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해짐을 느낍니다.

  • #103462
    ‘lpop]pl;/j.hjkl; 68.***.178.67 3576

    어제 어느 국내 인문학자의 강연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왜 수십년전보다 분명히 물질적으로 잘살고 있는 우리는 그때보다 더 행복하지 않은가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그가 지적한 내용은 “잉여”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삶에 필요없는 잉여부분이 넘쳐나서 그렇다고 하네요.

    한예로,

    우리는 자동차(또는 자가용)을 타고 모든 이동거리를 움직입니다. 과거엔 수십리 길도 두다리로 움직여 다녔는데, 지금은 거의 이 다리를 사용치 않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우리들의 두다리는 거의 우리신체의 잉여부분으로 전락 해버렸다고 합니다.

    잉여가 생기면, 그것은 축적되어집니다. 마치 쓰레기 매립장 높이가 세월이 흐를 스록 산처럼 높아지는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 신체의 반이상을 차지하는 두다리가 잉여로써 존재하고, 그 다리에는 매일 우리가 먹어대는 음식의 열량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여, 결국 우리몸의 피와 기운이 원할하게 순환되지 않는다는 논리적 귀결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우리몸들은 망가지기 시작하고, 몸이 망가지니, 신체와 동일체나 다름없는 정신도 망가지게 되어 반듯한 생각이나 건전한 생각보다는 망상 (필요없는 욕망 또는 잉여물질이나 가치에 대한 집착)이나 우울증에 걸려들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한 예로 든 우리들의 잉여적 두다리와, 우리들의 신체 건강상실, 나아가서 정신적 황폐화라는 상호 연결되어진 시스템의 붕괴그림은, 우연치 않게도,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잉여생산이나 허위적인 가상의 버블이익을 끊임없이 이 사회시스템에 쏟아내거나 게워 내야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부정적 양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사회가 필요한 만큼만의 생산물이나 욕망을 욕구하는게 아니라, 별 필요도 없는 욕망을 사회구성원 사람들에게 24시간 365일 광고나 프로파겐다로 불러 일으켜, 무한대의 잉여가치들을 소비하게 합니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결핍은 필요치도 않은, 그래서 허상의 욕망이 되어버리는 것들만 남게 되기에, 우리는 수십년전의 가난했던 시절(실제로 필요한것들이 부족했던 그시절)보다 훨씬 풍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하지 못합니다.

    마치, 배고픈 고통보다 배가 터질듯이 억지로 먹어댄후에 더 고통 스러운거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인문학자는 권유를 하더군요.

    집의 크기도 줄이고, 자가용도 팔아버리고, 옷가지도 줄이고, 등등….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 이 물건이 정말 필요한지 곰곰히 생각해보고 구매하고 소비하는 행위를 권유하더이다.

    그리고 열심히 움직이라고 하더이다. 바쁘게 걸어다니라고 하더이다. 그리고, 피곤에 지쳐서 머리가 땅에 닿으면 바로 잠이 들 수 있도록, 하루에 필요한 기본 에너지(열량)을 잠자리 들기전까지 모두 써버리고, 심지어 더 써버려도 좋다고 하더이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신체는 잉여적 열량이 매일매일 모두 소진되고, 그리하여 우리들의 정신도 맑아지면, 내일아침 텅비워진 우리들의 신체는 더욱더 활력있게 새로운 에너지원(음식들)을 받아들이고 하는 아주 건전한 순환시스템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전소모 전략은, 자본주의 세계가 생산되어진 모든 잉여가치나 버블양상되어진 허상의 빚을 청산하면서 그에 따른 경제공황을 벗어나고자 할때, 적지않이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축적되어진 모든 자본주의 체제의 잉여적 쓰레기들을 단시간에 소모해버리던 소름끼치던 기억도 갑자기 떠오릅니다.  전쟁이 참혹하다면, 가난한 이들에게 무상복지 제공을 통하여 그 독성강한 축적된 잉여들을 소모해야 하는데, 허상의 욕망에 강박증적 정신장얘를 가진 대다수 자본주의 부자들은 전쟁이라는 방법을 이용하면 하지, 결코 복지시스템을 통한 방법은 택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군요. (오세훈과 이명박, 그리고 땅을 사랑한다는 대한민국 강남부자님들이 떠오릅니다. 물론 미국 월가의 탐욕스런 금융인들도 생각나지요)

    저는 이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하루 먹는양 보다 더 많은 열량 소비를 하기로 말입니다.
    몸과 마음이 행복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지요.

    마음을 결정하고나니, 매일매일 저를 억누르고 있던 직장으로부터 해고 스트레스도 갑자기 누그러 짐을 느낍니다. 내가 왜 직장에서 해고되는 상황을 두려워 해야 하는지, 위와같은 생각의 고리와 연결시켜 재고해 보니, 두려운 이유는 모두 허상의 욕망, 잉여적 축적에 대한 가짜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론 때문 입니다.

    쓸데없이 큰 집 모게지를 못낼까바,
    쓸데없이 큰 자동차 두대를 유지하지 못할까바
    집에서 가볍게 먹으면 될 식사를 쓸데없이 비싼돈 주고 하는 외식을 더이상 하지 못할까바
    허상의 유명세 높은 명문사립대학 가게 될지도 모르는 아이들 교육비 지원 못해 줄까바
    늙어서 필요치도 않은 카리비언비치 여행을 일년에 한두번 정도도 하지 못할가바…
    ……
    ……

    정말 따져보니, 그다지 절대적으로 우리들의 삶에 필요한 욕구는 별로 없다는 생각 입니다.

