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alk Free Talk 내 고향은 충청도예유 This topic has [5] replies, 0 voices, and was last updated 5 years ago by AAA. Now Editing “내 고향은 충청도예유” Name * Password * Email Topic Title (Maximum Length 80) 얘. 너 혹시 학교 댕길 때 배운 거 기억나니? 하긴 뭐 네가 그렇지 뭐. 충 청 도 양 반 내포평야. 혹자들은 논산평야라고도 하지. 람보르기닐 500키로로 몰아 3박4일을 달려도 보이는 건 지평선 뿐. 인 충청도의 유일한 곡창지대 논산. 즉 놀뫼. 옛날 옛적에 물 좋고 쌀 잘난 곡창지대인 놀뫼에 하나 둘 양반들이 한양에서 내려와 살기 시작한 게 충청도 양반설 의 단초가 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충 청 도 양 반 당시의 조선시대 3대시장으론 남대문시장 가락시장 강경시장 이 있었는데, 강경시장이 조선 3대시장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컷던 이윤 많은 사대부가의 양반들이 끊임없이 놀뫼로 놀뫼로 모여들었기 때문였었다. 양반들이 드넓은 곡창지대의 농사를 옥체에 흙묻히며 지을 순 없는 노릇, 해서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또 북한도 에서 많은 천것들 즉 천민들 즉 쌍것들을 끌어 모아 농사일을 시키며 하인이자 노비로 부렸는데 하인 1세대와 1.5세대까지는 그런대로 말도 잘들어 부려먹기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하인 2세들, 이것들이 항상 문제요, 말썽이라. 이것들은 양반집에서 태어나 양반 자제분들과 놀며 크다 보니 저희들이 양반인지 쌍반인지 분간도 못하고 정체성도 잃어 사람들은 쌍반 2세대를 바나나 라 부르곤 했으며 혹자들은 핫바지 라고도 불렀다. 이것들이 좀 컷나 싶자 일은 안하고 맨날 하녀들과의 연애질이라. 해서 졸라패고차고때리자 하녀 하남 이것들이 서로에게 눈깔이 먼김에 하나 둘 주인양반집에서 도망치기에 이르렀는데 그 때 그 도망친 천것들, 즉 쌍것들 이 도저히 짐승이 아닌 이상 사람이라면 살 수 없는 곳 즉 주인양반이 잡으러 갈 수 없는 곳으로 토껴 자리를 잡았는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 곳이 바로 천안 공주 보령 아산 서산 계룡 당진 금산 연기 부여 서천 청양 홍성 예산 태안 과 충청도에서 독립한 대전 즉 한밭 등지라. 이 천한 것들이 하나 둘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하며 양반 흉내를 내기 시작하였는데 평소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싸울 때도 양반 흉내를 내기에 이르렀던 거다. 즉 야이 양반아 내가 이 양반아 언제 이 양반아 그랬어이 양반아 아따 저 양반좀 봐 야이 양반아 한 입 갖고 두 말 하지마이 양반아. 이렇듯 천것들끼리 서로를 양반으로 불러주며 양반 흉내를 냈고 심지어 모든 혼인한 여인네들은 하나같이 자기 남편을 일컬어 우리집 양반 우리집 바깥양반 이라 칭했으니 외지에서 처음 온 사람들은 와우, 충청도엔 양반밖에 없다고 여겨 충청도사람 하면 무조건 다 양반이다 란 설이 서리맞아 얼어 굳어지기에 이르렀던 거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이 쌍것들이 서로가 서로를 쌍것임을 시인하다 쌍것임이 들통나곤 했었는데 즉 싸울 때 야이양반아 양반아 하다가 분남을 억제하지 못하면결국 저 쌍놈의 색휘봐라 저런쒸, 누가 누굴 보고 시방 쌍놈이랴이쒸 야이 쌍놈의 색휘야. 해서 쌍것인 게 들통나곤 했었다. 충 청 도 양 반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충청도 양반 이라함은 충청도 사람들 모두가 아닌 논산 놀뫼 양반들을 양반이라 일컬음이며 기타 다른 충청도지역 인간들은 순전히 온전히 쌍반 혈통 고스란히 보존된 쌍반족보까지 가지고 있는 쌍것들 이란 야그다. 이것들이 요즘 컷다고 충청향우회도 만들고 행사도 하고 카페도 만들며 좋은 일 훌륭한 일을 병행하느라 바쁜 모양인데, 감히 내게 충청향우회에 와라 오셔라 등등 까부는 꼴이라니. 참고로 난 논산 즉 놀뫼 출신이다. 성골양반이란 소리다.~~~ 차원이 다르단 말이다. 그니 앞으로 이곳에 놀러 옴 꼭 칼 냥봔님!!! 옥퀘이? 근데 얘, 너 혹 성골 모임인 논산향우회가 어딨는지 아니?~~~ I agree to the terms of service Update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