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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태생부터 빚으로 시작한 독특한 나라이다. 독립전쟁도 그렇고, 일단 빚부터 내고 공장 건설하고 집사고 차사고 열심히 일하고 갚아나가는 나라다 보니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이 많이 나오면 공황으로 홍역을 치루고, 열심히 빚을 갚는 사람이 많아지면 국가가 대신 나서서 전쟁으로 엄청난 빚을 만들어 내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다.미국이 식민지 시절에는 노예를 기반으로 한 남부의 대규모 농업 생산물을 유럽에 수출하는 경제였다, 하지만 건국 후에는 산업 혁명으로 인하여 강을 끼고 교통 여건이 좋은 북부 지역에 공장들이 생기고 공업 생산물이 넘쳐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장 혁명(market revolution) 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여 그 동안 자급 자족하던 실, 천, 옷과 같이 가정 소비품은 더 이상 힘들여 만들 필요 없이 시장에서 사버리면 되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하지만, 시장에서 물건을 사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이 필요하면 은행에서 빌리거나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 되는 세상이 되었다. 새벽에 시작하여, 깜깜한 밤이 되어야만 일을 끝낼 수 있고 근로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숙련공이 되어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여성 노동자로 대치하고, 이들도 힘들다고 투덜대면 외국인 이민자들로 대치하고, 하여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생산과 소비와 대출르을 극적으로 향상 시켰지만 한계에 다다게 되었다. 이리하여 1837년 제 1차 공황이 시작되고 그저 돈 하나만 바라보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졸지에 은행 예금을 잃고 알거지가 된 경우가 부지기 수였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금광에서 노다지가 나온다고 하니 너도 나도 서부로 몰리게 되면서 일명 49세대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고, 이미 개발이 끝난 남부 전체를 시장 혁명에 포함 시킨다면 그처럼 좋은 일이 없다. 하여 남북간에 <신-별주부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현물을 일모작 잘해봐야 이모작으로 생산할 수 있는 남부 세력과 현물을 백모작 까지도 가능한 북부 세력이 붙은 형국이다.
여기서 남부의 경제는 노예를 기반으로 한 경제이다 보니 노예를 뺏어 오면 패권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은 당연지사, 하여 남부를 공격하기 위한 공작이 시작된다. 노예가 처참하게 고통 받고 있다, 노예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등등 언론을 통해 북부 사람들은 자신들은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면서도 해 뜨는 시간만 일하는 노예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잠시 옆길로 새서 노예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농사꾼 들에게 있어서 노예는 소와 비슷한 존재다. 하여 이들은 생산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다치거나 병들면 그 해 농사는 망치는 것이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일해야 하는 소를 채찍으로 때리거나 상처를 주어 재산의 가치를 떨어뜨릴 일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노예가 자손을 낳으면 재산이 불어나는 것이므로 해 떨어지고 나면 끼리 끼리 밤 일 하는 것도 장려해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북부 유니온들은 끊임 없이 남부 노예의 고통 받는 모습을 뉴스로 만들고 책도 찍어내고, 지하 철도 조직을 만들어 노예를 북부로 빼돌리고, 탈출한 승객들은 스스로 참혹함을 증언하고, 일부는 대학 교육도 받고 자발적으로 열혈 노예 폐지론자가 되기도 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북부 유니온들이 남부연합에게 지금부터 노예도 인권이 있으니 노예를 해방시키고 월급 줘라 하면 먹힐 소리이겠습니까? 당연히 반발할 것은 안 봐도 비디오지요.아마도 “너희들이 노예 비싸게 주고 산 거 우리가 다 안다, 그래서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노예를 정부에서 싯가 이상으로 보상을 해 주고자 하니 넘겨라, 시한은 얼마다. 그 안에 넘기지 못한 사람들의 노예는 몰수다” 이렇게 말했으면 조금 덜 반발했을 겁니다.하지만 북부 유니온들은 다짜고짜 너희들 노예는 무조건 해방이다 하고 시작했지요. 다시 말하면 그냥 패권을 내려 놓을래 아니면 맞고 내려 놓을래 하는 것과 마찬 가지지요. 당연히 남부로서야 내려 놓을 때 놓더라도 한번 붙어나 보자는 심산이 생길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독립 전쟁 같았으면 북부나 남부나 모두 부자들에게 돈을 빌려서 전쟁하고 전쟁 끝나면 진 쪽이 독박 쓰고 돈을 갚으면 은행가들이야 어느 쪽이 이긴들 상관이 없는데 여기서 엄청난 변수가 생겼습니다. 바로 아브라함 링컨 이라는 사람이 은행가의 수를 간파했는지, 국가가 보증하는 페이퍼 머니 그린백을 발행하면서 전비를 조달하자. 은행가들의 비난이 넘쳤습니다. 골드 백업이 안된 것이므로 돈이 아니라는 둥..인플레이션이 온다는 둥..국가 경제 말아 먹는다는 둥… 이거 어찌 보면, 대원군의 당백전과 비슷한 돈 이었습니다. 조선시대 대원군은 당 일전 당 이전 하던 것을 갑자기 당 백전 하니까 사회적으로 통용이 안되었던 것이지만 링컨 같은 경우는 대원군처럼 엽전 소리는 안 듣고 성공리에 4억 달러까지 발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조족지혈 남북 전쟁의 결과 직접 비용만 52억 달러가 들었고, 미국은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빚을 갚기 위해 뼈빠지게 일을 해야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 노예도 아닌 시카고의 노동자들은 하루에 16시간이나 일하면서도 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만 받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급기야 불만이 극도에 달한 노동자들은 1886년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총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정부는 경찰을 투입하고 5월 3일 농기계 공장에서 농성중이던 노동자들에게 발포를 하면서 어린 소녀를 포함한 6명의 노동자가 살해당한다. 이러한 경찰의 만행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노동자들은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30 만명이라는 엄청난 규모로 운집한다. 그런데 집회 말미에 누군가에 의해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경찰은 노동운동가들을 테러의 주모자로 몰아서 8명을 체포한다.
법정에 선 그들은 모두가 사형과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나서야 폭탄 테러가 자본가들에 의해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헤이마켓 사건은 국제적 노동절의 기원이 되었다.자…여기서 생각을 해 봅시다.
소위 자본가라고 알려진 돈도 많고 잘사는 부자들이 어째서 노동자들을 노예보다도 혹독하게 일을 시켰는지 이해가 되는지요?
그 사람들이 가진 것이 많은 데도 욕심이 많아 더 가지려고 그랬을까요? 아니면그들도 빚쟁이여서 기일 내에 빚을 갚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