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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586세대들을 비난하는 글을 읽으면서, 어느것은 공감이 가고, 어느것은 좀 객관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80년대 학번들에 대한 정체성과 90년대 학번들의 특징들을 찾아보고 싶은 심정에 몇몇 글들을 찾아 읽다보니, 내가 동의하고픈 내용들이 있어 여기게 소개하고자 한다.우선,
80년대 학번들 (소위 586세대)에 대한 이야기로
1. 심산, “<애마부인>의 아버지”, ≪씨네 21≫,에 나오는 구절이 다음과 같다.“탱크로 광주를 깔아뭉개며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폭압과 자유화라는 양날의 정책을 썼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낮에는 전두환의 폭압정치에 맞서 돌을 던지고 밤에는 전두환의 자유화 정책에 발맞춰 싸구려 에로영화를 보며 킬킬댔던 것이다”라는 회상이 증언하듯 ‘파쇼정권’과 투쟁하던 80년대 대학생들은 일종의 정신분열증과 같은 상태에 빠져들었다.
2. 사회학자 김동춘이 언급하는 80년대 학번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절대적 공동체’ 의 경험에 기원을 둔 일종의 도덕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 공동체에 대한 헌신성이라는 도덕률에 의해 여전히 규제되고 있었기에, 오로지 소비로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되는 자본주의형 인간성에 대한 본질적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하여 90년대 학번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는 것 같다 (참조: 주은우 2014. 자본주의와 한국사회의 문화변동에 대한 해석적 시론)
70-80년대에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의 댓가로 얻어낸 초기자본 축적의 첫 혜택자들로서, 한국역사상 처음으로 즐기고 과시하는 데 유보를 두지 않는 소비주의적 속성을 더 극단적인 형태로 실현하고 누렸던 세대가 바로 90년대 학번세대인데, 이들은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보이면서도 튀는 의상, 값비싼 외제차들로 치장함으로써 사회적 ‘구별’, 차이에 의한 개성의 표현이 이제 한국에서도 현대적 소비의 논리가 되었음을 몸으로 보여주었고, 자신들의 쾌락주의적 놀이문화를 통해 차이와 구별의 과시가 곧 향유의 과시임을 알려주었던 세대로서, 한국의 첫번째 자본주의형 인간으로 출현하였던 세대이다 (소위 서태지 세대들).
이들은, “부모의 세대가 어렵게 살아왔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온 자신들의 삶을 이해해달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 삶을 우리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소비일방주의적 삶을 추구하다가, 1997년 IMF라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이라는 경제적충격이라는 날벼락을 맞고서 일부 금수저들을 제외하고서는 대다수 빈민층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리고, 그러한 빈민층 전락을 자신들의 바로 윗세대인 80년대 학번들의 잘못이라고 인식한다.
성장하면서 책을 읽지도 않았고, 그러하기에 사유라는 것을 해볼 능력이 안되었던 90년대 학번들로서는 어찌보면 손쉬운 속죄양을 찾아내는게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 속죄양에 80년대 학번들을 첫번째로 떠올렸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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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세대에 속하는 나는 아래 글들에서 지적되어진 586세대들의 문제점들에 상당히 공감하고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이지만, 90년대 학번들이 한국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그러한 능력들이 (소위 사회를 바꾸어 낼만한 능력들)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 또한 다른 세대에 비하여 유독 이기적이고 자신들만을 위한 소비행위로서만 자신들의 삶의 의미를 느껴온 세대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다만, 조심스럽게 제안하자면, 이제 80년대학번이나 90년대 학번들은 그만 설쳐되었으면 하는 입장이고, 우리들 대신 30대나 20대들을 지원하고 그들이 한국사회를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있어 써포트하는데 주력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나, 최근까지 인기를 끌었던 한국예능프로그램중 “알뜰신잡”이라는 방송물에 출연하여 온갖 맛있는것은 다 찾아 다니면서 게걸스럽게 먹어되고, 온갖 세상일은 지들만 다 알고 있는양 주절 거리던 출연자들이 우연치 않게 모두 40-50대 였기에 사뭇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20-30대는 취직자체가 되지 않는 절대절망 시대를 버티어 내고 있는 입장에서 알뜰신잡이 상징하는 한국 40-50대 (또는 90년대와 80년대 학번들)들은 역겨움 그자체로 보여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