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조선에 사는 일본인이 겪은 일

    • 승전상사 98.***.109.5

      가까운 분이 쓴 회고록에서 발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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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로 해방이다. 망명이다. 오그라졌던 기운을 쭉 펴고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해방이다. 마치 감방에서 몸과 마음을 다 쪼그리고 있던 죄수가 감옹문을 나서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던 것이 우리가 경험한 해방이다. 아니 XX가 맛본 방이다.

      8월 16일 밤에 면민 일동이 동리 광장에 모여 해방축하대회를 열었다. 축하연설은 XX가 하였다. XX는 잘 준비한 연설을 모든 정력을 다 기울여 ….
      … 좀 더 시국의 진상을 알아보고 건국사업에 이바지하기 위해 XX는 청년 사오인과 AA나가는 기타를 찼다. 한국 사람은 좀처럼 탈 수 없던 기차는 터지도록 사람이 탔고 정거장마다 사람사태가 나서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른다. 기차 안에서는 화답하는 만세를 맞받아 부른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요, 또 말릴 수도 없는 일이어서 사회를 점점 뭄란케 하는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XX 맞은 편에 일본 부인이 아이 하나를 데리고 땅만 들여다보며 죽은 듯 앉아 있다. 바로 옆에는 한국 부인이 역시 아이를 데리고 주먹밥을 해가지고 오면서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다. 일본 아이가 부러운듯이 힐끔힐끔 밥먹는 것을 바라본다. 한국 부인은 ‘옥상하고 고도모 밥좀 줄까요?’하면서 큰 것 두 뭉치를 갈라서 준다. 일본 부인과 아이는 고맙다고 여러번 절을 하면서 받아 먹는다. 아마도 시국이 뒤집히는 바람에 무서워서 밥도 못먹고 숨어있다가 기차로 망명해가는 길인가 보다.

      곁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XX 마음에는 이상스런 생각이 떠올랐다. 한인들이 본시 마음이 착하여서 못먹은 사람이나 헐벗은 사람을 보면 비록 원수라도 먹이고 입히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으면 너무 오랫동안 일본 사람은 보기만 하면 무서워하던 버릇이 있어서 우마 기운없이 맥추지 못하고 있는 일본사람도 마치 범의 가죽같아서 무서워하는 비굴한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또는 이제는 우리가 주인이고 너희들은 쫒겨가는 보잘것 없는 인간들이니 주인으로서의 어떤 싼 태도를 보이는 관대한 행동인가? 꼭 어느것이라고 지적하기 어려우나 아마도 첫째 마음 자지를 관대히 한 것이 한인이라 생각하였다.

      그 얼마후에 AA서 BB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더욱 한인은 본시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었다.

      만주 피난민이 탄 화물차간에 앉아서 YY역에 왔을 때였다. 사람들이 떼거리로 오르고 내리는 틈을 타서 어딘가서 잡히어 오던 일인떼가 차에서 도망하다가 소련군과 한인 치안대에 붙들렸다. 그래서 한인 경관에게 몹시 얻어맞는 것을 보고 차간의 피난민들은 거의 다 울먹울먹 하면서 때리는 한인들을 나무래는 것이었다. “이게 조선사람이웨다. 여러 십년을 괴롭게 하던 원수의 종족이라도 저처럼 동정하는 것이 조선사람이웨다…”

    • 토착왜구 98.***.115.123

      솔직히 일본에서 식민지 조선에 정착한 민간인들중 대부분은 본토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에 가면 땅도 받고 하니까 일본 보다야 낮겠지 하는 희망으로 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일본이 패망했는데 공무원들이야 명령에 따라 돌아갔을 테지만 민간인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니 눈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돌아가봐야 핍박만 받으니 차라리 조선에서 눌러앉자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돌아가지 않은 토착왜구는 아주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이 625전쟁때 자국민을 송환한다고 송환선을 보낸것을 보면 그때까지도 많은 일본인이 조선에 남아있었고, 돌아간 사람도 일부 였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은 일본인들은 철저히 신분을 숨기고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세상 좋아져서 대 놓고 자위대 행사에 참석해도 몰매 맞아 죽지도 않는 다는 것을 아니까, 대놓고 까부는 후손도 여럿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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