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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기독교 믿음 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결벽증을 보이는 개신교 교인들을 볼때면 참 답답스럽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오늘자 한국 뉴스 중에 제사 참여 대신 교회에 가는 부인 문제로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기사를 보니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가정을 파탄내고 조상을 경애하고 기념하는 한국의 전통까지 무시하면서 일요일 교회나가는걸 더 중요시 하라고 가르쳤는가 묻고 싶다.
예수님은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지도 않았고 또한 예수님을 따르던 12 제자 및 수많은 신약시대의 추종자(요새말로 교인들)들 또한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보거나 또는 미사를 보았다는 말을 성경 어디에서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따지고 보면 구약시대의 유대인 만큼 제사를 중요시해서 소나 말등을 번제로 태워 제사를 지내고 잠언서를 비롯 많은 부분에서 부모 공경, 가족의 중요성을 지나칠정도로 강조한 민족도 없다.
구약에서 말하는 내용의 대부분이 이미 죽은 조상의 이야기이며 그 조상들의 행적, 언행을 유대인들은 두고두고 묵상하고 어린 자녀들에게 가르치질 않는가?
또한 신약에서도 죽은 유대인들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가 무수히 많이 나오질 않던가?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에 대해 제사를 지낸다는건 단순히 우상을 섬기고 귀신을 섬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대대로 수천년을 내려온 한민족의 전통이지 단순히 우상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는건 진정한 교인으로서 한번쯤 반성해 보아야할 부분으로 생각된다.
잘 알다시피 개신교의 일요일 미사, 또는 캐톨릭(천주교)의 주일 미사도 형태는 결국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매주 자신이 믿는 종교를 위해 제사를 지내면서 종가집이 아닌 이상 일년에 한두번 치루는 조상을 기념하는 제사를 우상 숭배라고 배척한다는것은 모순이 있지 않겠는가?
해마다 있는 현충일 (Memorial day)에 기독교를 믿는 군인 또는 일반인들도 경건하게 이날을 기념하며 또한 각 국가마다 국기에 대한 예를 정성을 다해 하지 않는가?
그럼 현충일 또는 국기도 우상 숭배라고 우길 교인이 나올지 모르겠다.
만약, 매주 일요일 온가족이 모여 같은 조상을 위해 똑같은 제사를 지내는 집이 있다면 이건 우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일년에 기껏 한두번 돌아가신 조상의 기일을 기해 가족이 모여 기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절하는걸 우상 숭배라고 한다면 진짜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 웃을 일이겠다.
기독교의 참뜻,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뜻은 어디가고 형식에 치우쳐 쓸데없이 겉만 번드르르하게 차리는게 진정한 교인으로서 할 짓인가?
작금의 개신교계가 어찌 신약 시대 예수님이 그리도 비판해 마지 않던 바리세인들, 성직자들의 행태를 닮아가고 있는가?
전통적인 캐톨릭 조차 각 민족의 풍습과 전통을 존중해야한다는 교황청의 교리로 모든 민족의 독특한 전통과 풍습을 인정하는 판에(한국의 전통 제사를 포함) 어설픈 개신교 목사 및 교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만든 엉뚱한 형식에 얽매어 헤매고 있는지 애처로울 뿐이다.
새벽예배, 주일 예배, 평일예배에 부지런히 다니면서 집안은 내팽겨치고 남편이 출근하는지 아이들이 학교에 잘 다니는지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교인이라면 이런 교인이 바로 사이비 교인이고 예수님이 말한 위선자중의 위선자라고 할만하다.
가정의 평화와 화목, 가족내에서의 진실한 사랑도 모르는 교인이 어찌 알지도 못하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를 믿는 한 교인으로 작금의 여러 교단의 이기심, 제 직분과 사명을 읽고 헤매는 목사 및 신부들, 거짓과 위선을 믿음으로 보기좋게 포장하는 교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한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며 그들이 진정한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길 기도드린다.
글쓴이: 안 유 섭 목사
(아르케 아카데미 원장, 반석교회 담임)제사(祭祀)란 무엇인가? 제사(Sacrifice)의 정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의 의식화된 행위로서 종교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원을 보면 히브리어로는 제바흐( )라고 하며 도살하다(Slaughter)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헬라어는 뒤시아( )인데 이는 바치다(Offer)라는 뜻에서 온 말로서 제물(祭物)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제사란 원어적인 개념으로 볼 때 인간의 죄 값을 대신하여 동물을 죽임으로써 희생의 제물로 바친다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겠다.
