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alk Free Talk 님을위한 행진곡 This topic has [1] reply, 0 voices, and was last updated 5 years ago by 재능. Now Editing “님을위한 행진곡” Name * Password * Email Topic Title (Maximum Length 80) 닳고 닳게 들었었다. 우리나라 땅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노래,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자......(남으로 남으로......가도 가도 끝이 없단 뉘앙스 찐한 남으로 남으로) 그 곳 모란이 활짝 핀 곳에 영랑이 숨쉬고 있네 거의 생략. 아, 영원히 남을 이 영랑과 강진"~~~김종률 작곡. "영랑과 강진" 으로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 거대한 음악 "님을위한 행진곡" 을 작곡한 이. 단지 노래 하나 작곡했을 뿐인데 간첩이라고 끌려가 고문고문고문으로 죽다 산 이. 무튼, 영랑 에 미쳐있을 때쯤 영랑과 강진이란 노래가 나와 또한 거에 미쳤었기에 문학답사반이라는 조그만 써클에 몸을 담고 있을 때 아니 가 보곤 못 살 것 같아 애들과 함께 영랑 생갈 찾았었다. 노래마냥 활짝 핀 모란이 생가를 꼼짝 못 하게 포박하고 있을거란 기대완 달리 따악 두 그루, 활짝 핀 모란에 실망이 대단했었다. 쌕휘들, 많이 좀 심어놓치 좀. 방명록에 칼님께옵서 다녀가시다 를 휘갈기고 뒷곁으로 가니 잘생긴 시비가 서 있는데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이 뒨 내 눈으로 잡아다가 내 뇌속에 가둬두면 갇힌 채로 부패하다 적멸할 게 자명하고 그럼 이 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망시라 방생했기에 내 기억에 없다. 살려서 다른 이들도 노래해야 되지 않겠나 싶은 맘에서였다. 나 잘했지? 그리곤 가게 되는 곳이 토말.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큰 나란 줄 알았을 나이 때나 토말, 땅끝마을 의 의미가 있지 미쿡에 살다 보니 그 의미가 없어 보이긴 해도 뭔가 색다르지 않을까 곤 찾아갔던 토말. 그곳에 2층짜리 여관이 있었는데 미숙이랑 갔을 때 침대가 없더니 담 해 미정이랑 갔을 때도 침대를 안 들였더니 담 해 미옥이랑 갔을 때도 침대를 안 들여 놔 토말 함 까진 무릎 만 기억이 생생하다. . . . .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끝없는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님을위한 행진곡 전문 . . . . . 들을 때마다 맘은 항상 광주에 가 있고 가슴은 뭉클해지고 또 엄숙해지고 눈물 또한 고이게 하는 민중노래. "님을위한 행진곡" 을 작사한 백기완선생.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백 소장은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상 뉴스 발췌. . . . . . 또 큰 별 하나가 졌다. 부디 민주주의가 활짝 핀 곳, 분단 없는 나라로 가시길...... I agree to the terms of service Update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