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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3시 미국 워싱턴 재무부 회의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의 호출을 받고 참석한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9개 대형은행 대표들에게 종이 한 장씩이 건네졌다. 재무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지원받겠다는 내용의 확인서였다. 예상치 못한 국유화 동의서를 받아든 좌중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장내를 정리한 것은 폴슨 장관. 그는 ‘서류에 서명해야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내놓았다. 결국 오후 6시30분까지 참석자 전원은 서류에 ‘동의’ 사인을 했다. 신용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금융위기 해결의 단초를 제공한 미 정부의 은행 부분 국유화 방안은 이렇게 탄생했다.
2500억달러를 투입하는 미국의 은행 국유화 방안이 발표되기 하루 전 월가 은행 대표들과 폴슨 장관 등 정부 관리 사이에 벌어졌던 3시간30분간 막후 공방을 뉴욕타임스(NYT)가 참석자 등의 전언을 토대로 재구성해 15일 보도했다. NYT는 “논쟁과 타협의 3시간30분짜리 드라마”라고 묘사했다.
발표 하루 전 폴슨 장관의 초청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정부의 국유화 방침을 눈치챈 사람은 참석자 가운데 아무도 없었다. 예상 밖의 제안이었던만큼 반대는 심했다. 리처드 코바체비치 웰스파고 회장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웰스파고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부문 투자가 많지 않아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최근 100억달러를 조달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케네스 루이스 회장과 90억달러의 일본 자본을 유치한 모건스탠리의 존 맥 대표도 부정적이었다. 더욱이 퇴직금 4300만달러를 약속받은 코바체비치 회장은 국유화가 될 경우 이를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대놓고 반대하지 않은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 메릴린치 대표들도 ‘주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재무부가 경영에 간섭하는가’ 등의 질문을 쏟아부었다. 토론은 격렬했다.
하지만 반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참석자의 전언처럼 “대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나서서 투입 자금 규모와 구체안을 설명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어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대표가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라고 말하는 등 하나둘 찬성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회의가 끝날 무렵엔 참석자 전원이 서류에 사인했다.
폴슨 장관은 이날 모임에 대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우리에겐 자본이 너무 많다’고 말할 참석자는 한 명도 없었다”며 “비교적 짧은 시간에 다들 (우리 계획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NYT도 “(재무부안은) 징벌적 계약이 아니라 은행의 자본 확충을 돕기 위한 것”이라며 “월가의 큰손 워런 버핏이 골드만삭스에 50억달러를 투자하면서 한 계약에 비해 정부 조건은 후한 편이었다”고 평가했다.
9개 대형은행과 달리 중소 규모 은행 국유화에는 진통이 예상된다. 2500억달러 가운데 절반이 투입되는 대형은행의 ‘강압에 의한 참여’와 달리, 나머지 1250억달러는 8500개 중소은행의 자발적 신청을 받아 집행될 계획이지만 벌써부터 반발이 새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금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 은행은 한 곳도 없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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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3시 정각,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미국을 대표하는 9개 은행 최고경영자들이 재무부의 회의실에 잇따라 도착했다. 각자에게 주어진 한쪽짜리 서류를 본 은행장들은 경악했다. ‘은행 지분을 정부에 파는 데 동의한다’는 계약서였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서명을 해야만 방을 나갈 수 있다고 선언했다.
영국과 유럽에서 은행 국유화가 잇따라 발표됐지만, 이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상’이라며 거부하던 부시 행정부가 결국 9개 은행 부분 국유화를 발표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뉴욕 타임스>는 13일 재무부 긴급회의에 참석했던 인사들을 인터뷰해 미국의 은행 부분 국유화 무대 뒤에서 벌어진 긴박했던 이틀간의 드라마를 전했다.
12일 오후 폴슨 장관이 은행장들에게 직접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누구도 폴슨 장관이 국유화 최후통첩을 내밀 것이라고 눈치채지 못했다. 대공황을 연구한 학자 출신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위기 초기부터 은행 국유화가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동안, 골드만삭스 최고 경영자 출신의 폴슨 장관은 그것만은 안 된다며 반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폴슨 장관이 이제 옛 동료들을 윽박질러 국유화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배역을 맡았다.
천장이 높은 회의실, 커피와 콜라가 놓인 짙은 갈색 나무탁자를 사이에 두고 긴장이 흘렀다. 웰스파고의 리처드 코바체비치가 가장 강하게 반발했다. 웰스파고는 모기지 투자로 큰 손실을 입지 않았고, 구제금융이 필요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구제금융을 받는 은행 경영진에 대한 급여 제한에 공공연히 반대했다. 그는 퇴직하면 4300만달러 보너스에 더해 스톡옵션과 주식 매각으로 1억4천만달러를 받게 된다. 구제금융이라는 ‘당근’을 삼키면, 경영진 교체, 정부의 감시감독권 강화 등 ‘채찍’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이들을 주저하게 했다.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파인, 씨티그룹의 비트람 판디트 등은 “우선주를 가진 기존 주주들에게 정부가 확보한 주식이 어떤 영향을 주느냐?” “정부가 은행 경영에 간섭할 것이냐?” 등 조건을 따져 물었다. 논쟁이 뜨거워지자 침묵하던 버냉키 의장이 “이 계획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상황이 심각해져 건전한 은행들도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때 뉴욕 연준 의장 티모시 가이트너가 정부의 세부 계획을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메릴린치에 250억달러, 제이피모건·씨티그룹에 각각 250억달러, 웰스파고에 200억~250억달러, 골드만삭스에 100억달러 …. 거액의 액수에 그들의 표정이 돌변했다.
모두 자금 부족을 겪는 은행으로서 의결권도 행사하지 않고 경영 개입도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조건은 매력적이었다. 이사회에 서둘러 연락을 취한 뒤 오후 6시30분까지 결국 9명 모두 동의서에 사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