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밑에 쓴 글에 달린 댓글을 읽어 보니까
조금 더 아이 입장에서 어떤걸 느낄까 하는 것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때 이민 와서 지금은 30대 중후반입니다.
이제 아이들도 있고 잘 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어릴때 받았던 그 스트레스가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아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워싱턴주 west side의 suburb였습니다.
지금이야 인도계도 잔뜩 들어와서 인종비율부터 예전과는 다르고
한국 문화도 예전보다 훨 잘 나가고 있어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는 제 삶의 방식 전체가 거부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초등학교때는 대놓고 저보고 stupid asian이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 맛있게 먹고 학교에 갔는데
저에게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샤워를 더 해야 한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전 그 이후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아침밥을 거부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부터는 한국에서 하던 것 처럼 하면 계속 게이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입고 있는 청바지가 너무 길어서 접어 올렸더니 게이냐고 물어봅니다.
들어본 악기가 플루트밖에 없어서 밴드 시간에 플루트를 골랐더니 그것도 이상하답니다.
고등학교 조회 시간에 학생들 사진을 보여주는데
새로 온 동양계 유학생이 친한 동성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는 사진이 나왔습니다.
그걸 보고 주위 학생들이 쟤는 게이인가 보다 하며 낄낄거립니다.
이처럼 학교 주류 백인들은 유학생들을 굉장히 내려다 보았고
동양계 유학생 무리가 지나가면 갑자기 조용해 졌다가
자기들끼리 쳐다보며 웃고 낄낄거리곤 했습니다.
그거에 대한 반항심 때문인지 특히 한국인 유학생 그룹이
정말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한국말로 떠들곤 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많은 혼란을 느꼈고
결국은 한국인들과 멀어지는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오늘날 결혼도 한국계와 하지 않았고 한국인 친구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름은 다시 영어 이름 대신 한국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아이들과도 한국어로 대화합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학생때 일들은 정말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유쾌하게 넘길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코너에 몰린 기분이었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집에 가면 위안을 받기보다 오히려 부모님이 저보고 많은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못하니까 여기 전화해 달라, 이거 해결해 달라
저도 영어 잘 못하는데 제가 해야 한다고 하는 어려운 부탁들이 많았습니다.
부모님도 힘드니까 제 말을 듣기 보다 짜증과 화로 반응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이 모여 고등학교 끝날 무렵에 정신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사실 우울증과 패닉어택은 중학교 때 부터 있었지만요.
저는 제 경험을 그냥 공유할 뿐이고, 판단은 여러분이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