    더구나, 적당한 가난을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면, 머리보다는 몸도 많이 움직여야만 먹고 살테니까 건강도 좋아질테고, 그래서 의사도 필요치 않을테고, 마음도 몸이 바쁘니 쓸데없는 우울증 걸릴 일도 줄어들테니…

    회사에서 짤려나가는게 오히려 나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차피 더 나이 먹을수록,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실력을 유지하더라도, 회사와 같은 잉여가치만을 추구하는 집단에서 필연적으로 쫓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마음이 편해짐을 느낍니다.

    오늘을 즐겨야 겠습니다.

    Right Now !!

     

     

     

    • 그러니 99.***.94.77

      루쏘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야하는 겁니다. 농촌으로요.
      루쏘가 무슨 똑똑한 철학자라서 그런말했다기보단, 자신의 심신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건전한 육체노동의 중요성을 배운철학이라는 생각입니다.

      행이없으면 위의 글도 그 인문학자의 말도 다 잉여지식이 되고 말죠.

      그나저나 최근의 밀양시의 한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한 신문기사가 마음을 우울하게 합니다. 대한민국의 텔레비전이나 대중문화들이 순박한 농촌마을마저 물들인것일까 아니면 원래 인간의 추잡함이 도시농촌 상관없이 감추어져 있던 것일까

      • 호;ㅇㅁ노하ㅓㅗ 72.***.204.9

        루쏘시대에는 자동차도 없었고, 자본주의도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못한 시절이었을텐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기본인 계몽주의차원에서 이성과 합리성이 루쏘같은 사람들에 의하여 겨우 거론되는 정도아니었나요?

        원글은 이미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증상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루쏘를 가져다 붙이려는 것이야말로 말그대로 쓸모없는 잉여지식이 아닐런지…

        대표적 계몽주의자였던 루쏘의 사상이 현 자본주의 양성에 기초적 역할을 했을테고, 그 자본주의가 더이상 제대로 작동치 못한다는 지적에다가 다시 루쏘를 운운하는 것이 좀 그러네요. 그리고, 갑자기 밀양이야기는 또 무엇이고…

        쩝…

    • sd.seoul 66.***.109.149

      상당히 호감이 가는 말씀이시네요.
      원강연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 시대정신 71.***.211.247

      시대정신 1,2부에 이어 자본주의 본질을 파악한 완결판 3에 대략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어젯밤 까지만 해도 76만명이 봤는데 벌써 95만명이 봤군요.

      • lpop]pl;/… 68.***.178.67

        우리가 매일매일 겪으며 살아가는 일상은 한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의 작동메커니즘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이제는 별로 중요치 않게 여겨지고 있지요.

        심지어 타고난 혜안을 가졌거나 아니면 비싼 고등교육 수혜를 행운스럽게 받은 사람들 조차도, 모든 일상사의 표면밑에서 심각하게 적용되어지는 본질을 나름대로 꿰뚫어 볼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일상사의 표면작용들에 매몰되어 살아가기에(생존해내기에) 급급합니다.

        추천하신 웹싸이트 같은것을 사람들이 보고서, 자신의 매일 일상사가 어떤식으로 콘트롤 되고 있으며, 자신은 어떤식으로 삶을 끌고 나가야 할지 많은 분들이 생각을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 observer 76.***.114.72

      불교 가르침 수행의 정수입니다.

      Be awaken right here and now, watching the fantasies that your mind generates, do not attach to them, and realize your “self”.

      지켜봄이 깊어지면서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망상을 순간 순간 캐치할수 있게 되면, 정치 종교등의 외부 프로파간다의 허상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력이 배양되면서, 본인이 애착을 가지는 집단과 그 반대 집단을 선악 구조로 인식하는 망상 역시 직관적으로 캐치할 수 있게됩니다. (e.g. 기독교, 보수, 진보)

    • sd.seoul 66.***.109.149

      “…지켜봄이 깊어지면서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망상을 순간 순간 캐치할수 있게 되면,
      정치 종교등의 외부 프로파간다의 허상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력이 배양되면서,
      본인이 애착을 가지는 집단과 그 반대 집단을 선악 구조로 인식하는 망상 역시
      직관적으로 캐치할 수 있게됩니다. (observer)…”

      멋진 말씀입니다.

      다만 이젠 불경의 말씀도 /또한/ 다른 반대 집단을 깍아내리는 용도로
      인용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 무욕 141.***.227.133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통과 근심을 안고 사는 이유중의 대부분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의 상황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나 하는 불안에서 연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오염과 수많은 인재를 불러 일으키고 있겠지요.

      확실히 예전의 선조들보다 우리들은 훨씬 풍족하고 넉넉하게 사는건 사실입니다만 정신적으로는 예전의 빈곤하게 살때보다도 더 물질을 추구하고 현재 가진것이 적다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살고 있지 않아 원글을 읽으면서 반성하게 되는군요.

      그렇다고 쉽게 현재 가진것을 포기하고 살고자 하니 현재 가진것이 너무 많은듯 합니다.

      계속 현재 진행중인쪽으로 가려는 관성의 법칙이 인간사에도 적용되는지 기존의 편리를 포기하고 다시 불편한 과거로 돌아가기는 원칙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단순히 차가 없을 때는 중고차라도 한대 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지만 차가 몇대나 되니 이제는 Luxury한 차를 살 궁리를 하는 제 자신을 보더라도 인간의 욕망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합니다.

    • 32156569878465132121 68.***.178.67

      내 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다녔다. 나는 차를 몰고 다닌다. 내 아들은 제트 여객기를 타고 다닌다. 내 아들의 아들은 다시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다.

      – 사우디 격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