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전가의 보도인가?

  • #103197
    리키 67.***.186.35 2905

    그림 구경 한번 하시죠.

     

    잭슨 폴록의 <푸른 기둥(Blue poles), 1947>입니다. 잭슨 폴록은 드리핑(물감 흘리기)기법을 캔버스에 적극 이용, 우연적 형태가 만들어내는 회화의 조형성에 의미를 가져다 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올 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란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복잡한 사회현상 속에 감춰진 과학적 의미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책의 내용 중에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추상화의 대표적 작품을 과학적으로 접근해서 이해해 본다는 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그의 그림은 물리학자들의 관찰을 통해 프랙탈 -복잡해 보이지만 자기 유사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규칙을 가진 -구조로 이루어진 그림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프랙탈의 중첩은 법칙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초기 조건에 너무 민감해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카오스 시스템으로 해석됩니다.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어떤 통일적이고 일관적인 질서를 그림에 만들어간다는 의미겠죠.)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그림에 나타난 형상과 색채를 과학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는 것이 그 그림의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잭슨은 섬세한 계획 혹은 디자인을 가지고 드리핑 기법을 시도했는지 그냥 우연성에 의지했는지를 즉 작가의 의도와 그 결과물인 작품을 과학적으로 분석이 가능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다음 그림을 보시죠.

     
    마르셀 뒤샹 <샘(Fountain)>, 1917

    앤디 와홀 <브릴로(Brillo)>, 1964

    과학은 이 두 작품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변기의 조형성에 주목을 하고 그 형태를 분석할까요?
    색깔과 형태가 다른 변기랑 다른것을 봐야 하나요?
    “변기에다 왠 샘이란 제목?” 이런 부조화에 주목을 할까요?
    종이상자를 쌓아놓은 와홀의 작품은 어떻게 과학이 분석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사실 뒤샹의 이 작품은 뒤샹의 기존 예술에 대한 장난과 조롱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다른 변기들과 달리 뒤샹의 <샘>이란 변기만 예술작품이 되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그 이유를 변기의 물리적 속성에서는 찾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변기가 다른 변기랑 특별히 다를 건 없을 테니까요.

    미국의 분석 미학자인 조지 디키는 그걸 예술계라는 제도에서 찾습니다.
    이 예술계에서 예술 작품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대상이 바로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뒤샹이 예술계에서 인정받은 or 창조한 것은 무엇일까요?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샘을 만든것은 뒤샹이 아니라 변기 공장의 노동자들입니다.

    그럼 그가 한일은?
    그것은 바로 ‘코드(code)’,
    즉 하나의 변기를 예술 작품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관습‘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뒤샹의 샘은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뒤샹의 샘은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어떤 대상이 예술이냐 아니냐는 이제 그 사물의 물리적 속성만 가지고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뒤샹의 샘은 장난에서 출발했지만
    앤디와홀은 한술 더 떠서 의도적으로 상품 상자를 전시장에 쌓아 놓고
    현실의 어떠한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현대 산업사회의 가장 큰 특징인 기계화, 대량생산방식을
    자신의 작업의 형식과 기법에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순간입니다.
    무엇이 예술작품이고 무엇이 공업제품입니까?

    잭슨 폴록이 의도적으로 고도로 계산된 행위로 드리핑을 했을까요?
     그냥 우연성에 기대어 그렸을까요?
    사실 그건 폴록만이 대답해 줄 수 있습니다.
    폴록은 그나마 형상이라도 있습니다. 
    뒤샹과 와홀에 이르러서는  
    눈으로는 에술과 그냥 실제 사물 사이를 구분하는 차이점이 없습니다.
    현실이 예술이고 예술이 현실인 세계를 과학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요?

    음악으로 가 볼까요. 음악이야말로 추상적인 기호입니다.
    음악은 그 자체로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 음표들의 자유로운 배열입니다.
    음악이란 소리의 파동의 특성을 과학은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요?
    고전음악은 귀에 익어 들을만 하지만 현대 음악을 듣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깝습니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나오는 숫자는 그 전에 어떤 숫자가 나왔는가와도 아무런 연관성이 없으며,
    일정한 패턴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던져진 주사위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의 손놀림에서부터 바닥에 부딪쳐 회전하는 주사위의 움직임까지
    그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술하기 위해서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변수들이 필요합니다.
    이 경우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며,
    다음에 나올 숫자는 그저 6분의 1이라는 확률로 예측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예술에서 작품의 변수는 주사위 던지기 정도의 변수로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와홀의 작품에 보이듯 아예 물리적 대상의 차이가 없습니다. 참 난감합니다.

     

    • 그냥 99.***.67.10

      제목이 잘못된 듯.
      과학을 예술로 바꿔야 할 듯.

      • ㅇㅁㅇ 99.***.93.50

        과학은 전가의 보도인가? (과학이 모든것의 해결사인가?)

        “아니다” 라고 원글님이 말씀하시고 싶으신듯. (전가의 보도가 뭔말인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