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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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있으마 73.***.151.16 238

    형, 목소리가 왜그래?
    어디 아퍼?

    “그게 아니고
    미안하다 칼아.”

    아, 형이 왜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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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흘러
    자식색휘들이 자라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남진의 목화아가씨 중에서

    라며

    나와 마눌의 손길이 필요치 않다고 개길 때쯤,

    색휘들 다 컷으니
    뭐 마눌이 옆에 있어
    좀 성가시고 걸리적거리긴 하지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다들 저리 그러니
    그래,
    나도 좀 나만의 시간을 갖자.

    곤 돌아서면

    부모님 수발에
    다시 손발이 묶이는 나이가
    우리 또래쯤의 아이들이 아닐까?

    (물론
    부모님 수발들며 모시는 인간이
    희귀동물로 취급되는 꼴의 시대긴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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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이거나 안 친구이거나
    또래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전화속에서의 목소리는

    부모님이나
    장인 장모님이나를

    병원 아니면 요양원,
    좀 나으면 집에서 간호한다는 소리가
    부쩍 많아진 것만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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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색휘들이 많다고
    다들
    효녀 효잔 아닌 것 같다.

    지극한 효심이 있어도
    형편이 안 되면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대목에 우린
    우리의 형편을 어거지로라도

    어쩔 수 없다

    쪽으로 목숨 걸고 끼워 맞춰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도 자식색휘들이 많으면
    어느 집이 건
    나 같은 불효막심한 개망나니가 하나쯤 있게 마련이지만

    그 색휘들 중 하나는
    분명, 분명히, 신기하게
    효자 한 명쯤은 있게 마련이라.

    (이 대목에 우린
    우리의 형편을 대신 해 주는 효자, 그에게
    쩐 몇 푼 던져주며 의무를 다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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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이 아니라
    먼먼 옛날부터 그래왔지만

    부모님을 안 모시고 산다는 것,

    며느리가

    그의 시부모를 싫어한다고
    죄 없는 며느리만 잡들이를 해 왔지만

    알고 보면

    자식색휘가
    그의 부모를 더 싫어한다는 게 맞는 말이지.

    그대
    그리고

    를 봄.
    .
    .
    .
    .
    .
    너나
    나나

    좀 더 커서 노인이란 게 되면
    자식색휘들이 많지 않으니
    효자 한 명 있을 확률도 적고

    아니 없을테고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해지면

    요양원 가는 일도 의연하게 받아들여얄거라고

    자식님들의
    짐이 되지 말자고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

    이 아니라고

    그래서
    자식들에게 절대로 서운한 게 아니라고

    그래야만 되는 거라고

    혼자 되뇌여 보며

    엄말 생각해 보며.
    .
    .
    .
    .
    .
    논에 물 댈 때와
    우리 아들 입에 밥 들어갈 때가
    이 에민 젤 행복하단다

    엄만 안 먹어?

    난 괜찮다
    난 괜찮다

    내 입가에 묻은
    밥풀 하날 떼어 입에 넣으시며

    난 괜찮다
    난 괜찮다

    하나 있던 선풍기 대가리 내게 돌리곤
    땀띠 난 목덜미 쓸어내리시며

    난 괜찮다
    난 괜찮다

    아니야 엄마 내가 벌어서 다닐 수 있어
    닳고 닳은 가락질 빼시면서

    난 괜찮다
    난 괜찮다

    당신의 생을 풀어
    나를 짜 올린

    밤새 앓던 그날보다 더 아픈 이름,

    어 머 니.!!!!!!!
    .
    .
    .
    .
    .

    우리집안의 대표 효자인 째깐형이

    분당과 논산을
    월 2회씩 꼬박꼬박 오갔고

    혼자 맨발로 발품팔고 다니며
    빠꾸맞고 빠꾸맞다
    몇 달 전 허가가 떨어져
    간병인이 집에 오게 됐다고 그리 좋아하더니

    화장실도
    거미처럼 기어서 가야는 상황에 이르러

    언제 큰 일 날까 걱정돼
    집에 가도 24시간 불안불안해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으로 엄말 모셨다며

    톤 낮게 덜컥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미안하다니.

    이곳에 산단 이유로
    엄말 잊고 산 게 난데

    미안함으로 치자면
    나지 왜 형여.

    형, 내가 미안해.
    .
    .
    .
    .
    .
    째깐형과 통활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가득 고이데.

    자식이 넷이나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사지 멀쩡한 내가 두 손을 놓고 있어얀다니.

    아, 쓰바.

    엄마를

    고려장

    이라니.

    당신의 생을 풀어 나를 짜올린
    아름다운 엄마를

    내가
    두 눈 멀쩡히 뜨곤 고려장을 시키다니.

    아, 어쩌냐 울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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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 건

    바둥바둥거려봐야 그래봐야

    굽이굽이 거기서 거길
    휘돌며 가는 여행,

    내가 원하는대로

    건강하게
    씩씩하게
    쌩쌩하게

    여행을 하다 여행을 마치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