구약 레위기에는 제사의 종류와 방법들이 자세히 기록되었다. 먼저 제사의 종류를 보면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와 속건제의 5 가지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중에서 번제와 소제는 제물(祭物)의 종류에 따라서 구별한 것이므로, 실제로는 3 가지 종류밖에는 없는 것이다.
번제(燔祭)는 올라( )라고 하는데 원 뜻은 올라가다라는 의미이므로 흠 없는 희생의 동물을 죽인 뒤에 그것을 태워서 향기가 올라가도록 드리는 제사를 뜻한다. 번제는 보통 다른 제사와 함께 세트(Set)로 드리게 되는데, 예를 들어 속죄제와 함께 드린다면 그 속죄제가 하나님께 열납된 것을 최종 확인(Finish)하는 역할을 하였다. 소제(素祭)는 민하( )라고 하는데 봉헌물이라는 뜻이며 곡식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뜻하며, 번제와 함께 드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제사의 종류는 목적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화목제(和睦祭)는 쉘렘( )이라고 하는데 화평하다라는 솰람( )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것을 해소함으로써 하나님과의 화목과 친교를 얻기 위하여 드린 제사로서 주로 국가적인 경축일이나 제사장의 성별식 또는 나실인의 구별의식 때 드려졌다. 개인적으로는 서원하거나 자원할 때 또는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자 할 때 화목제를 드렸다. 바울 사도는 롬 3:25에서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원하신 화목제물로 드려졌다고 하였다.
속죄제(贖罪祭)는 핱타아트( )라고 하며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로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제사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히 9:22)고 하였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속죄의 제물로 곡식을 드리는 것이 허용되기도 하였다. 주님은 자신을 흠 없는 화목 제물로 드리셨을 뿐 아니라 피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속죄 제물(히 9:12)이기도 하셨다.
속건제(贖愆祭)는 아샴( )이라고 하는데 제물이나 성물(聖物)에 대하여 거룩하게 유지하지 못하여 허물이 있을 때와 인간 관계에서 손해를 끼쳤을 때 용서받기 위하여 드려지는 제사였다. 속죄제가 주로 하나님께 대하여 지은 죄로서 1-4 계명을 어겼거나 내면적인 죄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면, 속건제는 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은 죄 곧 5-10 계명을 어긴 죄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제사였다.
속건제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성으로 다스려진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건과 거룩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자신을 속건 제물(사 53:10)로도 드리셨다고 하였다. 곧 주님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되었다(히 10:10, 13:12)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속죄제와 속건죄를 비교하자면, 속죄제가 주로 하나님께 대하여 지은 죄로서 1-4 계명을 어겼거나 내면적인 죄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면, 속건제는 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은 죄 곧 5-10 계명을 어긴 죄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제사였다. 즉, 속죄제는 원죄로부터의 용서를 상징하는 제사로 볼 수 있고, 속건죄는 죄사함 받은 이후의 거룩한 삶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범죄를 지은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회개해야 함을 상징한다.
다음에 제사 방법으로는 4 가지가 있는데 화제, 요제, 거제와 전제가 그것들이다. 화제(火祭)는 잇쉐( )라고 하는데 짐승이나 곡식을 불에 태우거나 구워서 드리는 제사를 말하며, 요제(搖祭)는 테누파( )라고 하며 하나님 앞에서 제물을 흔들어서 봉헌하는 제사이다. 거제(擧祭)는 테루마 ( )라고 하는데 제물을 높이 들어서 바치는 제사방법을 말한다. 전제(奠祭)는 네세크( )라고 하며 포도주나 술 또는 기름과 피 등을 부어서 드리는 제사법이다. 바울 사도는 빌 2:17에서 자신을 관제(灌祭)로 드린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전제의 영적 의미가 헌신과 순교라고 해석하였다.
구약 시대 제사는 성전 건축 이전에도 행하여졌으나 성전 건축 후에는 오직 성전에서만 행하여졌다. 그러나 AD 70년에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후에는 더 이상 성전 제사가 드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 오늘날까지 제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하여져 왔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레위기 16장에서 속죄제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을 통하여 제사 방법을 알 수 있다. 제사를 위해서는 제일 먼저 희생 제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첫째는 온 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로서 숫염소 두 마리였다. 그와 함께 대제사장 자신의 속죄 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를 준비했고, 또한 제사장과 백성의 번제 제물로서 숫양 두 마리를 준비했다.
