하지 않는다. 목회를 실질적으로 바닥부터 하면서 고생해본 경험없는 사람들의 꽹가리이다. 오래전 본인이 누구 소개로 분쟁으로 서로 얼키고 설킨 교회를 겁도 없이 청빙받아 갔었다. 교인이라 100명 미만인데 장로라는 분이 앞자리 앉아 설교를 하노라면 눈을 딱감고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행태였고 심방을 가면 마치 회사에서 대리가 사장에게 깍듯이 하듯 교만하기 그지 없었다. 그 분은 서울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와서 나이들어 햄버거 가게를 하니까 자존심이 이만 저만 꾸겨진게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1년만에 그 교회를 그만두고 개척했던 경험이 있다.목회 고생을 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모른다. 절대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목회현장에서 100% 맞는게 없다는게 맞을 것이다. 마치 중병으로 의사들에게 가면 의사들이 교과서처럼 하는 말이 있다. 첫째는 술을 끊어라, 둘째는 담배를 피지 마라, 셋째는 하루에 유산소 운동은 30분이상 하라, 넷째는 충분한 취침을 하라 등등… 우리가 아는 뻔한 이야기를 한다. 어떤 목사는 청빙받아 장로들에게 잘 보이려고 눈에 뛰게 “우리 장로님, 우리 장로님 “ 하면서 그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칭찬이 자자하다. 이것은 존경이 아니라 아부이며 어쩐지 궁색맞다. 물론 상호간의 인격존중이 요구돠고 교인들은 당회를 항상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교회상을 꿈꾸어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령 500명의 평신도가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할찌라도 장로 한 두 명이 불편하게 만들고 재를 뿌리면 그 목회는 어려워지고 이삿짐을 쌓야한다. 장로와의 관계가 항상 좋을수 없다. 계약관계에서는 공사를 분명히 하고 계약서에 싸인까지 받지만 목사와 장로관계는 그럴수도 없다.좋을 땐 너무 흉허물 없이 가깝다가 삽시간에 환경이 바뀌면 극과 극으로 갈라서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고로 가까운 사람 따로 없고 사이가 먼 사람도 구분할 수 없다. 가깝다 싶은 사람이 정반대가 될 수 있고 전연 멀다고 생각한 사람이 정말 은인처럼 도움을 줄때가 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권사님이지만 몇년전 교회가 치룰 중도금 얼마가 모자라 한참 어려움을 겪고 있을때였다. 텍사스에서 옷가게하던 아들내외가 LA에 물건을 하려 왔다가 권사님이 전한 이 소식을 접하고 그들은 물건값 전부를 교회에 헌금하셔서 교회가 그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었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고마웠다.어느 목회자는 자신과 학교동창이고 어느 목사는 고향 친구이지만 원수처럼 되어 헤어진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오죽하면 어떤 교단에서는 장로 휴무제(3-4년)을 두자고 하며 실시하고 있지 않는가? 그 제도는 장로의 교회독점화를 막자는 취지인데 거기에 반기를 들고 나선 장로들은 목사들도 휴무제나 시무투표를 하자고 나선다. 할말이 없다. 요즘엔 장로들이 총회장까지 하려들지 않는가 말이다. 이처럼 목회는 갈수록 어려워지다고 보니 젊은 목사들이 쓰러져 하늘의 부름을 받는 경우도 많다. 목회자의 탈진이라고 해야 옳은 말인가 싶다. 그렇다면 우리 목회는 매우 절망적인가? 그렇지 않다. 언제 주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대제사장과 장로들들 때문에 사역을 그만두고 십자가의 구속사 완성을 포기하셨는가?근원적으로 생각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지 사람의 종은 아니다. 즉 하나님으로 부터 부름받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목사나 장로와의 갈등해소를 위해 의미없는 세미나보다 이 갈등해소를 위해 진정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제도적인 강압이나 주장보다 과연 목회와 교회방향이 진정 복음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관심이 있다면 장로와의 갈등이나 지엽적인 문제는 당연히 희생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목사자신이 복음에 생명을 걸어야하고 당연히 희생되어야 한다. 그리고 복음에 정당하지 못하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대들고 시험주는 자들은 조용히 주님이 처리하실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저는 복음을 반대하는 세력은 사탄의 흑암세력이라 믿는다.여름 휴가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