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정보공유와 물러터진 성격

  • #3046505
    sdhtr 73.***.131.10 852

    사람이 자기것을 잘 챙기지 못하는 스타일이라서, 늘 아내로부터 구박을 받는 편입니다.

    미국유학을 90년대초반에 나왔기에, 당시에는 유학을 하고 귀국한 이들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 누구로부터 미국 유학에 대한 조언이나 도움을 받지도 못했고,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이라 말 그대로 Hard Copy 서류나 팸플릿등을 해당학교에 요청하고 편지를 쓰고 주고 받으면서 유학 어드미션을 받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나중에 유학을 하고 있을때 그리고 학위를 받고나서는 주변에 유학에 관심을 가진 후배들에게 많은 질문과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늘 있어왔지요. 그때에도 아내는 늘 퉁명스럽게 면박을 주곤 했습니다. 평소엔 생까던 사람들이 아쉬우니까 당신에게 접근하고 얻어갈 정보만 빼가는것이니 대충 도와주라고요.

    첫단추를 끼는게 중요하다고, 제가 속한 세대가 비교적 유학이나 미국이민 미국취업들을 막 시작하는 단계에 걸쳐있어서 그렇겠거니 하는 마음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 경험을 공유하는게 비록 남는거는 없다손 치더라도, 사람의 도리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결국 제가 미국 직장을 잡아 살게되니까 후배들이 수년후에 훨씬 많은 숫자로 저와 같은 미국직장을 잡고 이민하게되는 경우들이 많이 생겼고 그때마다 제 삶이 그들에게 쓸모있는 참고용 (성공한 참고가 아니라 주로 저처럼 살면 손해라는 방식으로서의 참고용)으로 여겨지곤 했다는 기억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미국삶도 이젠 25년이 다되어 갑니다.
    오늘밤에도 아주 가끔 연락이 오는 후배에게 (그도 이젠 40대 중반을 넘었겠네요)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걸어온 경력과 많은 부분 유사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고, 이번에 제가 몇년전에 이직 했던곳 (정부 job)으로, 그도 오랜 사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저와같은 정부 job으로 옮기려고 제게 저의 경험을 들려주기를 청했고, 아는데 까지 다 말해주었지요.

    가만히 제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아내는
    당신 현재 주변에 남아있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중에 아쉬워서 아주 가끔 전화하는 사람들 빼놓고 당신의 안부가 진정으로 궁금해서 전화해주는 사람이 몇명이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별로 없다고 하니까,
    아내는
    제가 그렇게 속이 좋게 아쉬울때만 전화하는 지인들을 가리지 않고서, 내거를 모두 넘겨주니
    제 주변에는 얌체같이 아쉬울 때만 친한척 하는 사람들만 득시글 거린다고 타박이네요.

    나이가 들어서 이민생활에 대한 외로움을 갈수록 많이 타기 시작한 저로서는
    “정말 그래서 그런것인가?”
    “사람좋다는 소리에 어벙하게 기분좋아하면서, 아주 가끔 전화해서 입에 침을 바르지도 않고 나를 추켜세우며 자기들이 원하는 정보만을 얻어가려는 얌체같은 지인들만 가까이 하게 되니까 내가 이렇게 결국 외롭게 남게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는데요.
    글을 써내려가면서 문득 들게된 생각은
    “전혀 아니올시다”가 되어버렸네요.

    나같이 지속을 제대로 찾아 먹지 못하는 인간들도 필요한게 이세상이고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은, 나이가 들다보니 사람들 상대하기가 꾀가 나다보니 자꾸만 사람관계를 줄여왔던 결과이기도 하다는 생각말입니다.

    외로운 만큼, 좋은점도 많다는 생각도 들고요.

    얌체같이 자기들이 아쉬울때만 연락해서 필요한것만 챙겨가는 사람들이 결코 배척당해야할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신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필요한게 있어 저를 찾아와 얻을거 얻고 난후
    깨끗하게 떠나는 그 cool함은 제 삶에 있어서 사람관계로 인한 피곤함을 전혀 불러 일으키지 않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질척거리는 인연들은 우리주변에 널려 있지요.

    마치, 목이 말라 물을 요청해서 물 한바가지 퍼준거 가지고 얌체같다고 할 수 없는것과 같은 이치라는 생각 말입니다.
    저 또한 물 한바지 시원하게 주어 그들의 목마름을 가시게 해주었니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함께이고요.

    제가 물러터진 인생이란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성격이 저를 불행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결론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신지 궁금하네요.

    • 1 24.***.83.8

      모든 공덕은 돌아옵니다. 물론 자기 얻을 것만 얻고 입 싹 닦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감사한 마음 갖고 있습니다. 이유 없이 안부 전화 하기는 또 얼마나 어렵습니까. 도움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바라는거 없이 힘들지 않은 한도 내에서 열심히 도와주시다 보면 평판도 좋아지고 아이들에게도 복이 갈 겁니다.