제사는 대제사장에 의해 행해졌는데, 대제사장은 정해진 복식(服飾)에 따라 세마포 고의를 입고, 반포 속옷을 입으며, 또한 아랫단에 금방울과 석류방울이 교대로 달린 청색 겉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 위에 금, 청, 자, 홍색실과 베실로 짠 에봇을 입었는데, 에봇 위에 다시 열두 보석을 수놓은 흉패를 덧대었다. 완전한 복장을 갖춘 대제사장은 속죄제물인 두 마리의 염소를 제비 뽑아 한 마리를 속죄의 희생 제물로 정하고 다른 한 마리는 떠나보내기 위하여 아사셀을 위한 염소로 정하였다. 아자젤( )이란 떠나 보낸다라는 뜻이다.
대제사장은 온 백성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위한 속죄부터 해야 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인 수송아지 한 마리를 번제단 앞에서 잡아서 그 피를 취하여 가지고, 성소를 지나 지성소에 들어가서 피를 뿌려야 했는데, 지성소 휘장에 들어가기 전에 금향로에 향을 태워 연기를 피운 다음, 그것을 짐승의 피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지성소 안에 향을 태운 연기를 가득하게 한 후에 법궤 위에 놓인 속죄소 위와 동편에 짐승의 피를 일곱 번 뿌렸다.
그 다음 지성소를 나온 대제사장은 온 백성을 위한 속죄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다시 금향로와 함께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와 그 앞에 뿌렸고, 다시 나와서 번제단 앞으로 간 다음 먼저 잡은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번제단의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그 피를 일곱 번 뿌림으로써 속죄 제사를 드렸다. 여기까지 행한 대제사장은 이제 한 마리 남은 염소에게 안수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범죄를 염소에게 전가한 후에 그 염소를 무인(無人) 광야로 떠나보내면 되었다. 광야로 아사셀을 위하여 보낸 염소는 랍비의 구전에 의하면 낭떠러지에서 떨어드렸다고 한다.
속죄 제사를 끝낸 대제사장은 이제 속죄 제사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신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위한 번제로서 숫양 한마리를 잡아 불에 태워 바쳤으며, 또 백성들을 위한 번제로서 또 한 마리의 숫양을 잡아 불에 태워 드림으로써 모든 제사를 마치게 된다.
구약의 제사는 복잡한 절차를 통하여 이루어졌지만 그 제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제사가 담고 있는 의미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속죄의 제사는 근본이 동물의 희생 제사였다. 즉, 흠 없는 동물에게 안수함으로써 인간의 죄를 제물에게 상징적으로 전가시킨 후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을 죽임으로써, 인간이 치러야 할 죄의 대가를 동물이 대신 치르게 하여 죄를 용서받는 상징적 행위가 구약의 제사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완전한 제사의 그림자이며 신약의 제사의 모형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완성하신 완전한 제사는 히 7:27에서 대제사장들이 자신과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처럼 하지 않고 주님이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다고 한 것과 히 10:12에서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을 통해 단번에 드리는 영원한 제사를 말한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자신을 흠 없는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제사의 본질을 완성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완전한 제사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던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과 인간의 완전한 화목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제사의 본질을 완성하셨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대제사장의 도움도 필요 없이 오직 한 분이신 주님으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직접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완전한 제사란 결국 히 10:18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더 이상 대제사장을 통한 제사 자체가 필요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성경의 모든 개념이 계시의 점진성에 따라 신약에서 그 본질적 의미가 드러나는 원리로 말미암아, 구약적 개념의 제사 역시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구원 사역의 성취로 말미암아 그 본질적 개념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즉, 구약의 제사는 주님의 완전한 제사의 그림자였음이 판명되었고, 마침내 신약에 와서 성도의 삶을 통하여 드리는 산 제사의 개념이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거룩한 산 제사란 무엇인가? 우리는 히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게 된 자들이다. 따라서 구원받은 후에는 우리의 삶 자체를 거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거룩은 헬라어로는 하기오스( )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코데쉬( )라고 하는데 모두 ‘구별’이라는 뜻에서 온 말이다. 즉, 거룩하게 산다는 말은 세상의 속된 것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순수하심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산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제물과 제사 드리는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에서는 제물과 제사 드리는 사람이 달랐지만, 신약에서는 제사 드리는 우리가 동시에 흠 없는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거룩한 삶이 되지 못할 때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드리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도 역시 흠 없는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