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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자본주의 그리고 전염병
위의 세단어속에 걱정과 자본주의는 서로 연결고리가 있지만, 전염병을 포함했을땐 세단어 상호간에 공통적인 의미는 없다. 하지만, 요즈음 코로나 바이러스사태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이 세단어는 고스란히 연결되어 진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릴까바 걱정,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경제가 침체 될까바 전전긍긍하는 자본주의,
그리고, 걱정할 이유가 있기엔 좀 무리가 있는 사망율이 1%에 지나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염병 같지 않은 전염병이라는 점이다.일찌기 발터벤야민은 “걱정은 자본주의의 고유한 정신병”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 걱정때문에 자본주의가 굴러간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걱정이 없다면 보험이라는 금융산업이 유지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고, 걱정이 없다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같은것에 생떼같은 돈을 사용할 이유도 없어진다.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데, 투자의 필요성이 생겨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후기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하여 돌아가는 21세기 세계경제는 위와같은 걱정에 의하여 겨우 작동되는 금융산업에 의한 시스템이나 다름없으니, 걱정경제시스템이라고 해도 별무리 가 없어 보일정도이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세계적 확산상황에서 눈에 띄는 각나라의 대처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국경을 폐쇄하는 나라와 (대표적으로 미국과 같은 앵글로 색슨계열 국가들) 그렇지 않는 나라 (대표적으로 독일과 같은 게르만계열국가들)이다. 그리고, 전자의 국가를 걱정이 과도한 나라, 후자를 걱정이 적당한 나라로 표상해 본다.
이러한 표상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걱정이 많은 나라들은 금융경제가 경제시스템을 지배하는 나라들이고, 걱정이 적당한 나라들은 아직은 금융경제가 생산 (또는 제조업)경제를 완전하게 제압하지 않는 나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지대경제 시스템에 (또는 건물주로써)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내거나 길러내 살아갈 수 있는 한 걱정은 나의 고유한 정신병이 되기가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지만, 사망율은 미미하다. 하지만, 걱정이 많은 사회는 사망율같은 진실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걱정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남들에게 의지 않고서는 생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괜히 전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게 아니였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 있다.
p.s.>
지대로 생존하시는 분들중에 연로하신 분들이 많은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사망율은 이분들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걱정이 과도해지는 국가로 드러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제 사실상의 국경폐쇄를 발표한 미국의 트럼프도 노인이 아니라고 하기는 거의 어려운 나이대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부동산 부자 (지대경제 수혜자 또는 건물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