    • 지인 47.***.164.202

      외국 생활하면서 주변에 마음 깊이 교류하는 지인 두는 건 어렵죠. 원글이 물러터져서가 아니라 원래 다들 외로운 게 타국 생활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일찍 미국에 오신 분들은 더욱 더 한국에 계신 오래된 지인들과 두터운 교류가 어렵지요. 가깝지 않은 사람들의 전화만으로 님의 삶의 자세가 물러터졌다고 보이지 않네요. 늦게 만나게 되었더라도 주변에 좋은 분들이 계실겁니다.

    • 저도 128.***.35.15

      저도 집에서 가끔 그런 구박을 받습니다. 그런데 원글님처럼 이 상황을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정리해본 적은 없었네요. 글을 읽고 잠시나마
      저를 돌아봤습니다. 저도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집단생활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어찌보면 미국 생활이 잘 맞는것 같긴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 동창들 모임하는 걸 보거나 페이스북에 올려진 화려한 사진들을 보면 내가 여기서 뭐하는지하는 생각도 들지요. 제가 먼저 나서서 손을 내밀지 않는 성격이니 누가 뭐라도 물어오면 아직 반갑기만 한데, 이용당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좀 황당하기도 하지만.. 진짜 그런가라는 생각도 들고.. 뭐.. 원글님이 정리하신 것처럼 저도 그냥 쿨하게 살랍니다.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B 75.***.176.26

      한국서 살면 계산적으로 따질 상황도 많이 오겠지만,
      미국서 살면서 학교다닐때 빼고 계산적으로 생각할 상황이나 있나요? 와이프께서는 아직도 한국살때같은 마인드로 유지되어 있나보네요. 미국사니까 5년만에 연락해도 얻그제같고 얻그제 카톡으로 실없는소리 받아도 그러려니..실없는 소리로 대꾸해주고…몇년동안 연락없는 친구도 내상황상 그러려니…

      서운한 맘들은 하나도 없네요.

    • B 75.***.176.26

      궁금한 맘들은 있어도…그러려니…나처럼.

    • 미국 137.***.242.130

      “마치, 목이 말라 물을 요청해서 물 한바가지 퍼준거 가지고 얌체같다고 할 수 없는것과 같은 이치라는 생각 말입니다.
      저 또한 물 한바지 시원하게 주어 그들의 목마름을 가시게 해주었니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함께이고요.”

      감동…복 받으실거에요.

    • ff 206.***.243.210

      친구는 공평하게 서로 주고 받아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또는 받기만 한다면, 서로 대등한 인간 관계가 되기 힘들겠죠.

      부담없이 도움을 받을만한 작은 꺼리를 만들어서라도 한 번 연락을 해 보세요.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 Bostonian 209.***.125.157

      원글님 글을 읽어보니 꼭 저를 보는 느낌입니다.

      저도 원글님처럼 이런저런 부탁을 받습니다. 와이프가 하는 말도 똑같구요. 하지만 저는 속이 보이는 부탁이라도 해줄수 있으면 해줍니다. 포닥때는 실험에 관해서, 영주권에 관해서, 몇년전엔 아는분한테 국회의원 공천서류에 필요하다며 다녔던 미국학교 졸업증명서(?) 비스무리한거 떼달라는 부탁도 받았었습니다. 그래도 해드렸습니다.

      이곳에 잠깐 교환교수로 와서 한국 학교로 돌아가는 고등학교 동창은 제 동의 없이 제 주소를 미국 은행에 알려줬더군요. 그래도 은행에서 오는 잡다한 것들 버릴것 버리고 중요한거 추려서 서울갈때 가져다 줍니다. 와이프 당연히 질색하죠. 국제 택배라면서요.

      간간히 이사이트나 다른 네트웍을 통해서 제게학교를 떠나 회사로 가야되는 문제로 상의를 부탁하십니다. 저는 일종의 제 재능기부라 생각하고 시간내서 말씀을 드림니다.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고맙게 저에게 결과를 업데이트 주시는 분들도 있고 그런 분들이랑은 가끔 연락도 하면서 지냅니다.

      아무래도 한인교회에 나가질않고 살아가니 주변에 한인분들은 많지 않네요. 그래도 서울가면 이곳에서 포닥할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 만나 술한잔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비록 여기서 멀리있는 다른주지만, 어릴적 친구들도 있고 해서 간간히 안부전화는 하고 지냅니다. 미국친구들과는 가끔 만나서 주말브런치나 점심 먹습니다. 한국에서 보는 친교와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머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원글님이 아시는것 아낌없이 나눠주시고 그러다보면 그 선행에 대한 보답을 받으실겁니다. 읽고보니 따듯함이 느껴지네요. 가까운 동네분이면 소주라도 한잔 나누고 싶습니다.