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alk Free Talk 다음의 아래 기사중 틀린것을 찾아보세요 This topic has [2] replies, 0 voices, and was last updated 5 years ago by . Now Editing “다음의 아래 기사중 틀린것을 찾아보세요” Name * Password * Email Topic Title (Maximum Length 80) 중국인들은 '고사리’가 한낱 ‘풀’이었다 기사입력 2020-04-24 08:41:42기사수정 2020-04-24 08:42 황광해의 ‘食史’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채소(菜蔬)는 ‘산채’와 ‘야채’를 모두 아우른다. 산나물, 들나물을 모두 아우르면 곧 채소다. 소채라고도 한다. 야채는 일본식 표현이다. 재미있는 것은 산채(山菜)다. 우리만 널리 쓰는 표현이다. 일본, 중국은 산채라는 표현을 널리,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 중국에도 산채는 있다. 그들은 산채를 즐겨 먹지 않는다. 중국은 버섯 등을 제외하고 거의 먹지 않는다. 일본도 마찬가지. 버섯과 몇 가지 산나물을 먹는다. 한국은 일상적으로 산나물을 먹는다. 곤드레나물로 비빔밥을 만들고 취나물은 곰취, 참취, 수리취, 단풍취, 미역취 등으로 가른다. 이름도 외우지 못할 숱한 산나물을 일상적으로 먹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산마늘, 명이나물이 대유행이었던 적도 있다. 웬만한 고깃집에서는 아직도 명이나물절임을 상 위에내놓는다. 국내 생산량이 부족하니 수입도 많이 한다. 제사를 지낼 때 고사리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나물, 산나물을 사용하는 나라도 우리뿐이다. 원본보기 산나물은 우리 민족 특유의 음식문화 한국일보 기자였던 故홍승면(1927 ~1983년) 씨는 “산나물 문화는 우리 핏속에 녹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만주, 간도에는 여러 민족이 살았다. 그중 한국인을 찾아내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른 봄 바구니를 끼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 처녀, 아녀자들이었다.”(‘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 삼우반, 2003년) 봄에 산나물을 채취하는 이들은 한국인이 유일했다. 우리는 냉이, 달래, 쑥을 캐며 봄을 맞았다. 흔히 산나물을 가난, 궁핍함,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상징으로 여긴다. 틀렸다. 당시 간도, 만주 일대에는 여러 민족이 모여 살았다. 한국,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원주인인 중국인, 중앙아시아인들, 러시아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먹고살기 어려워 먼 곳까지 온 사람들이다. 대부분 가난했다. 살림살이는 그저 그만했을 것이다. 궁핍한 살림살이다. 유독 한국인들만 더 가난했다고 이야기할 근거는 없다. 그중 한국인들만 봄철이면 산나물을 뜯으러 다녔다. 산나물은 초근목피의 상징이 아니다. 산나물은 우리 민족 특유의 음식문화 중 하나다. 오래전에는 중국, 일본인들도 산나물을 먹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중국, 일본의 산나물 문화는 사라졌다. 중국인들은 버섯을, 일본인들은 들나물을 주로 먹는다. 재미있는 것은 산나물 중 ‘고사리’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사육신 성삼문은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죽기 전 그는 시조를 남긴다. 제목은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다. 소재는 중국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굶어 죽은 백이, 숙제의 이야기다. 고사리를 캐 먹었다고 ‘채미가’(採薇歌)라고도 한다. 원본보기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비록애 푸새엣 것인들 긔 뉘 따헤 났다니. 이제(夷齊)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가리킨다. 은나라 고죽군의 아들이었던 두 사람은 주 무왕이 은 주왕을 정벌하는 것을 말린다. 무왕이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은나라를 정벌하자 수양산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 죽었다. 곧은 충절과 청렴의 상징이다. 백이, 숙제가 먹은 것은 ‘산나물 고사리’가 아니라 한낱 ‘풀’이었을 것이다. 고사리를 먹을 것으로 여겼다면 굶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우리처럼 고사리를 상식(常食)하지 않는다. ‘고사리를 먹었다’와 ‘굶었다’가 같은 뜻이다. 고사리는 먹을 것이 아니었다. 성삼문은 한글 창제 당시 북경을 갔다. 이때 이제의 묘를 지난다. 이제의 묘를 보고, 남긴 시가 있다. 백이, 숙제를 기리는 글이다. 내용은 ‘수양산 바라보며’와 비슷하다. I agree to the terms of service Update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